▲ 글·사진 / 최성호(자유기고가, 페이스북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룹지기)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따뜻한 남녘으로부터 꽃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봄꽃은 자신보다 큰 식물들의 잎이 나오기 전에 자손을 세상에 퍼뜨리고 사라져 버리기에 앙증맞고 꽃색이 아름다운 이 꽃들을 보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봄꽃의 전령사로 알려진 대표적인 꽃이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복수초(福壽草)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서, 높이는 10∼20cm 정도이고, 잎은 깃꼴로 잘게 갈라진다. 1월말부터 4월 초순에 3∼4㎝ 크기의 황색 꽃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 피며 열매는 수과(瘦果)로 익는다. 배수가 잘 되는 부식질 토양에서 잘 자라고 꽃이 지고 나면 나무 그늘에서도 잘 생장한다.

복수초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단어 그대로 우선 무시무시한 복수를 떠올린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자로 복수초는 복 복(福), 목숨 수(壽), 풀 초(草)라고 쓴다.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봄에 이 꽃을 본 사람은 그해에는 행복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복수초는 하얀 눈이 소복히 내리는 날 눈 속을 비집고 살포시 고개를 들 때 진정한 자태를 만끽할 수 있다. 설중(雪中) 복수초 한 장면을 담기 위해 수많은 애호가들이 이 꽃이 필무렵 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태양이 떠오르면 꼭 닫았던 꽃봉오리를 햇님을 향해 열기 시작한다.

3월초 잠시 꽃샘 추위가 밀려오면 복수초는 그 꽃망울을 굳게 닫아 걸어 사람들의 애간장을 잠시 태우기도 한다. 아마도 추위에 꽃을 닫아 자신의 체온을 보호하려는 전략일 것이다. 꽃샘 추위가 지나가고 날이 다시 따뜻해지면 꽃을 활짝 벌려 벌들에게 꽃과 꽃가루를 마음껏 내어준다.

이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어 머릿속이 한결 상쾌해진다. 북쪽 지방에서는 눈 사이에 피어난 꽃을 볼 수 있으므로 눈색이꽃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눈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이라 하여 설연(雪蓮)이라 부른다.

▲ ‘2013년 복수초의 봄맞이’/ 올해 3월 1일부터 6일까지 최성호 씨가 사진에 담은 복수초 꽃이 피는 과정

복수초는 노란색과 흰색의 꽃이 피고, 세복수초, 개복수초, 가지복수초 등 여러 종류가 이 땅에 자생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은 총칭해서 복수초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서양복수초는 동양의 꽃과는 달리 빨간색을 머금고 있어 동양의 것과 쉽게 구별된다.

복수초의 꽃말은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르다.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으로,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으로 불리운다. 이 꽃에 전해져 내려오는 두 가지 전설을 살펴보면 그 꽃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북해도(北海道)에 사는 원주민 아이누족은 복수초를 ‘크론’이라고 한다. 옛날에 한 남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신 크론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용감한 땅의 용신에게 강제로 시집보내려고 하자 크론은 연인과 함께 다른 지방으로 도망쳤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화가 난 아버지는 부하들을 시켜 그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이들을 사로잡은 아버지는 노여움을 삭히지 못하고 이 연인들을 꽃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 꽃이 ‘복수초’가 되었다고 한다. ‘영원한 행복’을 찾아 떠난 이들의 열렬한 사랑이 꽃말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하다.

서양 복수초의 전설은 동양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초의 학명 아도니스(Adonis)는 희랍의 아름다운 소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랑,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아도니스란 소년을 열렬히 사랑하였다. 어느 날 아도니스가 산에 갔다가 멧돼지한테 물려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 때 흘린 피가 땅으로 떨어져 피어난 꽃이 아도니스란 이름의 복수초로 자랐다고 한다. ‘슬픈 추억’을 간직한 꽃이 봄이 되면 못 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시 솟아오르는 것이리라.

독성이 있는 복수초는 식용보다는 주로 관상용과 약용으로 사용된다. 관상용으로 복수초를 보고 싶은 분들은 꽃집에서 복수초를 구매하여 정원이나 화단에 심으면 된다. 어떤 분들은 야산에서 이것을 뿌리채 캐서 자기 집 정원에 심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야생화는 살아온 환경이 변하면 쉽게 죽어버리기 때문에 자연에서 남획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복수초의 번식은 씨앗 파종과 포기나누기 2가지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파종법은 5월에 복수초 씨앗을 채취하여 뿌리면 20일 정도 후에 새싹이 나고 5∼6년 후면 꽃을 볼 수 있다. 반면 포기나누기의 경우, 복수초 뿌리에 생긴 눈을 5∼6개씩 잘라 심으면 쉽게 번식이 가능하고 꽃을 볼 수 있는 기간도 더 짧아진다. 어떤 번식 방법을 선택할 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여느 미나리아재비과 식물과 마찬가지로 복수초도 약용 목적으로 사용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복수초는 뿌리나 줄기 등에 아도니톡신(adonitoxin) 성분이 들어 있다. 한방에서는 이 성분을 이용하여 강심제, 이뇨제, 신장질환, 방광질환, 복수가 찰 때, 심장병 등의 치료에 소중한 약재로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전초를 말려 끓여 마시기도 하는데 독성으로 인해 큰 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권하고 싶지는 않다.

가깝고도 멀기만 한 식물 복수초. 사람들의 탐욕과 무문별한 남획으로 인해 야생 복수초를 보려면 조금 더 깊은 산에 올라야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복수초가 띄엄띄엄 피어있는 것은 많이 보지만 무더기로 핀 군락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지가 경상북도 팔공산 가산산성 쪽에 있다고 하니 잘 보전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2013년 봄, 이 꽃을 찾아 꽃내음 물씬 풍기는 봄의 향연을 마음껏 누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