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희 소셜벤처 푸드앤져스티스 지니스테이블 대표

우리가족은 지난 2009년 4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전북 장수로 이사를 왔다.

유기농 제철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자연에 맡기며 나 역시 푸르른 자연에 기대어 살리라하고 말이다. 첫해에는 그저 모든 게 재미있었다.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기쁨, 땅속에서 보석 같은 감자를 캐는 즐거움, 계절에 따라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숲속의 풍경,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찬란할 정도로 예뻤다. 시골로 이사 온 보람을 막아서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겨울. 제철 농사를 지어 수입이 전혀 없는 겨울에 매월 수 십 만원씩을 들여 기름보일러를 써야하는 난방이 우리를 난감하게 했다. 연탄, 나무, 펠렛, 가스. 어떤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해도 시골에서는 공동에너지시스템이 아닌 개별난방 시스템이다.

기름과 가스는 값이 너무 비싸고, 연탄은 보일러를 2~3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며, 나무도 점점 구하기 어렵고, 펠렛은 유행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골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전기장판에 의존해 겨울을 나시는 일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당연해보였다. 환경단체에서 일했던 나조차도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서 귀농하기 전 나를 열광시켰던 대안에너지는 그저 글자로만 느껴졌다. 시골에너지가 이대로라면 나는 매년 겨울을 힘겹게 나야할 것 같았다.

시골로 이사 온 보람을 막아선 또 다른 건 의료였다. 귀농한 후 넷 째 아이를 임신한 나는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그리고 출산을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차로 달려 장수에서 전주를 오가야 했다. 아이가 심한 고열로 아팠을 때, 낫에 손가락을 깊이 베었을 때, 남편이 맹장염이었을 때 의사는 우리에게 전주로 가라고 했다.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시골 사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아플 때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진학을 하러 도시로 떠났고 지역에 남아 공부하는 아이들은 소외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골로 이사 온 보람을 막아선 건 농촌 그 자체였다. 유기농 소농인 우리 스스로가 부딪히는 문제에서 관행농을 지으시는 주변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살 수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생산부터 수매까지 농민의 입장에서 농사의 전체 과정을 아울러 농민을 먹고 살게 하는 정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슨무슨 마을만들기, 무슨무슨 보조사업처럼 시설을 늘여주는 사업은 있었으나 그 시설을 운영할 소프트웨어까지 책임져주는 일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농촌은 정주환경도, 농업정책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세상 모두를 위한다고 시작한 유기농 농사가 정작 소득이 문제가 되어 가난한 밥상에는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도 덧붙여졌다.

내가 살려고 내려온 곳, 내가 하려는 농사이니 문제로 느껴지는 것은 노력해서 바꾸어보자고 생각했다.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사회적 경제를 만들고,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나 좋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낮에는 시간을 온통 농사와 육아와 집안일에 투자해야 했으므로 밤에 사람을 만나고 잠을 줄여가며 기획서를 썼다. 그래서 교육활동에 관심이 있는 마을 분들과 함께 우리 마을, 마을회관, 교육농장, 제빵 시설을 활용해 텃밭농사, 요리와 베이킹 교실을 열었고, 지역에서 교육활동을 하고자 하는 분들과도 힘을 합쳐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교육활동을 하는 초록누리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슬로푸드 활동을 시작했다.

먹거리가 정의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3군데의 지역아동센터, 장애인자립공동체 등에 유기농산물 꾸러미를 보내고, 먹거리 정의를 주제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먹거리 정의 일을 본격적으로 할 소셜벤처를 창립하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도시농업을 꿈꾸는 서울시민식생활학교 프로그램, 지역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슬로푸드문화원, 서울 송파구 마을기업 즐거운가와 함께 먹거리정의를 실현하는 시민식당과 시민야채가게 만들기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 일은 내가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시골 사는 우리가 한 일, 도시에 살아도 농촌의 가치를 아는 우리가 해낸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다.지금처럼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고, 여기에 정책이 뒷받침해준다면 시골은 지속가능성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주경야독의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