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다 잠자듯이 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일을 하려면 피곤하고 노동이 필요한 일인데 왜 사람들은 ‘일’을 최고의 가치로 삼을까?

그것은 세상과 관계 맺을 때 자신의 삶을 ‘자급(自給)’하기 위한 실천적인 제1과제이기 때문이다. 일은 삶의 독립이고 덧없는 시간과의 유익한 공존이며 의미 있는 가족관계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최고의 수준은 일하는 노인들이 가득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많은 예산을 들여 일없이 돈을 나눠주는 방식의 복지개념은 접근 자체가 오류다. 점점 더 노령화 되어가는 우리의 농촌을 생각해보면 즐겁게 일하는 노인들이야 말로 우리사회가 다시 사는 방법을 제시해주기에 충분하다.

경남 사천시 남양동 미룡마을에는 경로당이 없다. 마을에 노인들이 없어서 그렇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미룡마을인들 젊은이가 흔하겠는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60이 다된 총무가 젊은 축에 끼는 판이다. 보통의 마을에는 경로당이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붐빈다.

은퇴 후 특별한 일거리도 없고, 집에 있자니 자식들 눈치도 보인다. 겸사겸사 경로당에 나오면 말동무도 있고 고스톱도 치고, 한 끼니 정도 돌아가며 해먹고 하루를 소일한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노후의 삶을 그렇게 아쉬운 상태로 무의미하게 소비한다. 하지만 경남 사천 남양 미룡마을은 ‘뿌사풋(뿌리채 먹는 사천 풋마늘)’으로 인해 80이 한참 넘은 노인들도 일손 따라 잡기에 여념이 없다.

▲ ‘뿌리채 먹는 사천 풋마늘’의 자태.

뿌사풋은 보통의 풋마늘 뿌리보다 2배 이상 긴 수염뿌리와 노란색부터 진보라색까지 이어지는 색의 향연으로 아주 매력적이다. 거기에 우리 몸에 익숙한 마늘향이 내어주는 기쁨은 덤이다. 풋마늘은 ‘아직 덜 여문 마늘’이라는 뜻으로 어린 잎줄기를 가리키며 남부지방이나 온실에서 풋마늘용으로 따로 재배돼, 데친 후 양념해 무쳐먹거나 김치, 볶음, 장아찌 등 요리에 이용되는 작물이다.

▲ 일하는 노인들로 가득한 사천 미룡마을. 멀리 와룡산(우)이 보인다.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여 ‘미룡(尾龍)’마을이라고 불린다.

▲ 한겨울에도 사천의 따뜻한 기후와 지형덕분에 특별하게 가온(加溫)하지 않고도 부직포를 덮어서 풋마늘을 재배한다. 석유로 짓는 농사로부터 자유롭다.

▲ 사천 풋마늘영농조합법인 이일건 전 회장(좌, 71세)과 정태영 회장(우, 61세).

뿌사풋은 사천사람들의 지난 150여 년간 지혜의 산물이자 문화유산이다. 같은 종자라도 사천이외의 지역에서는 재배가 안 되는 고유함을 지닌 유전자를 지닌다. 뿌리 끝이 일반마늘처럼 동그란 구를 형성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풋마늘 자체를 이용하는 컨셉이다. 물론 종자번식을 위해 마늘쫑을 맺고 구가 형성되긴 하지만 그 크기는 일반토종마늘의 반도 안 된다.

150여년 전 사천사람들은 일반 마늘종자들과는 달리 연하고 부드럽고 구도 크지 않고 향기가 짙으며 뿌리가 아주 긴 사천풋마늘을 우연히 발견했다. 일종의 변이(變異)종이 출현한 것이다. 이웃들과 부단히 풋마늘의 성질을 이야기 나누고 재배 노하우를 보태가며 소중하게 종자를 유지보존해왔다.

이 사천풋마늘은 다른 지역에 심으면 대부분 실패를 한다. 그 이유는 아직도 연구중이지만 아마도 사천의 땅과 물과 고유한 성질에 맞게 유전적 기질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사천사람들은 그 덕분에 대대손손 자식들을 키워 공부를 시켰고 훌륭하게 키워냈다. 마침내 2010년 11월 8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정한 지리적표시 농산물(제72호)로 등록되기에 이른다. 하여 사천미룡마을의 실버소득작물로 정착한다.

이일건 전 회장이 5살 무렵이니 60여년 전 쯤이다. 고모님이 늘 풋마늘을 키워 광주리에 이고지고 이장저장 팔러 다니던 생각도 나고 1965년경부터는 기차(지금은 없어진 진삼선(진주와 삼천포간을 운행하던 열차)를 타고 진주로 넘어가 좋은 값에 팔아 오시고는 즐거워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집집마다 풋마늘 농사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고 한다. 타 작물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다. 그런 이유로 고모님의 어머니 아버지 또 그 윗세대에서도 풋마늘 농사는 이어져왔을 것이다.

▲ 매년 요맘때 사천 봄도다리와 뿌리채 먹는 풋마늘은 환상의 궁합이다.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 굴과 어우러진 풋마늘(좌)과 사천풋마늘 무침(우).

▲ 풋마늘단.

‘뿌사풋’은 다섯가지 좋은 성질을 지닌다.

뿌리가 희다 / 줄기가 아주 붉다 / 절간이 짧다 / 향이 진하다 / 조직이 부드럽다.

이 성질로 인해 2월 중순부터 4월까지 각종 봄나물 류와 더불어 환상적인 봄의 밥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마늘이 지닌 건강지향적인 기운은 겨울의 묵은 맛을 걷어내고 새로운 입맛을 돋게 하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마늘은 양념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단군신화에도 웅녀탄생의 모티브로 등장하면서 한반도 사람들과는 뗄래야 뗄수 없는 역사이자 이야기로 우리 몸이 아는 맛으로 이어져왔다.

농업농촌이 피폐하고 어려워지는 요즘이지만 이렇게 지역의 고유한 문화유산으로 식물종을 특화시켜 지역의 명품으로 확립한 사천사람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하는 바다.

또 풋마늘 농사는 움직일 힘만 있으면 재배가 가능하므로 노인들도 쉴틈 없이 일을 하게 되니 이 보다 더 복스러운 복지시스템은 없다. 팔순이 한참 넘은 어른이 당신의 용돈도 벌고, 일하는 기쁨도 얻고, 땀을 흘리며 스스로의 노후를 자급하는 삶으로 만들어 간다. 손자손녀들에게 큰소리 떵떵치는 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나는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다.

지난해 뿌사풋 이야기를 위해 사천지역을 조사하고 현장 인터뷰도 진행했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도 남을 만큼 귀중한 자료들을 많이 얻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난 여러 갈래로 뿌사풋을 들여다보면서 향후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발전모델로 삼아 공부하고 연구해볼 생각을 하고 있다.

종의 다양성, 지역의 고유함이 가진 지적가치와 종자문화유산이야 말로 우리를 제대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임이 분명하다. 농업은 노인복지로 가는 지름길이다. 농업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