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장수농협 조합장

시대가 변하고 있다. 소비자가 유통시장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소비자의 욕구에 빠른 대처와 변화를 주도하는 업체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고령화와 핵가족화가 진전될수록 소비자를 기다리는 유통구조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바야흐로 유통시장과 소비자가 생산자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저렴하고 질 좋은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해 생산지로 직접 오거나, 시간과 비용을 들여 눈으로 확인하여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생산자, 소비자 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이미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농산물 직매장을 200여개로 확대하고 있으며, 그동안 농산물 유통경로의 소규모 시장으로만 인식되었던 로컬푸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미찌노에끼, 즉 직매장의 성공과 완주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바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어지는 유통구조의 혁신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생산자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책정하고, 합당한 가격이라 생각하는 소비자가 그 농산물을 구입하게 되면서 농산물 시장의 물가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구조로 개선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도농 복합도시 및 중소형 도시를 대상으로 로컬푸드 매장과 도시농협의 농산물 직매장의 확대가 농산물 유통시장을 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산물의 물가안정과 농가 소득향상이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형태의 소비지 유통시장이 다양화되면서 농산물 물가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형성될 것이고, 이를 기준으로 정부의 농산물 유통 및 물가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휴게소 및 커피전문점의 판매가는 가격이 얼마든 소비자와 판매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 가격으로 유통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물가 상승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순한 기호식품인 커피에 대해서는 정부가 왜 물가안정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시장원리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소비자가 커피 판매가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시장원리에 의해 판매가는 인하될 것이고 합리적 가격이라면 소비가 이루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쌀 가격의 경우는 정부의 직·간접적 시장 개입에 의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일반 소비자는 쌀 가격이 정부의 농산물 안정 정책에 의해 조절되고 있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생산자를 투표권을 가진 국민의 한사람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통 상품으로 인식하고 4천7백만을 먹여 살리고 있는 국가의 중요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는 곧 생산자와 소비자 당사자 간의 신뢰 구축으로 농산물 가격이 결정됨을 뜻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농산물 가격정책은 소비자 중심의 물가안정에 치중하여 농산물의 가격을 수입농산물로 쉽게 조절하여 생산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되고 이는 생산자들로 부터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되며, 소비자들 에게도 정부의 불신을 낳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한 예로 일반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쌀 수매현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도정하여 바로 먹어야 하는 쌀은 창고가 없어 야적해야 하고, 사료용으로 수입되는 쌀은 창고에 적재되며 가공용으로 수입된 쌀은 저온저장고에 보관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비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잘 모른다.

정부는 왜 농산물을 소비자 물가안정에만 주력하고, 생산자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는가. 비록 생산자가 3백만명밖에 안되지만 4천7백만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초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얼마인가. 아직 우리는 농업을 포기하기엔 이르다. 정치적인 논리로 소비자를 대상으로만 물가안정 정책을 살피는 것은 위험하다.

3백만의 생산자가 4천7백만의 소비자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농산물의 가격결정에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생산자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고 소비물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나라의 농업은 포기해야 할 산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