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훈 자치분권전국민연대 공동대표(전 나주시장)

새로운 모색이 왜 필요한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농민운동을 비롯한 지역의 대중운동은 지난 20년 동안 오히려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10년도 우리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대중운동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고 국민들의 보수화를 탓할 것인가? 아니면 무작정 기성정당의 무능을 비판하는데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지난 20년간 급속한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우리운동의 주체적인 노력과 전략의 부재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운동을 둘러싼 주객관적 변화에 걸 맞는 치열한 자기반성과 변화를 통해서만이 다시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의 우리사회의 주객관적 여건변화

대중운동의 전성기였던 1987년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사회와 대중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변화는 직선제를 비롯한 정치제도와 사회 전반의 민주화가 아닐까 한다.

이전에는 지역의 문제든 노동자·농민의 집단적 요구에 관한 문제든 아스팔트위에서 투쟁의 방식으로 제기되고 해결됐다면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법과 제도와 절차를 통해 해결되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인 빈곤에서 비롯된 생존권적인 요구에서 복지·교육·생태·인권 등 생활환경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증폭되면서 사회운동과 정치의 과제도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모든 사회적인 요구들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제기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지방자치제를 통해 지역과 지방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자치제도와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해결되어 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지방자치제는 시민과 지역운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주객관적 변화의 핵심적 내용이며 더 나아가 이는 단순히 지방 행정이나 정치제도를 넘어 시민들의 생활과 삶의 가치를 규정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며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면 과도한 생각일까?

현장에서 본 지방자치의 가능성과 현실

국민들의 삶을 둘러싼 관심과 사회전반의 정책결정의 방식에 대한 객관적인 여건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의미나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민주국가 중에서도 가장 늦은 지방자치의 짧은 역사와 여전히 미흡한 법과 제도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오히려 지방자치가 가지고 있는 제도적인 한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우리들의 주체적인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방자치 전문가들이 흔히 지적하는 법과 제도에 규정된 권한과 사무의 한계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제도적 한계는 이에 대한 적극적 해석과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법과 각종 법률에서 부여한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와 국민의 권리사항을 조례로 입법화하고 실천한다고 하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민생관련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또한 헌법과 법률에 부여된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한다면 농업인과 소상공인·노인·여성·청소년 문제 등 지역의 의제 뿐 아니라 환경·노동·인권·통일문제 등 전국적인 의제에 이르기 까지 사회운동의 과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정치인이 입만 열면 떠들어 대는 열악한 재정여건과 낮은 재정자립도 역시 수많은 민생현안을 해결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없다.

나주시의 2012년 일반회계를 보면 총 5,147억 원의 예산 중 지방세 등 자주 재원 1,187억 원, 교부금 등 2,284억 원, 보조금 1,673억 원을 기준으로 보면 세입 측면에서 재정자립도는 23%이지만 세출 측면에서의 자주도는 67%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즉 세입 측면에서 자립도는 열악한 형편이지만 교부세를 포함한 세출의 자주도는 60%를 훨씬 넘는 실정이기 때문에 과다한 토건예산이나 낭비성 예산을 절감한다면 민생문제는 물론 지역운동이 요구하는 과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방자치는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실제로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산 교육장이며 구체적인 실천사례를 통해 중앙정치를 기반으로 한 기성정치를 개혁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근거지가 될 것이다.

지방자치의 주체적 문제와 한계

지방자치제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치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기성정치의 오명을 둘러쓴 지방자치의 주체적인 역량의 문제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역주의 산물인 기성정당의 공천에 의해 탄생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주민을 의식하기 보다는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당이나 국회의원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있으며 오랜 관치행정에 길들여 진 공직사회는 예산과 법규행정에 안주해 창의적인 민생행정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지역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도 지방자치의 공간을 자기운동의 영역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지방자치에 대한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방자치제의 의미와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제도의 한계를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치인과 공직사회 그리고 지역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라고 하는 주체세력의 인식과 자세의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주의 풀뿌리 지방자치 운동의 성과와 반성

나주농민회를 중심으로 시작한 지난 10여 년의 나주 지방자치 운동은 정당이 아닌 대중운동을 통해서 지역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지역정치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타성에 길들여진 기성정치와는 달리 시민참여와 민생정치를 통해 학교급식 지원조례나 농촌마을 택시조례 등 창의적인 행정혁신의 사례(조례운영 건수: 나주 334건, 광양 286건, 익산 291건, 화순 258건, 해남 215건, 장흥 228건, 영암 234건 등)를 만들었고, 혁신사례의 전국화를 통해서 무상급식과 같은 실질적인 정치개혁의 계기를 만들었다.

또 나주시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2003년 지방 살리기 3대 법안 제정운동,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한 신행정수도 건설, 혁신도시 정책 같은 전국적인 정부 정책을 만들어 내고 주도적으로 실천했다.

한편 특정인의 정치적 진출에 매몰된 나머지 지방자치의 혁신을 지속해 갈 안정적인 제도권 역량 구축에는 실패했으며, 실질적인 지방행정 과정을 통해 농민회 등 제도권 밖의 지지 세력과 연대하고 지방자치의 의미와 지역발전의 비전을 공유하지 못함으로서 주체적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역량을 통해 민생과정치개혁의 거점을 만들자!

당면한 2014 지방자치 선거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첫째 지역의 시민운동이나 시민사회가 지방자치를 시민운동과 별개로 생각하는 편견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자기운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방자치 공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세상을 변화 발전시키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전문적인 능력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의 공간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특정 정치인이나 후보중심의 지방자치에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시민정치운동을 실천해야 한다. 지방자치의 막중함 때문에 개인적인 정치적 진출은 있었지만, 제도권 정치의 개혁과 성공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 선거운동 중심의 선거전술에 매몰되지 않고 지역과 지방자치와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준비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풀뿌리 정치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특정인의 정치적 진출이나 단순히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성 정치를 개혁하고 지방 자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