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임 <선구자> 편집주간

“용인 아파트에 살며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언젠가는 작은 텃밭과 장독대, 마당에 긴 빨랫줄을 매고 살면서 먹을 거는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키우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화생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제 농사일기를 보고 베란다 농사를 시작하겠다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둘 생겼습니다. 저도 초보 농사꾼이니 중간에 시행착오가 많을 것입니다.

매주 그런 경험까지도 함게 나누면서 많은 분들이 ‘저 아줌마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저는 대만족입니다.” (한경임 김상진기념사업회 <선구자> 편집주간)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가 짓는 베란다 농사 이야기를 매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필자 한경임 씨는 김상진기념사업회 <선구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6월 2일

몸이 안 좋아 생즙단식을 열흘 동안 했다. 단식을 마치고 나니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혈압도 정상 범위에 있어 1년 가까이 먹던 혈압약도 먹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몸 상태를 유지하려면 채소 중심으로 과식하지 않는 식습관이 절실하다.

생각 끝에 베란다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정성을 쏟아 뭔가를 키우면 더불어 마음도 키우게 되고 건강은 덤으로 챙겨지겠다 싶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엔 베란다에 화단이 있어 작은 텃밭처럼 가꿀 수 있다. 하지만 키우고 싶은 쌈채소를 쭉 늘어놔 보니 땅(?)이 모자란다. 결국 땅(?)을 사기로 했다.우리 가족이 ‘움직이는 땅’이라고 이름붙인 바퀴 달린 텃밭상자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아파트라 아무리 볕이 잘 든다 해도 그늘이 생기기 마련인데 바퀴덕분에 햇살을 따라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쌈채소 모종을 심었는데 일주일 만에 이리 자랐다. 날마다 물주고 들여다보는 낙이 쏠쏠한데 어느 날 저녁, 들깨 모종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이 녀석들이 이파리를 늘어뜨리고 잔다.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쌩한 얼굴로 날 본다. 

열무와 얼갈이는 씨앗을 뿌렸는데 싹이 너무 잘 나왔다. 씨앗을 너무 배게 뿌린데다 햇살이 잘 드는 베란다라지만 노지와는 다른지 마구마구 웃자란다. 다 크기도 전엔 새싹 채소로 먹어야할지 고민이 된다.

  결국 오늘 ‘움직이는 땅’이 아닌 베란다 텃밭에 열무와 얼갈이, 쑥갓을 뿌렸다. 이번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하다.

고추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벌써 새알만한 열매가 달렸다.
가장 기대가 큰 호박. 아파트에서도 호박이 열릴 수 있을까?

   6월 3일

마구마구 웃자란 열무는 결국 비빔밥 재료로 일찍 수확했다.

열무 새싹을 다 뽑아낸 자리에 흙을 고르고 이번엔 골을 조금 깊게 해서 씨앗을 뿌려두었다. 얼갈이는 웃자라도 쓰러질 정도는 아닌데 열무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화분이 아닌 베란다 텃밭에 뿌린 열무와 이번에 골을 조금 깊게 파서 심은 열무가 싹이 올라오면 뭔가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6월 4일

드디어 첫 수확이다.
직접 기른 쌈채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야들야들할 때 따서 먹어야 제 맛이다.

오늘 마침 남편이 점심 먹으러 온다고 해서 점심상에 내놓기로 했다.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강된장에 싸 먹으니 꿀맛이다.

6월 7일

열무가 웃자라 다시 씨앗을 뿌렸지만 마찬가지로 웃자란다.

농사고수이신 선배님께 여쭈었더니 물을 얼마나 주었냐고 물으신다. 매일매일 아침저녁 해나지 않을 때 부지런히도 주었는데 그게 탈인가 보다. 선배님 말씀이 물을 너무 자주 주면 땅 속 질소를 넘치게 빨아들여 웃자랄 수 있다고 하신다. 에고고~조금 시들 하는 기미가 있을 때 물을 주면 좀 나아질까?

호박 모종이 많이 자랐다. 드디어 덩굴손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지대를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일단 급한대로 망가진 텐트 폴대를 곁에 두었다.
뭘로 해주어야할지 고민이다. 호박꽃이 기다려진다. 꿀벌은 내가 해볼 생각. 

고추도 많이 자랐다. 아주 작은 아기 고추가 달렸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상추밭에 상추씨를 뿌려두었더니 상자 가득 상추 싹이다. 계속 솎아내면서 키워야겠다.

6월 8일

두 번째 수확. 들깨와 치커리는 자고 나면 쑥쑥 자라있다.
이번엔 본 잎이 나기 시작한 얼갈이 새싹도 솎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쌈밥과 강된장은 찰떡궁합이다.

6월 11일

며칠 햇살이 따가울 정도더니 오늘은 비가 오려는지 엊저녁부터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고추와 호박이 많이 자랐다. 자고 나면 자라 있으니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베란다 텃밭엔 더덕과 머루와 호박, 세 종류의 덩굴식물이 자라고 있다. 더덕은 지난 겨울 먹으려고 산 더덕 중 두 개를 베란다 텃밭에 꽂아 둔 것이다. ‘싹이 날까…’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느다란 순이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덩쿨손이 올라왔다.

머루는 화분에 심어진 채로 아파트 장터에서 작년에 산 것인데 비실비실거려서 텃밭에 옮겨 심었다. 이 녀석도 잊고 있었는데 새 순이 나오기 무섭게 덩쿨손이 자라나 급기야 더덕이랑 싸우고 있는 중이다. 거의 90도 꺽어 호박을 위해 세워둔 망가진 텐트 폴대를 점령한 무서운 녀석이다.

마지막 주자이자 기대작인 호박을 위해 줄을 매고 실로 덩쿨손을 묶어 줄과 이어놓았다. 모두들 햇살이 환한 베란다 창에 바짝 붙어서 싸울 판이다. 그 흔한 햇살을 맨 몸으로 실컷 만나게 해주지 못하니 미안할 따름.

열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자라기 힘든 것 같다.

골을 깊게 하여 드문드문 뿌려도, 화분이 아닌 베란다 텃밭에 바로 뿌려도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마구마구 웃자란다. 

햇살이 다른 녀석들보다 아주 많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무랑 짝꿍인 얼갈이는 그래도 잘 자라주어 본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웃자라기는 했지만 열무처럼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자란다.

조만간 얼갈이 겉절이나 얼갈이 된장국 서너 번 끓여 먹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