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덕 (사)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경남대 교수)

식량정의란 식량의 생산·가공·유통·소비 과정 등에서 보이는 불평등이나 불의에 대한 대응을 말한다.

이러한 대응은 먹을거리의 생산·가공·유통·소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필요하다. 식량정의와 관련된 활동 및 운동은 농지불평등 완화, 농업 및 식품산업 노동자의 인권과 복지, 동물복지, 생태 및 생물다양성 보호, 계층별 식량접근 불평등의 완화, 전 세계 기아 문제에 대한 관심, 공정무역, 기업의 먹을거리 범죄에 대한 대응 등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우선 농지불평등 완화를 위한 움직임이다. 많은 나라의 농민들이 농사지을 땅이 없어 고통을 겪는다. 농지를 갖지 못한 농민들은 비싼 소작작료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또 임차계약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지주가 땅을 임대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영농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농지 개혁이 있다.

인권과 복지에 대한 관심 역시 식량정의 운동의 하나로 들 수 있다. 세계 식량체계에서 값 싼 식량의 추구는 싼 노동력을 찾게 만들었고 특히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증가하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이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작업조건·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지속가능한 먹을거리를 위해 중요하다.

공장식 축산으로 침해되고 있는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도 주목할 만하다. 일부 사람들은 사람의 복지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데 동물복지가 왜 필요하고 중요하냐고 이의를 달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동물복지는 인간복지와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물에 투여되는 항생제는 사람에게 투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우병에서 확인되었듯 동물의 재앙은 곧 사람들에게도 재앙이다.

식량정의 운동의 또 다른 영역은 현대 먹을거리 생산 방식으로 인해 파괴된 생태 그리고 현저히 줄어든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산업형 농업과 단작재배, 녹색혁명 그리고 바이오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유전자조작 농업은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하고, 생물다양성을 크게 감소시켰다. 세계적으로 ‘슬로푸드 생물다양성 재단’의 활동이나 ‘슬로머니’ 운동이 주목된다.

계층별 식량접근 불평등의 완화도 있다. 인종·계층·연령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적절한 식량에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현실에 있는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한다. 미국에서는 계층에 따라 대형마트, 좋은 고기 판매장소, 신선한 채소 판매장소, 좋은 식당 등에 대한 접근성이 다르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먹을거리에 대한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곳을 먹을거리 불모지(Food Desert)라고 하는데, 이러한 먹을거리 불모지는 대도시의 하층계급이나 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종종 있다.

전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과 공정무역운동, 식품기업의 먹을거리 범죄에 대한 대응 등 식량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세계적인 활동과 네트워크도 활발하다. 이 모두 사회적 약자의 식량 보장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식량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길, 그 중심에 한국의 농업, 먹을거리, 환경단체가 앞장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