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어떤 공연을 보다가 가슴이 뭉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런 뜨거운 감동은 이름난 사람들의 공연이나 연극이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작품 속에서 더 많이 느껴진다.

경북 칠곡 석전에 광주이씨 문중의 고택 3채가 모여 있는 동산재(東山齋)가 있다. 300여 년 전의 인물들이 살았던 고택이다.

이곳에서 지난 6월 21일 밤 매우 뜻 깊은 공연이 펼쳐졌다. 칠곡 다문화 오카리나 앙상블 팀의 제2차 정기연주회다.

▲ 6월 21일 칠곡 왜관 광주이씨 문중 동산재에서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모습

내가 마음이 아주 뜨거워졌던 대목은 우정출연으로 무대에 오른 칠곡생활개선회 어머니들의 하모니카합주로 노래 3곡이 울려 퍼졌을 때다.

<유정천리>로 이억만리 타국 땅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민여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름다운 것들> 연주에선 지금 한국농촌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 존재 자체가 아름다웠고, 또 <고향의 봄>으로는 그리운 고향을 각자의 느낌으로 함께 담아내며 하나가 되길 기원했다.

▲ 칠곡생활개선회 하모니카 합주단

▲ 박지은 양의 독주 <님과 함께>

이런 의미를 담은 3색 하모니카의 선율은 6월의 깊어가는 밤을 촉촉이 적시고도 남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이주여성들을 맞이하는 이 땅 엄마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말 뜨거웠다. 공연장 마당 한 켠으로 멀찍이 걸어가 그 여운을 맘껏 즐겼다.

“저 엄마들…참! 괜찮네…”

합주 독주, 삼중주, 우정 출연 등 지난 2년간 함께 연습하여 정 나누고 생활을 나눈 오카리나 앙상블팀의 공연은 아주 훌륭했다. 특히 넷다우찬타손 씨의 딸 초등학교 1학년 박지은 양이 우정출연무대에서 연주한 <님과 함께>는 모든 사람들의 환호성을 불러일으켰다. 참 단단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 연주회 안내 팜플릿

칠곡다문화오카리나 앙상블 팀은 이해숙 씨의 지도, 이순옥 씨를 단장으로, 단원은 넷다우찬타손(태국), 요시다나루미(일본), 바타홀랑(몽골), 후인티황이엔(베트남), 리만시아(중국), 콩이엉콰(중국), 김소연(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1년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마련한 결혼이민여성과 함께하는 뮤지컬교육프로그램으로 시작해서 그해 7월 1일 오카리나앙상블 동아리를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오카리나

그동안 일주일에 한번 3시간씩 모여 연습을 하고 공연이 있을 때는 여러 차례 만나 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공연이 있고 연습이 많아지면 가족들이 총출동하기 마련이다. 앙상블팀은 단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과도 소통을 한다. 아이를 봐주고, 공연차량 운전하고 공연물품 옮기고…모든 뒷바라지는 다문화여성들의 남편들이 도맡아 한다.

▲ 지난 5월 30일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칠곡농산물 서울로 오다’ 행사에서 칠곡 다문화오카리나 앙상블 팀이 찬조 출연해 공연하는 모습

공연하는 앙상블단원들은 자신 있고 활기찼고 당당했다.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기대효과는 다문화여성들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얻은 것을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한국에서 적응해나간다는 점이다.

“오래 같은 길을 가면 서로 닮아가는 걸까요? 우린 서로 너무 많이 닮았어요. 누가 이젠 한국 사람인지 다른 나라 사람인지 사람들이 보면 헛갈려 할 때가 많아요. 일본, 베트남, 몽골, 중국, 태국…국적도 다양하지만 이젠 누가 봐도 한국 사람입니다.”

“앙상블의 단원들은 단순한 동아리회원들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입니다”(이순옥 단장)

최근 우리 농업·농촌의 중요한 흐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중추적으로 커지는 흐름이고, 둘째 젊은 귀농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다문화가정의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초등학교는 이미 상당수의 아이들이 다문화가정 아이들이고,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리는 집은 대개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같이 농업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외국인 도시근로자들은 곁에서 많이 볼 수 있어서 피부에 와 닿았지만 농촌의 경우는 조금은 먼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촌현장에서 다문화가정이야말로 우리농업의 구체적 현실로 대두되면서 다문화가족(多文化家族)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우리농업의 구체적 현실일 뿐 아니라 앞으로를 예상해도 농업농촌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므로 도시민과 소통하는 농업농촌의 이야기를 구상을 할 때 다문화가정을 심도 있게 다루어 보려고 한다. 즉 부수적이고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함께 돌아가는 ‘일반성(一般性)’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문화가정은 우리 안의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칠곡 동산재에서 벌어진 작은 공연은 지역의 다문화가정과 지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축제로 승화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마당 가득했던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주고받는 이야기에서도 그런 가능성은 엿보인다.

“재미있네. 의미도 있고...”
“야! 지역의 오랜 문화재 안에서 이런 공연도 가능하구나!”

그랬다.

지난 ‘과거’의 오래된 문화유산과 ‘지금’이 만나고, 이국 결혼이민여성들의 ‘다양한 문화’와 ‘생각’과 ‘끼’가 한곳에 모이고, 각자가 갈고 닦은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로 청중의 가슴을 적시고….

칠곡다문화오카리나 앙상블의 성장과정은 전국 각 지역에서 결혼이민자들의 정착과정의 모범 사례로 간주해도 손색이 없다. 문화적감성을 공유하며 여럿이 함께 배우고 익히며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배운 것들을 지역을 위해 다시 내어 놓는 공연활동을 통해 지역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가는 과정은 성공사례의 본보기로 충분해 보인다.

▲ 합주모습

한때나마 버리고 살았던 지역의 공동체관계가 소중하게 다시 살아나는 계기도 된다. 말 그대로 다문화는 다양한 생각과 지혜의 소산인 것이다.

나는 방명록에다 이렇게 적었다.
“네가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살게 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