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경기지부 총파업 현장

▲ 이날 집회에는 경기도내 각 시군에서 1천여명의 조합원이 참여, 시종 이탈 없이 대회 끝까지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14일 오전,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경기지부가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집회 예정 시간인 11시 10분 전에 집회 장소인 경기도청에 도착했다. 주변에 경찰차들이 줄 지어 서 있어 한 눈에 봐도 대단한 집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찰버스 옆에 경기도내 각 시군에서 타고 온 관광차들도 함께 서 있다.

그동안 학교급식을 취재해 왔지만 이렇게 많은 영양사와 조리사들을 보기는 처음이다. 일선 학교에서 직접 학교급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데모를 어떻게 할까도 궁금했다.

학교급식과 관련된 여러 주체들 가운데 생산 농민들을 중심으로 취재해 오면서 느낀 영양사와 조리사들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갑’의 위치에 있었다. 특히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이들은 마치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자신들이 피 땀 들여 농사 지은 것을 평가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급식에 출하 하는 농민들이 모일 때 마다 영양사와 조리사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 농민들은 이들이 친환경농업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하소연과 함께 일반 농산물 기준으로 평가되고 있는 친환경농산물의 기준을 시정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와 함께 요구 하는 것이 영양사와 조리사들에 대한 교육이다. 교육청이나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이들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회 시간이 넘었지만 주최측은 집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참가자들이 몰려 오고 있기 때문.

“여기는 급실실이 아닙니다. 여러분! 좁은 급실실에서 앉 듯 움츠리지 말고 넓게 앉으세요”

대회 진행 요원이 대열을 정돈하면서 하는 멘트를 통해 이날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집회가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8월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목을 매 자살한 동지를 기리는 묵념을 했다.

지난 8월 22일 충북 청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실무원으로 근무하던 53세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과학실의 실험 약품과 기자재를 관리하고 수업을 준비하며 수업시간에는 보조교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3월 충북교육청이 교무ㆍ전산ㆍ과학ㆍ발명교실 실무원 등 4개 비정규직 직종을 ‘교무실무사’로 통합하면서 업무가 크게 늘어 학교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면서 유급 병가 14일과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한 뒤 결국 6월 말 퇴직했다고 한다.

그런데 퇴직 후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고용센터에 갔다가 무급 병가 46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에 학교 측에 무급병가가 있는 줄 몰라 퇴직했다며 퇴직 철회를 요구했지만 거절 당하자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올렸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도 똑 같은 답변을 받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은 아플 경우 연간 최대 60일의 유·무급 병가만 사용할 수 있는데 반해 정규직은 60일의 유급 병가에 1년간 급여의 70%를 받으며 휴직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병가 뿐만 아니라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이 정규직의 40%에 불과하고 명절상여금과 성과상여금은 물론 식대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3년 동안 근무했지만 병으로 인해 퇴직하는 과정에서 비참함과 황당함,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없이 물러나야 하는 나의 삶이 고통의 날을 보냅니다”라고 청와대에 민원을 올렸다고 한다.

묵념이 끝나고 줄줄이 연사들이 연단에 올랐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우롱하지 마라”

▲ 연단에 모인 단체교섭 대표들. 이들은 집회 중간에 경기도교육청과 단체교섭을 벌여 재량휴업일 유급, 공무원과 동일한 근무시간 등을 타결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김상곤 교육감도 이들에게는 더 이상 진보교육감이 아니었다.

“우리가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살았습니다. 10년동안 똑같은 임금으로 살았습니다. 말을 안하고 사니까 아무도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요구가 무리한 요구입니까? 김상곤 교육감 당신 진보교육감 맞습니까?”

한 특수학교 선생님이 연단에 올랐다.

“특수학교에서 장애 학생을 돌보다 머리에 받혀 이가 부러져도 본인 돈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위험수당 주면 안됩니까? 옆에 있는 선생님들도 저희가 밥값을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밥 때가 되면 지나가던 사람도 불러 밥을 나눠 먹는데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 만도 못합니다”

그는 수학여행 따라가서 식사와 잠자리까지 함께 해야하는데 야근수당도 안 주고 시간외 수당도 안 준다면서 “유령이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급실실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연사는 “우리는 섬에 살고 있다”며 울먹이면서 주위를 숙연케 했다. 그는 “우리를 학교의 가장 후미진 곳에 처박아 놓고 바보 취급을 하고 있다”며 이번 파업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고발했다. 파업을 한다고 교육청에서 공문까지 보냈는데 정작 급식실에는 이러한 사실조차 알리지 않아 회원들이 카톡으로 공문을 받아봐야 했다며 “우리를 조리실 바보로 안다”고 성토했다.

현장발언이 모두 끝난 뒤 이들은 굳게 닫힌 교육청 정문에 각종 요구사항을 담은 스티커를 하얗게 붙인 뒤 차가운 바닥에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수원시내 행진에 들어갔다.

▲ 집회가 열리는 동안 경기도교육청이 문을 굳게 닫아 놓자 집회 참가자들이 교육청 대문에 각종 요구사항이 담긴 스티커를 빼곡이 붙여 놓았다.

학교 급식실의 영양사, 조리사를 비롯해 사무행정직, 돌봄교실 교사, 방과 후 수업 교사, 영어전문강사, 경비 노동자등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전국여성노조, 전국학교 비정규직노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던 박근혜 정부와 교육부를 성토하며 14~15일 경고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10월 14일부터 11월 8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93.2%의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됐다.

이날 집회에서 이태의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장은 “정부와 교육청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을 시에 전국 1만 2천개 학교에서 조합원들이 동시에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농민들이 그렇게 무서워 하는 급식실 사람들의 근무 환경이 저토록 열악하다니. 결국 농민들의 친환경농산물의 품위를 낮춰 달라는 요구는 이들에게 더욱 더 곤란한 근무환경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떳떳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면서 농민들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규태 기자>

▲ 시가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