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상 기자

지난 11월 22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전국친환경농업인대회에서 한 농민을 만났다. 춥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술 한 잔을 했다는 그 농민과 나눈 대화가 취재기를 써내려가는 이유가 됐다.

이날 대회는 전국의 친환경 농민들이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학교급식 식재료 구매방법 개선 방안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열렸다.

집회가 열리기 1시간 정도 이른 시각 대회장에는 몇몇 농민들이 모여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기도 모 처에서 전량 학교급식만을 위해 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 농민은 정부 권장으로 친환경 농사를 지어왔지만 학교급식도 대안이 될 수 없겠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판로확보가 가장 중요한 농민입장에서 급식시장은 몇몇 농가가 전담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시장인데다가 거기에 농사를 지어놔도 최상급만 받는다는 것. 여기에 서울시 학교를 대변하는 교육청이 친환경 농산물 권장량을 더 줄이겠다고 해 답답한 마음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서울시교육청의 개선안이 권한상·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청은 학교 측 입장을 반영해 정책을 입안·시행한다는 역할에 충실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 교육청 뿐 아니라 학교라는 소비지 역시 친환경학교급식을 ‘시장기능’, ‘가격’으로만 재단하고, 그것만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 아닌지 우려 된다. 또 여기에 유통업자들도 있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얽혀있는 만큼 시장의 논리로만 재단하면 명쾌하다. 잡음이 생길 일이 없다. 머리 아플 일도 없다. 학교에서는 굳이 친환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빠듯한 한 끼 식비로 식단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한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학생들의 입맛은 이미 오래전부터 급식보다는 매점이다.

하지만 당장 쉬운 길은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생산자들이 안정적으로 생산에 전념할 수 있는 장치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급식이 될 수 있을까. 현재만으로 보면 급식은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니 농민은 감내만 하라는 것으로 비춰진다.

유통업자들이라고 식재료를 구해다 주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급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과거 일부 업체들이 검은 돈을 건넸던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공공급식 분야로 취재영역을 넓힌 후 부족한 능력에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나라 전체 농가가 호소하고 있는 어려움이다. 쌀 문제, 시장 개방 문제 등 굵직한 농업 문제에 숨막혀하며 생산비, 생활고에 허덕이는 이 땅의 농민들 이야기 역시 그동안의 취재수첩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전체 농민들의 생활이 다 함께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자의 얕디얕은 안목으로 본 친환경 그리고 급식이라는 것은 일부에게 만의 대안으로 혹은 집단 이기심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국민들의 먹거리를 정성껏 길러내는 농심을 일반농산물과 친환경농산물로 갈라 생채기를 낼 수는 없다. 다만 친환경 농민들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품위기준에 맞추기 위해 농사규모를 관행농에 비해 크게 키울 수 없다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

또 친환경 농사를 지어도 학교급식용으로 공급 가능한 농산물의 비중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낮다는 점, 더구나 서울같이 생산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지역은 클레임이 많아 농사짓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는 하소연이 귓가에 맴돈다.

최근 40년 이 나라의 농업정책이라는 게 항상 농민들을 외면만 해왔기 때문에 이들이 생존본능 앞에 민감해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는 대농으로 가고, 누구는 강소농으로 누구는 원예특작으로 갔지만 이들에겐 급식농사였던 게 아닐까. 물론 대부분 농민들은 정든 삶의 터전을 뒤로한 채 씁쓸히 도시로 향했다.

하지만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이들에겐 환경에 일조하고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자부심이 있다. 또한 앞으로 공공급식으로 확대된다면 더 많은 농민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다가가기 위해 찬 길바닥도 마다않는 게 이 시대 이 땅의 농민들이다.

학교급식은 학교라는 소비지에서도, 정치 공간에서도, 생산 농민 사이에서도 마뜩찮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교육청이 친환경농산물 사용비중을 하향 조정하고, 식재료 공급을 시장에 맡겨 가격위주로 무한 경쟁시키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공공적·교육적 기능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율 시장경쟁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공공성을 보완키 위해 마련된 현 급식정책 취지를 되돌려 시장기능에만 내던지겠다는 것은 공공기관의 역할을 일부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정책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를 살피고 보듬기 위한 것이 공공기관 존재의 이유 아니던가. 그 길이 포장된 도로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필요한 일은 귀찮기도 하면서 어렵기도 한 것이다.

농민도 국민이다. 이 한겨울 그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으로부터 되레 찬물세례를 당하는 것과 다름없는 농민들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