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관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운동 네트워크 대표

2014년 WTO쌀 개방 협상이 진행된다.

1995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이후 10년, 이어 2005년부터 추가로 10년간 쌀 시장 개방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올해 말이면 이 시한이 끝나기 때문에 정부는 늦어도 올해 9월까지는 개방 여부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수입쌀의 가격이 과거보다 높기 때문에 관세율을 400%로 매기면 수입쌀이 들어올 우려가 없다면서 쌀의 관세화를 통한 전면개방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정부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 관세 400%를 우리 일방적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인가.

쌀 수출국들이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다. 일본 사례로 하면 400%도 가능하다지만 결코 쉽지 않다. 통상 UR 규정에 의하면 지난 1986년부터 3년간 수입된 쌀과 국내산 가격의 차이로 관세를 매긴다고 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쌀을 수입한 내역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가격 차이로 매기자는 수출국들의 주장도 있었다.

또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연구용으로 도입한 수입쌀이 있고 그 가격차이로 하면 관세가 250%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농민들이 관세율만 믿을 수 없는 이유다.

둘째, 관세화 개방된 쌀을 계속해서 관세철폐 예외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011년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김종훈 한미FTA 협상대표가 국민들에게는 쌀을 예외로 했다고 했지만 미국대표에게는 쌀이 관세화 된 후에 협상하자고 해서, 쌀이 결코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 당시 한미 FTA협상 과정에서 추후 쌀의 관세감축에 대해 이미 논의한 바가 있다면 그 약속을 안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후 각종 FTA와 최근 진행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등 관세 철폐 협상에서 계속해서 쌀을 관세 감축 예외로 인정받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계속해서 감수해야 할 것인가.

셋째, 정부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쌀을 지킨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개방은 해도 쌀을 지킨다는 약속, 관세화해도 쌀은 지킨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다.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던 김영삼 대통령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박근혜 대통령도 농업예산을 5조원이나 줄였고, ‘쌀 고정직불금 100만원’ 약속도 벌써 어겼다.

쌀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와 반도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를 겪어온 농민들로서는 쌀을 지킨다는 말은 자동차나 반도체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쌀은 농민이 지키고 국민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정부는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농민들은 추가 개방 없는 현상유지를 주장한다.

그 근거는 2004년 이후 전 세계의 WTO 회원국들이 사실상 현상유지(Standing still) 상태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필리핀만이 쌀의 추가개방을 실시하는 모순을 낳았다. 2004년 당시에는 곧 WTO협상이 타결될 것이고 개방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2005년 홍콩에서 우리 농민들의 치열한 투쟁과 세계 민중들의 항거는 멈춰선 줄 모르고 달리던 WTO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다. 그 이후 어떠한 나라도 WTO협상에 의해 관세를 낮추거나 보조금을 낮추는 사례는 지금까지 없다. 1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쌀은 민족의 생명줄이다. 밥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이익이 되면 지키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포기해도 되는 상품이 아니다. 쌀을 버리는 것은 주권을 버리는 것이고 쌀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