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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와 품종<농사 이야기> 홍인식 서수원농자재마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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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7  15: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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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식 서수원농자재마트 대표
7~8년 전 여름 필자는 스페인의 알리칸테라는 도시에 갈 기회가 있었다. 알리칸테에서 열린 신젠타종묘의 고추(핫 페퍼, 스위트 페퍼 포함) 마케팅 회의에 한국 신젠타종묘의 마케팅 담당자로 참석하게 됐다. 알리칸테는 지중해 쪽에 면해 있으면서 온난한 기후로 농업이 발달한 발렌시아 지방의 도시였다.

회의 기간 중 고추 재배농가와 가공공장 등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안내하던 유럽의 직원들이 한 농가의 하우스에서 조그마한 고추를 가리키며 “진짜 매운 고추인데,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마침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도 있었던 터라 용감하게 씹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매운 맛을 참아내고 다른 고추 하나 들고 그 유럽 친구들에게 먹으라고 권하면서 쫓아가니 다 도망갔다.

내가 이겼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것을 잊고 소변을 봤다. 그 뒤 그 고추를 먹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이 오래 지속 되었다.

매운 고추를 가장 잘 먹는 나라가 한국이다? 요즘은 정보의 전달이 빨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멕시코의 하바네로나 할라페뇨 등은 우리나라 청양고추보다 훨씬 맵다. 기네스북에 가장 매운 고추로 인정된 것은 인도 아삼지역에서 나는 부트 졸로키아라는 고추이다. 요즘 식당에서 매운 요리를 할 때 쓰이는 고추가루의 많은 양은 동남아에서 수입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고추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요리에 고추가 들어간다는 점 때문이다. 아마 한국보다 고추를 음식에 더 다양하고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2009년에는 신젠타 고추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을 음성의 고추 밭과 고추축제장에 안내한 후 읍내 장터의 한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대접했다. 식당에서 전 세계에서 온 신젠타의 고추 육종가들과 마케팅 담당자들은 갖가지 김치를 비롯해 탕, 찌개, 무침 등 대부분의 요리에 고추가루나 풋고추가 들어간 것을 보고 자신들이 다루던 고추의 다양한 쓰임새에 놀라워했다.

한편 한국의 고추 신품종 육성 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육종기술이 발달한 서유럽이나 미국은 파프리카, 피망 등 스위트페퍼를 선호해 그 쪽에 육성을 집중해 왔다.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채소육종기술을 가진 일본은 지금도 매운 것을 잘 못 먹어 고추시장이 거의 없다.

   
▲ 태국 방콕의 시장에는 다양한 고추가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 고추는 배추나 무보다 늦은 1980년대 초반부터 교배종의 품종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뒤 고추종자시장은 몇 차례 전기를 겪으며 급속히 교배종시장으로 바뀌어갔다. 홍일품고추, 청양고추, 다복고추, 금탑고추, 부강고추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었으며 대부분이 당시 흥농종묘에 의해 육성된 신품종들이다.

2000년대 들어 장마 때만 되면 고추 뿌리와 줄기가 썩는 역병 발생이 급격히 늘어났다. 고추가 주 수입원인 고추 단지권에서는 고추농사를 거의 지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신품종 육성기술로 2005년 역병에 강한 내병계 고추가 출시된 후 지금은 대부분의 고추 재배지역에서는 역병 내병계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초기 대표적인 역병 내병계품종은 독야청청(신젠타종묘), 역강홍장군(코레곤종묘) 등이었다. 흥농은 이 후 금강석고추 등을 개발하며 역병내병계 고추시장에서 다시 주류가 되었다.

이제 고추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고추 농사를 힘들게 하는 숙적인 탄저병, 그 병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품종의 출현은 눈앞에 다가왔다.

1998년 IMF 전후로 흥농종묘를 비롯한 국내의 몇몇 굵직한 육종회사가 다국적기업들에게 M&A(인수 및 합병)됐다.

그 때까지 흥농종묘는 중국과 인도 등 동남아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있었고 그 시장에 맞는 고추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다국적기업들은 원래 의도대로 중국과 인도에 대규모 연구시설을 세웠고 M&A했던 한국의 회사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다시 한국기업에 되팔았다.

그동안 중국과 인도 등의 육성기술도 발전했고 그 곳에 다국적기업도 거의 다 진출헸다. 하지만 앞으로도 고추를 비롯한 종자시장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있다. 열정과 패기에 넘치는 육종가들과 영업마케팅 인원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전세계 고추시장에 한국에서 개발한 신품종이 널리 심겨지는 날을 기다린다.

   
▲ 역병 저항성 고추 품종(좌), 역병에 걸린 고추(우, 2007년 전남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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