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자 마송국화 먹는식물원 교육농장 대표

작년에 꽃을 피워 차로 우리에게 평온감을 안겨 주었던 감국의 새순이 묵은 가지사이로 소복이 올라왔다.

땅이 우수에 녹고 춘분을 지나 청명이 되니 무엇을 심어도 될 듯 싶다. 포도나 배나무의 길게 자란 도장지를 전지해 올해 결실을 준비하듯 감국의 결실을 준비하기 위한 묵은 가지를 전지가위로 잘라내고 파쇄 작업을 한다.

예전에는 땅에서 걷어 들이기만 했지 돌려준다는 생각은 못했다. 화학비료를 뿌린 후 농약을 제 때에 잘 주기만 하면 농사가 그런대로 됐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땅의 부피가 가라앉아 딱딱해 지고 그런 만큼 땅속 산소량이 줄었는지 지렁이는 죽거나 다른 데로 도망을 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을 했다. 물이 마르면 소금 같은 것이 땅거죽을 하얗게 뒤덮었다. 그러면 다른 땅을 찾았다. 25여년전 농사에 입문하면서 마송국화는 이렇게 배웠다. 그 전 학교에서도 농약학이 있어서 농약의 성분에 대해 학점을 받기 위해 공부하기도 했다.

배운 대로 농사를 짓다가 먹는 농사에 너무 한다 싶어 유기농을 시작했다. 무식했다. 결과는 뻔했다. 4년 동안의 고군분투였지만 남은 것은 억대가 넘는 빚이었다.

좌절했고 타협점을 찾은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농사가 아니라 보는 농사로의 전환이었다. 꽃꽂이용 국화재배.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렇게 유기농법은 마송국화에게서 불가능이라는 과제를 남기고 멀어져 갔다.

그러나 또다시 유기농에 도전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꽃 수요는 줄고 수천평씩 하우스를 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하우스를 걷고 노지에 감국을 심었다. 우리가 얻은 것을 다 돌려줄 수는 없지만 돌려주는 농법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우리 땅에는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있고 알 수 없는 벌레와 풀들이 보인다. 25여년의 세월은 돌려주는 농법을 시도하다 마송국화처럼 포기한 사람도 많았지만 성공한 사람도 만들어 냈다. 이제 땅을 오래 쓸 수 있는 농사방법이 자리를 잡았다.

자연을 완벽하게 유지할 수는 없다. 애초부터 농사라는 행위는 인간이 생태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자연이 주는 먹을거리의 수량과 질에 따라 번식하지 않고 자연 위에 존재해 인간스스로 먹을거리를 재배, 인류종족의 번식을 성공리에 해왔기 때문에 ‘그까짓 자연에 뭐하러 투자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자국의 농산물을 팔기 위해 아낌없이 이산화탄소를 써야 하는 무역거래시스템이나 화학농법, 과다한 가축생산이 홍수와 가뭄으로 지구온난화로 또는 비만과 우울감으로 자연이 보복을 시작했다고 하면 심한 피해의식일까? 어찌 해석하던 현상은 시작됐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고되지만 작두에 한 움큼 묵은 가지를 넣고 잘게잘게 썰어 땅에 되돌려준다. 가늠할 수 없는 많은 수의 미생물들은 잘게 부수어진 가지를 먹이로 삼아 번식하고 그 분비물을 땅에 내놓으면 그 분비물은 감국의 먹이가 될 것이다.

감국은 땅속에서 풍부한 무기질을 흡수하고 햇빛을 받아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 낼 것이다. 감국은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이며, 그 강한 생명력은 마지막에 감국차로 우리 몸에서 장렬히 산화할 것이다.

감국의 자손을 위해 애쓰는 인간들을 위해 기꺼이 이 몸 바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