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 PDF 파일 지면 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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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62년 우리나라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1967년 우리나라는 GATT에 가입했다. 본격적인 상품수출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미 20년 동안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선발주자인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없던 우리나라는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싼값’을 상징으로 삼았다. 물건값이 싸기 위해서는 당연히 생산비가 낮아야 한다.
 
낮은 생산비는 어떻게 가능한가? 원자재값에서 낮출 수 없는 것을 물건값에서 낮추자니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임금을 낮추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저임금정책을 시작했다. 그 저임금으로 한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생활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기본이라는 의식주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그 적은 돈으로 이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한다는 당면과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당시 주거생활은 어땠을까? 6-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늘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단칸방생활이다.
 
한 가족이 방 하나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 살고 그렇게 방 하나씩을 차지한 5-6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살면서 화장실이며 물이며를 모두 나눠 써야했던 그 시절말이다. 한 가족이 방 한 칸에 다 모여 산다는 것은 지극히 불편한 생활이다.
 
그러나 비바람 피하고 한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하면 그것은 그리 못견딜 불편은 아니라고 백번 접어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옷도 마찬가지이다. 갈아입을 옷만 있다면 빨아가면서 갈아입으면 되니 빨래의 불편함을 조금 감수한다면 그런대로 참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먹는 것은 어떠한가?

사람은 먹어야 산다. 먹는 것이 생존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잘 먹었다고 일주일 굶었다가 다음날 되어서야 또 한끼 잘 먹으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사람은 매일 뭔가를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 적은 돈으로 먹는 문제는 매일 해결해야 한다면 가능한 방법은 간단하다. 먹는 게 싸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저임금정책과 함께 먹는 것도 싸야하는 저곡가정책을 시작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는 이 기본적인 저임금 저곡가정책의 기조를 바꾼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도 농산물값이 조금이라고 오를 기미가 보이면 정부는 당연하다는 듯이 농산물 수입을 결정한다. 그렇게 수입한 농산물을 시중에 내놓고는 농민들에게는 가격경쟁력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임금을 올려줄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생산비에도 못미치는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는 농민들과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급여로 인해 밥조차 맘 편히 먹을 수 없는 노동자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교묘한가. 아니 위정자들은 얼마나 교묘한 논리로 우리를 쉽게 속이는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노동자의 최저임금 1만원 주장에 대해 ‘경제가 힘든데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으로 쉽게 치부한다. 자신이 바로 그 노동자임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농민들의 농산물 최저가격보장 주장에 대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농산물 값을 올려 자기 뱃속을 채우려는 사람’으로 쉽게 단정한다.
 
누구인가. 자기 몸 움직이지 않으면, 자기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처지가 노동자나 농민이 아니라 국민이고 노동자 농민이 국민의 생존을 힘들게 한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사실 우리가 식량주권을 이야기하기도 전부터 우리는 직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그리고 직거래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빠지지 않고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가 노동조합과 함께 이 직거래 문제를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에 노동자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먹자고 하는 것, 더 나아가 친환경농산물을 먹자고 하는 것은 노동현장을 너무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질책 아닌 질책을 듣곤 했다.

지난 4월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진행했고 곧 2차총파업도 결의를 했다고 한다. 그들의 요구 가운데는 최저임금 1만원 보장이 있다. 계산을 해보니 최저임금이 1만원이면 월 200만원이 못되는 급여가 기본급이다. 물론 6천원도 안되는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월 급여는 그에 훨씬 못미친다. 그러나 고백컨대 한번도 나는 최저임금을 월 급여로 환산하는 노력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다.
 
지난 4월총파업 때에야 비로소 계산을 해보고 스스로 놀랐고 나의 공부의 뿌리없음에 대해 엄청난 반성을 했다. 한달의 노동으로도 값싼 수입농산물로 만든 값싼 가공식품으로 밥상을 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루의 노동 끝에 한잔 곁들일 막걸리가 국산쌀 막걸리가 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동안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나의 숱한 주장을 이렇게 바꾸기로 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국산쌀 막걸리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