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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칼럼]여성농민을 생각하다[47호/2면/공공급식/김은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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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2  1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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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PDF 파일 지면 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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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금 날씨가 죽은 듯하더니 8월 27일 서울 날씨는 한여름날씨 못지 않았다. 그늘 하나 제대로 없는 서울역 광장에 많은 여성농민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농민대회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남성농민들보다 여성농민들의 평균연령이 훨씬 높다. 평생을 농사밖에 모르던 어르신들이 젊은(?) 여성농민들과 그 먼길을 버스타고 달려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항상 이 어머님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어쩌면 이 어르신들이 꼬부라진 허리로 굳이 그 더운 서울역 광장에 자리잡고 앉아 젊은 시절에는 꿈도 꾸지 않으셨을지도 모르는 주먹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에서 그야말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기 떄문이다.

8월 27일 대회에서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농민노래단인 ‘청보리사랑’은 노래를 부르기 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농촌으로 시집간다는 말에 무조건 말리셨던 어머니,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사에 담아 노래를 했다.

다른 대회와 다른 모습도 있었다. 여성농민들은 ‘세월호’ 어머니에게도 자리를 내주었고 그 어머니들과 연대하기 위한 ‘공연’도 준비했다. 새끼줄에 일일이 세월호 어머니를 위로하는 리본을 매달고 그 새끼줄을 돌려 모금을 하기도 했다.

이것을 보면서 또다시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 또한 다른 집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회 마지막, 198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결의, 혈서를 그 어머님들이 쓰셨다. 스스로 손에 칼을 대고 피를 내어 글씨를 써나가는 여성농민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혈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돌아서서 하나같이 괜찮다고 웃으셨지만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것 같아 같이 웃을 수 없었다.

같은 여성이면서 ‘농민’이 아닌 ‘여성농민’이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나도 적어도 자식이 생기기 전에는 ‘여성’이라는 것을 그다지 의식하거나 고민하고 살지는 않았다. 내게 ‘여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되기 시작한 것은 나도 ‘어머니’가 되고부터였다. 마찬가지로 ‘여성농민’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도 내가 ‘어머니’가 되고서부터였다.

그냥 자식을 낳아서가 아니라 그 자식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줘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난 진짜 ‘어머니’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여성농민이 모이는 자리에 항상 있었다.

여성농민.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날 하루 가족들이 먹을 먹을거리들을 미리 준비하고, 그날 해야 할 농사일을 미리 끝내고, 그리고도 온갖 걱정을 하면서 대회장에 온다.

‘여성농민’은 그냥 ‘농민’이 아니라 ‘농민’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이다. 그 겹겹의 삶을 온전히 견뎌 내 오신 어머니들이 그 세월을 적어도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시려는 그 마음 하나로 모이신 것이다. ‘언니네 텃밭’을 시작하면서 생전 처음 당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드셨다는 어머니들. 그 통장에 찍힌 당신의 이름 석자와 거기에 박힌 숫자를 보면서 생전 처음 온전히 자신의 몫인 수입을 가져보셨다는 어머니들.

어쩌면 그게 오늘 ‘여성농민’들의 지위를 보여주는 현 주소일 것이다. 그들이 지금 자신들을 농업의 공동경영주로 이름을 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미 농사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농민’이 되기에는 참으로 힘든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여성농민’도 ‘농민’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높은 ‘농민’의 문턱을 ‘공동경영주’로 다시 넘으려 하고 있다. ‘어머니’란 오로지 희생을 바탕으로 가족을 돌보고 살림을 챙기고 그렇게 사는 삶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내고 스스로 주체로 서기 위한 노력을 마다 않는 그런 ‘어머니’들이 그날 서울역 광장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그런 삶이 자신들의 자식 세대에는 당연한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하나만으로 뜨거운 볕 아래 서신 것이다. 어찌 이것이 ‘여성농민’만의 문제이겠는가. ‘농민’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날 서울역 광장이 참 밝게 빛났다.

여성농민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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