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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정부의 밥쌀 수입 강행과 쌀값 폭락에 대한 우려로 농민들 가슴이 타들어가는 가운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 하나 더 성난 농심에 불을 지르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사실상 타결되자마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국도 TPP 참여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꾸준히 TPP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 때 최 부총리의 발언은 사실상의 참여 선언과 같다.

세부 협정문이 공개되어야 보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TPP에 참여할 경우 최소한 쌀의 추가 개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이 합의에 이를 수있었던 것은 일본이 미국 쌀을 추가로 더 수입하겠다고 양보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TPP협상에서 일본은 기존의 쌀 의무수입물량(TRQ)이외에 미국과 호주로부터 쌀을 추가로 더 수입하기로 합의를 해 주었다. 이 때문에 일본 내부에서도 농민들이 즉각적으로 반발하면서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쌀 추가 개방을 무기로 삼아 미국의 러셀 차관보는 일본과 같이 한국도 미국 쌀을 추가로 더 수입해야 TPP에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기자회견까지 한 바 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쌀의 추가개방을 강력히 요구할 경우 정부는 TPP에 참여하지 않거나 아니면 쌀을 추가 개방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경우 정부의 선택이 쌀의 추가 개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은 과거의 수많은 통상협상 경험으로 부터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와 베트남 등도 한국이 TPP에 가입하는 대가로 자국 쌀에 대한 추가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쌀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추가 개방 역시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본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폐지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현재 일본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수산물에 대해서는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 일본은 이 조치를 폐지할 것을 그동안 꾸준히 한국에 요구해 왔다.
 
TPP 가입 문제에서 칼자루를 쥔 일본이 한국에 공세를 취할 것이란 점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칠레 역시 391개 농산물에 대한 추가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칠레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2단계 조치로 391개 농산물에 대한 추가적인 관세철폐 및 관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은 쇠고기, GMO, 유기농식품 등에 대한 규제완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여 진다. 비록 최 부총리가 TPP에 참여하더라도 쌀을 제외하겠다는 발언을 하였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별로 없다. 오히려 농민들은 최부총리의 발언이 일회성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어떤 일이있어도 쌀의 추가개방은 없다는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TPP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농민의 생존과 국민의 밥상을 모두 내던지면서 TPP에 참여하는 대가로 얻어지는 경제효과는 국내총생산(GDP)이 10년 후에 약 1.7∼1.8% 증가할 것이라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수치가 부풀려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이 수치를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경제효과란 것이 10년 동안 연평균 약 2조 5천억 원내지 3조 원 정도 증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경제효과만을 따진다면 TPP에 참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안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현재 30대 재벌이 사내 유보금으로 쌓아놓고 있는 약 710조원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신규 고용 증대, 사회보장제도 및 복지제도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다. 약 1조원 정도만 풀더라도 연간 국내총생산은 약 3조원 증가하는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다. 경제효과 측면에서는 이 방법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게다가 이 방법은 사회적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TPP 참여로 얻어지는 경제효과는 대부분 재벌과 대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양극화 및 불평 등을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로 나타지만 위와 같은 방법은 그 혜택이 국민 대다수에 돌아간다는 점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결과도 가져다준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농민의 생존과 국민의 밥상안전을 팽개치면서까지 TPP에 참여해야할 이유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TPP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분명한 정답을 두고도 굳이 틀린 답을 강요하는 것은 정부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