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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칼럼]급식실에서의 잔상[53호/3면/공공급식/영양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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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2  18: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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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PDF 파일 지면 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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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육공무직본부 영양사분과 기자단전국교육공무직본부 영양사분과 기자단

올해도 어김없이 달력은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은 누가 가라고 손짓하지 않아도 잘만 가는데… 거기에 계절도 휙 바뀌어 어제는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본 거리의 모습, 길가의 나뭇가지가 하얗게 눈송이를 이고 서 있는 모습이 꼭 내모습이 투영된 듯하다. 급식일을 하면서 부쩍이나 생겨버린 나의 흰머리카락처럼.

잘 해도 잘 했단 소리를 못 듣는 곳이 급식이라 했던가? 그저 평타만 날려도 그날은 잘 지냈다는 안도의 숨을 내 스스로 쉬어야만 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버릇이 되었다. 조리지시를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막상 최종 조리를 하고 나면 내가 처음에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나오는 급식조리의 결과물.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급식실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외부에서는 알까? 그저 하루가 조용히 지나가고 밥이 제시간에 나와 있으면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는 듯한 급식실의 모습.

그러나 그 밥 한 끼가 완성되고 차려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말들이 오가야 하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져야 하는 것을 안다면 급식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밥을 먹을까? 꼭두새벽부터 내 새끼는 밥을 대충 차려주어도 학교급식만은 제대로 준비하려고 어두컴컴한 거리로 나와 출근길을 서두르는 내 모습부터 업체들과의 물품검수 그리고 조리사들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의 관계에 의해 차려지는 한 끼의 완성된 식판. 정말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제는 급식조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조리실에서 담당 조리사들과 실랑이를 하였다. 배식은 다른 날보다 1시간 정도 당겨져서 조리도 빨리 이루어져야 했지만 그저 모든 일들을 대충하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어 한마디 했다.

“일을 제대로 좀 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그랬더니 “잘하고 있다”고 큰소리가 되돌아온다. 그러고서는 뒤 돌아서서 궁시렁 궁시렁. 끝도 없이 이유가 쏟아져 나온다. 오후에 일이 끝나고 조리장을 불렀다.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보니 그 조리사는 원래 그렇단다. 누구 말도 안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고 나서 잘 안되면 나중에 조리지시서대로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그럼 최종조리라도 깔끔하게 잘 나오면 괜찮은데 그것도 아니고 고집은 황소처럼 세서 아무도 그 조리사를 말리지 못한다고 한다. 참 들을수록 가관이었다.그럼 그동안 내게 보여진 모습은 다 가식이었단 말인가? 급식실안에서 생기는 일중에 가장 힘든 것이 사람과의 관계인데 어찌 그 분은 그런것들을 이용하기만 했단 말인가?

편안한 마음으로 조리를 하여야 밥을 맛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항상 큰 소리 안내고 조용조용히 일처리를 하려 했던 내 성격을 이용하였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새삼 조리사들이 다시 보였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식판 모습을 만들어 내려면 수많은 일들이 거쳐가는 중에 조리인력들과의 부딪힘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해는 한다. 각 가정에서 40-50년 동안 남편들을 이기고 주도권을 행사하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조리실에 출근한다고 그 성격들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막무가내식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조리실도 엄연한 직장이다. 상하체계가 있는 곳이고 일에 대한 책임자가 있으니 따라야 하는것이 마땅한 것이 아닐는지… 혹여나 이런 마음도 든다. 그들도 비정규직 나도 비정규직. 그래서 ‘막말로 지랑 나랑 다를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직 그것은 나의 기우이기만을 바란다.

영양사를 급식실의 책임자로 세워 두었으면 그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대우도 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듯하다. 그저 바깥으로 보이지 않고 속으로만 곪아 있으니 외부에서는 알지 못할 수도 있고, 우리 자신도 힘들다고 표현도 하지 않으니 어찌 알까?

제발 우리 자신도 조용히 맛있는 밥만 해주려고 애쓰지 말고, 힘들다고 정말 힘들어 죽기 직전이라고 세상 밖으로 표현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우리를 돌아봐 주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혼자 갇힌 울타리 안에서 힘들다고 아무리 끙끙대도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다면 세상 밖으로 표현이라도 좀 하고 살자.

단,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서 함께 힘을 모아 우리도 좀 봐 달라고 힘들어 죽겠으니 고생하는 것에 대한 대우라도 개선을 해달라고 해야 요구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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