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PDF 파일 지면 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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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인 지난 12월 22일 저녁 김포시 교육나눔터 ‘곳간’에서 ‘이야기가 있는 30인의 김포 로컬푸드 밥상’ 행사가 열렸다. 매달 개최하는 이 행사는 이번이 세 번째로, 김포시 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위원회와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김포지부가 함께 준비한 것이다. 연말을 맞아 김포시 학교급식 관련자들과 슬로푸드 김포지부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 송년회도 겸한 행사였다.

김포시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위원과 모니터링단, 출하회 생산자, 학부모를 비롯해 김준현 경기도의원과 정하영 김포시의원 등 한 해동안 김포의 학교급식 각계에서 수고해온 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눴다. 식사 후에는 원광대 김은진 교수의 ‘산업화 된 현대 식품 체계의 문제점’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들었다.

마침 동짓날이었던 이날의 메뉴는 팥죽. 그냥 팥죽이 아니라 김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오신 79세 할머니의 레시피 그대로 끓인 그야말로 슬로푸드 밥상이었다. 슬로푸드 김포지부 한기자 지부장은 “날을 굳이 오늘로 잡은 건 송년회의 의미도 있지만, 동짓날 뜨끈한 팥죽 한그릇씩 나눠먹고 내년에도 구신에 시달리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아세(亞歲)’라고도 불리는 동지는 새해에 버금가는 날이라고 한다.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진짜 한 살을 먹는 거라는 말도 있다. 이날 팥죽의 레시피를 제공하신 이명훈 할머니는 김포시 하성면 원산리에서 태어나 통진읍 동을산리로 시집와서 아들 셋을 두었다. 이 할머니는 동짓날에 꼭 팥죽을 쑤어 아들가족들을 먹이는데, 팥은 붉은 팥과 회색이 나는 오금바리 팥을 6대 4로 섞는 것이 비법이라고 한다. 오금바리 팥이 맛은 있지만, 붉은 색이 나지 않기 때문에 붉은 팥과 섞는다. 동지에는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붉은 팥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잘 풀어진 멥쌀 밥알이 섞인, 약간 묽은 듯한 팥죽은 설탕을 전혀 넣지 않았는데도 팥 고유의 구수한 향이 살아있었다. 쌀은 이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연신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팥죽을 두 그릇씩 비웠다. 이 할머니가 직접 만드셨다는 김치와 동치미도 맛이 그만이었다.

이날 밥상 행사를 위해 슬로푸드 김포지부 회원들이 할머니를 찾아가 직접 레시피를 전수받았고,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한기자 지부장은 “나이 오십이 되도록 지금까지 팥죽 한번 제대로 안 끓여본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면서 이번 행사 준비가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말했다.

‘ 할머니의 레시피’맛본 30인의 밥상
슬로푸드 김포지부는 지난 5월 국제협회에 제출할 지부구성 최소 인원인 다섯 명의 회원으로 출발했다. 한국 내에서는 33번째 슬로푸드 지부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 번의 밥상 모임을 하면서 몇 달 새에 회원 수가 두 배인 10명으로 늘어났다. 우리 농업을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는 공공의 의미가 큰 학교급식지원센터 활동을 함께 하면서,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이라는 슬로푸드의 취지에도 동감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주지가 서울이지만 지인과의 인연으로 인해 김포지부 ‘특별회원’으로 가입한 한 주부 회원은 “슬로푸드 매니저 과정, 지미교육 과정 등 슬로푸드 한국위원회에서 개최하는 거의 모든 강좌를 수강했다. 바쁜 생활 속에 휩쓸려 먹는 것의 중요성을 잊어가는 우리에게 슬로푸드는 정말 소중한 가치”라고 말했다. 이 회원은 지난 달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 행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행사 구성은 참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같은 날인 22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 강당에서 ‘2015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 평가회’가 열렸다. 슬로푸드 한국위원회 관계자들과 지부장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지난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페스티벌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오갔다. 대부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실무자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한편, 방문객 숫자 등 대중과의 소통에서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슬로푸드 고양시 지부장은 행사 기간 동안 슬로푸드 본부 부스를 지키면서 관람객들의 많은 문의를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은 “그래서 슬로푸드가 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들과 한시간 이상씩 토론을 하느라고 다른 일을 못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슬로푸드를 알리고 확산하는 행사가 되어야 하는데, 메시지 전달에는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업체들은 “손님이 안 와서 부스비도 안 빠진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발효관을 꾸미는 데 돈이 모자라서 이마트와 CJ 등 대기업의 후원을 받은 데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행사인데도 아직 시스템 구축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행사에 참여했던 인력이 2년 후로 연결되지 않아, 매번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장료 아깝지 않았던 슬로푸드 행사, 그러나...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번 행사가 폄훼될 일은아니다. 행사장을 방문한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만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실무자들은 좋은 컨텐츠로 행사장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 행사의 내실과 가치는 훌륭했다는 평가가 많다. 홍보와 티켓판매까지 하는 데 자원과 인력이 모자랐던 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다.

한 슬로푸드 회원은 사람들의 모임인 ‘조직’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회원은 “슬로푸드는 전국에 지부가 있지만, 짧은 시간에 급하게 조직된 곳이 많다”면서 “슬로푸드 철학이 확산되고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진정 필요성을 느껴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진짜 조직이고, 오래가는 탄탄한 조직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꾸준히 이 운동을 알리면서 한국 사회에 슬로푸드라는 개념이 스며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인의 김포로컬밥상’ 같은 모임이 꾸준히 개최되는 것도 그중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슬로푸드를 주제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마음을 나누고 슬로푸드를 배우면서, 느리지만 내실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