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PDF 파일 지면 4면 참조

===>>지면보기

김분호 전주지부장

조경신 재무담당

이미숙 회원

이선희 회원

차미자 회원

안오장 예비회원

탐방 / 슬로푸드 전주 지부
슬로푸드 전주 지부는 2013년 7월에 출범했다. ‘전통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전주답게 그동안 다른 어느 지부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전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비빔밥 축제에 슬로푸드의 이름을 걸고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서울·경기 일원에서 열리는 슬로푸드 행사에도 매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에서는 제주와 함께 국내 슬로푸드 지부 중 가장 큰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50명에 가까운 지부 회원은 팔당과 제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겨울의 끝자락인 지난 2월 18일, 전주 시내 한 음식점에 슬로푸드 전주지부 회원들이 모였다. 김분호 전주지부장(59)을 비롯해 유기농 순면 아동복점을 운영하는 조경신(59) 재무담당 회원, 전통음식문화연구소를 운영하는 이미숙(59) 회원, 완주군 소양면에 귀농한 차미자(57) 회원, 이선희 덕진파랑새어린이집 원장(45)과 친환경으로 재배한 꾸지뽕 요리 전문점 안오장(69) 대표 등이 그들이다.
 
이날 모인 회원들은 지역에서 많이 먹는 음식인 ‘불낙전골’로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전주전통문화관에서 열린 출범식은 시장 사모님까지 참석할 정도로 성황이었어요. 하지만 실상은 지자체 지원도 없이 자비로 돈 써가며 출범을 했어요. 그때 가장 용기를 주셨던 분이 ‘함씨네밥상’ 함정희 사장님이에요. 나서서 돕지는 못하지만 슬로푸드 철학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싶다며 금일봉 100만원을 쾌척해주셨죠.”

김분호 지부장은 전주에 슬로푸드를 전파한 장본인이다. 젊은 시절 유아교육을 전공한 그는 아동요리라는 분야에 감명을 받아 학교, 학습센터, 지역아동센터 등을 다니며 아동요리를 전파했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줄 방법을 찾다가 약선(藥膳)을 알게 됐고, 약선 요리를 배우기 위해 서울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슬로푸드를 처음 만났다.

“2010년에 처음 남양주 슬로푸드문화원에 가서 강의를 들었죠.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내가 평생을 찾던 것이 슬로푸드 철학에 다 들어있었지요. 그때부터 혼자서 남양주를 다니며 슬로푸드 교육이란 교육은 다 이수했어요.”

전주에 슬로푸드 씨앗 뿌린 김분호 지부장
2013년 지부 출범 후 지금까지 전주지부의 왕성한 활동은 김 지부장의 열정과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2013년 말 전주지부의 첫 공식 사업으로 열린 전국미각체험교육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제17기 슬로푸드매니저 양성과정이 전주에서 열렸고, 23명의 슬로푸드매니저를 배출했다.

2년째 하고 있는 ‘장 만들기’ 행사는 회원 증대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매년 봄에 함께 장을 담그고 그것을 회원들이 나누어 먹는데 반응이 무척 좋다고. 회원 중에 된장 전문가가 계셔서 제대로 된 된장, 간장을 담가 먹고 있단다.

“2014년 10월에는 전주시에서 개최하는 전주비빔밥 축제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겁도 없이 덜컥 수락하고는 불교박람회를 찾아가서 보고 벤치마킹을 했지요. 슬로푸드 전주지부 타이틀을 걸고 부스도 크게 했어요. 서울, 경기 지역에서 열린 한국협회 차원의 슬로푸드 행사에도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고요.”

서울 마포구 오방놀이터에서 열린 ‘먹거리 정의를 이야기하는 30인의 밥상’에 전주비빔밥을 소개한 적도 있다. 전주비빔밥을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콩나물, 황포묵, 고추장 등 재료를 전주에서 준비해서 가져갔다.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황포묵의 재료인 황녹두는 지난해 이태리 국제본부 ‘맛의 방주’에 등재된 전통 식재료다. 전주에서는 지난해 황녹두와 함께 여름철에 맛보는 홍시인 재래감‘파라시’가 맛의 방주에 올랐다. 둘 다 전주지부에서 발굴해 신청한 것이다.

지부 회원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슬로푸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몸이 아팠던 것을 계기로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된 조경신 회원은 김분호 지부장을 통해 슬로푸드를 알게 된 후 미각체험 등 많은 행사에 동참했다. “완주군 고산면에 사는 친구네에서주말농장도 하고, 유기농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지은 쌀을 가져다 이웃과 나눠먹는다”는 그는 “나와 후손의 건강한 삶을 위한 슬로푸드운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년째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선희 회원은 “작년에 생긴 텃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채소를 직접 가꾼다. 제 손으로 채소를 직접 키워본 아이들은 편식이 없다”면서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요즘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의 자리였던 식당 ‘꾸지뽕시대’ 안오장 사장은 15년째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어서 슬로푸드에 관심이 깊다. 안 사장은 “단체 활동은 즐겁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면서 슬로푸드 운동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소양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는 차미자 회원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 슬로푸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지부에서 발굴한 황녹두·파라시 맛의방주에 등재
늦은 밤까지 자리가 이어지면서 많은 이 야기와 여러 가지 평가가 나왔다. 전주지부가 슬로푸드 본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 경험이 많다보니 그에 관한 평가도 없을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슬로푸드국제대회에 대해서는 쓴소리도 있었다. 슬로푸드답게 내실 위주의 소박한 행사가 더 어울리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분호 지부장은 “지난 3년 동안 본부 차원의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게 많다”고 말했다. “일정을 불필요하게 길게 잡지 말고, 행사준비에 들어가는 각 지부의 비용 부담도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주 콩나물을 잔뜩 가져갔다가 거의 그냥 나눠준 적이 많아요.
 
버릴 수는 없고, 날짜가 지나면 못 먹으니까. 행사 때마다 계속 자비 부담을 하고, 결과도 좋지 않아서 지금은 좀 지치기도 했어요.”

2014년에 슬로푸드 전주지부 이름으로 전주비빔밥 축제에 처음 참여했을 때도 어려움을 겪었다. 본부 사무국이 당시 이태리 슬로푸드 연수를 떠나면서 국내에 남은 사람이 없어서 현수막을 찍는데 필요한 사진을 받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전주에 슬로푸드매니저 과정을 유치했을 때도 그 과정을 졸업하면 식생활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했던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농림부에서 지원하는 식생활교육네트워크가 따로 있어서 그곳에서 교육 받은 사람만 강사로 투입되는 것을 보고 좀 답답하기도 했다.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후속 조치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 1만원이 현재 모두 슬로푸드 한국협회로 가고 있어서 각 지부는 자비로 활동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전주 지부의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매달 정기적인 회의나 만남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일부 회원들은 “지부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한국협회 사무국에서 실질적인 뒷받침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자리가 파하고 난 뒤에도 전주지부 회원들은 올해 해야 할 계획을 논의하느라 오랫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는 불빛이 슬로푸드 운동을 향한 이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말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