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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칼럼]낙남루(洛南樓)아래 스러져간 별들故 윤정석의장님의 영전에 부치는 글
[59호/7면/오피니언/한도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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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7  1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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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PDF 파일 지면 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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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시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역사는 선산고을을 감고 흐르는 감천(甘川) 드넓은 들을 비켜가지 않았다. 황전마을에 바람이 들판의 흙먼지를 일으키며 부는 날 윤정석 의장은 우리 곁을 떠났다. 태어나던 그 때도 들판에 농민들은 일제의 수탈에 신음 하고 있었고, 돌아가는 마당에도 그토록 외쳐 부르던 미제타도와 농민해방의 요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길, 아니 결코 돌아가서는 안 될 길을 당신은 허무하게도 너무나 쉽게 돌아가고 말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비봉산과 감천과 황전의 누런 들을 버려두고 눈을 감았다. 싸전거리와 비석거리 건재상의 일상들이 흑백사진처럼 아물거리고 고향집 누렁이는 짖기를 멈춰버렸다.
 
아!80평생 농민운동과 통일운동을 떠메고 다니다 돌아온 집은 허물어 지고 주변은 어둡고 쓸쓸했다.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어둠속에서 차라리 귀를 닫고 사는 것이 나았으려나, 깊은 치매로 죽음을 재촉했다.

사실 의장님은 전통적 농사군은 아니셨다. 황전마을에 물려받은 사과나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폐원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그것은 운동가로서 농사일에 매달릴 수 없는 부분도 작용했지만 손에 익지 않은 사과나무를 가꾸는 일이 쉽지 않아서 이기도 했다. 선산의 누런 들은 부자들을 만들어 냈고 그 중 윤 의장님댁도 밥 술 꽤나 뜨는 집안이었나 보다.
 
형제들이 일본으로 서울로 유학을 했으니 재력이 없는 집안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윤 의장님은 단대법정대학을 졸업하시고 곧바로 시골로 내려가 농민운동을 준비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후 전농이 해산된 이후 남한에서는 거의 20년간 농민운동은 없었다. 카돌릭 교회 안에서 서서히 움트기 시작한 농민운동은 70년에야 움트기 시작 했으니 말이다.
 
윤의장님은 이 시기부터 농민 운동에 뛰어드시고 여러 사람들을 농민운동가로 성장시키기도 했다. 의장님과 하루를 꼬박 보낸 일이 있다. 2010년인가. 전직 의장님들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어렵게 의장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진주에서였다.

돌아가신 권종대 의장님과 몸이 불편하신 이수금 의장님을 제하고 당신과 배종렬, 정광훈, 정현찬, 문경식, 그리고 필자가 함께 했다. 점심을 마치고 담소를 나눈 후 진주 수곡에 농민운동발상기념비를 둘러보았다.

일정이 바쁜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윤 의장님과 나는 진주 하해룡 의장님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곤 다음 날 촉석루로 나들이를 갔다. 윤 의장님은 논개가 적장과 춤을 추다 강물로 떨어졌다는 기암을 보고, 과연 바위 위에서 춤을 출만하다고 하시면서 반제 반미 역사관을 피력 하셨다. 때로는 비분강개하시고 때로는 역사 앞에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점심으로 시킨 순대국이 먹기도 전에 다식어 버릴 정도로 의장님은 후배에게 충고와 가르침으로 배고픔도 잊은 듯 했다.
 
그 날 비로서 명민하지 못한 전농의 후배는 의장님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알게 되었다. 특히 보통 의장님의 오점으로 남을 수 도있는 현직의장을 사퇴하고 민주당 선산지구당위원장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했던 일에 대해선 당신의 정치적 신념이 굳건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다. 농민진영이 하루라도 빨리 정치세력화 해야 한다는 주장을 몸으로 보여 주었노라고 하신다.
 
운동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회한이 깊으셨고 물려받은 전답지기들을 사회활동으로 곶감 빼먹듯 해서 남은게 별로 없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지는 않으나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자괴감에 쓸쓸해하신 것이 가슴에 걸린다.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치매로 입원하시기 몇 달 전이었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전직 의장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문사 대표를 맡고 있는 필자가 전농에 주문하여 돌아가신 이수금의장님이 거동이 불편하신 이유로 전주로 의장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의장님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못하시는 것이다. 이태 전에 당신과 나눈 이야기들을 기억하시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당시까지도 150살 까지 살아서 반드시 통일을 보고 죽겠노라고 큰소릴 치셨다.

아! 그러나 당신은 가고 말았다. 한반도 남쪽의 질곡의 역사를 끌어안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감천을 바라보며 황전들을 바라보며 여전히 형형한 눈빛으로 낙남루(洛南樓) 아래 쓰러져간 동학농민과 효수당한 의병장들을 생각하며 당신이 못다 이룬 역사의 귀퉁이를 부여잡고 통곡 하실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윤정석 의장님은 형형한 눈빛, 경상도 억양의 카랑한 목소리로 사자후를 뿜어내시는 지사적 풍모의 농민운동 선구자셨다. 전농의 수장으로 UR(우르과이 라운드)반대 투쟁을 이끄시고 전민련공동의장으로 전체민중의 단결을 이끄셨다.

선산읍 내 낙남루 아래 스러져간 동학농민군과 의병장 허위, 수많은 의병들이 당신을 이끈 소명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당신스스로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운동을 했다고 한다. 부디 영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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