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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 팩에 관한 단상정근우 식량닷컴 이사(김상진기념사업회 회장)
정근우 식량닷컴 이사(김상진기념사업회 회장)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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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1  1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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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우 식량닷컴 이사(김상진기념사업회 회장)
작년 중학교 3학년 이던 막내아들이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와서 가방에서 우유 3팩을 꺼내 냉장고에 넣는 것을 보고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급식이 끝난 후 교실에서 굴러다니는 우유가 아까워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무상공급도 아니고 돈을 내고 부모가 신청해준 우유인데 학생들이 마시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우유를 좋아하는 막내아들은 정작 구입신청도 안 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2~3팩을 꽁짜(?)로 건질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기분 좋단다.

그런데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무상배달 우유가 보이질 않아 이유를 물었더니 학생들의 선호도 조사에서 80%의 학생이 우유 급식을 반대하여 이제는 교실로의 배달조차 끊겼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에서도 우유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게임이 자주 보도되기도 하고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의 영향, 그리고 체질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흰 우유를 꺼려한다고 한다.

우유 급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책에서 읽은 한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1970년 칠레의 대통령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가 속한 인민전선이 발표한 101가지 정책강령 중 첫 번째가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당시 칠레의 유아사망률과 영양실조의 심각성을 놓고 보면 어쩌면 꼭 필요한 식량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 공약을 내건 소아과 의사 출신이던 아옌데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제1공약 이던 분유의 무상공급은 실시하지 못했다. 당시 칠레의 낙농업을 지배하던 스위스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좌파정권 아옌데의 협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소유하던 칠레의 축산업 목장을 강제로 국유화 당한 후의 인도적인 협조 요청하는 방식에 동의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당시 칠레의 성공사례가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나갈 것을 우려하던 미국CIA와 다국적 기업의 조직적 반대가 주요 원인이었다. 결국 1973년 미국 CIA와 결탁한 칠레의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되고 아옌데는 거기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오랜 기간 영양실조와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 (인용: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교육복지의 일환으로 우유급식을 시행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기 학생들에게 균형 있는 영양을 제공하기 위해 시행을 추진 중인 이 정책이 21세기 한국에서 학생들의 입맛 또는 선호도 때문에 전면 실시에 장벽이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생산과잉으로 창고마다 한국산 분유의 재고가 가득 차 있고 이것의 해결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에 1970년 칠레의 이야기는 더더욱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킨다.

칠레에서의 ‘우유 한 병’은 미완의 개혁, 비극적 반혁명의 상징물이다. 정권의 성격이 어떠한 이념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던 상관없이 식량의 분배와 관련된 개혁은 항상 다국적 기업과 그들과 이해기반을 함께하는 정치세력의 조직적 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그 전투에서의 승리는 철저한 준비와 목숨을 건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학교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낙인찍어 반대하고 서울시장직까지 벗어 던진 한 정치인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식량과 관련된 한국사회에서 보편적 복지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아직 내각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폐의 잔재를 안고 있는 야당의 발목 잡기가 도를 넘고 있다. 갈 길은 먼데 이해 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부의 식량정책이 문재인 정부 개혁의 방향에 맞게 힘차게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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