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어머니께서 늘 해주시던 말씀이 있었다. “골고루 천천히 먹어라.” 그 얘기를 들으면 좋아하는 반찬만 고집했던 젓가락이 한번쯤은 나물이나, 채소로 향하곤 했다. 골고루 먹으라는 어머니의 그 말은 어쩌면 건강을 위한 주문처럼 들렸다.

오전 10시30분. 급식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만큼 영양교사들에게는 바쁜 시간이다. 그 분주함 속에서 기자에게 시간을 내준 안산 호동초등학교의 정영자 영양교사(46)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먹는 것의 중요함을 늘 강조한다. 뻔한 이야기,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나이 많은 어른들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영자 교사는 어릴 때부터 만들어져야 하는 습관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유경 기자>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골고루 먹기’
“건강을 위해 5대 영양소의 고른 섭취가 필요하다고 알고는 있는데 잘 안돼요. 특히 성장기 아이들에게 고른 영양소의 섭취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영자 교사는 아이들이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식단을 준비해도 아이들이 먹지 않으면 그만이기에 더 노력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맛’을 알아요. 그래서 어떤 음식이 잔반이 나오는지 보고, 잔반이 많은 반찬은 조리방법을 바꿔 준비를 하죠. 보여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어요. 맛있어 보여야 아이들은 잘 먹으니까요.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잘 먹고... 그게 보람이죠.”

하지만 그런 고민과 노력에도 안 되는 것이 ‘나물’이란다. 그래도 꾸준히 나물을 식단에 올린다. “채소를 잘 안 먹는데 그래도 계속 먹을 기회를 만들어야죠. 먹어봐야 나중에도 먹을 수 있어요.” 지난해 영양수업에서 컬러푸드 수업을 진행하면서 몸 안의 장기와 음식의 색깔을 관련지어 설명했더니 아이들이 채소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좋아졌단다.

“흰색 채소를 먹으면 폐에 좋고, 빨간색은 심장, 주황색은 위, 초록색은 간, 검은색은 신장에 좋다고 아이들에게 수업을 했어요. 색깔별로 어떤 채소가 있는지 알려주고… 그랬더니 한 아이가 ‘우리 아빠는 담배를 피우시니까 하얀색 채소 많이 드시라 말씀드리겠다’ 하는 거예요.

그 수업이 효과가 있어서 아이들이 채소를 더 먹게 되고, 오늘 나온 나물 다 먹었다며 자랑스레 빈 식판을 보여주곤 했어요. ‘오늘 나물 맛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해져요. 잔반 줄어드는 효과도 확실하고요”라고 말하는 정영자 교사의 얼굴에는 흐믓한 미소가 가득하다.  

그렇다고 ‘맛’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급식은 맛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맛만 따진다면야 밖에 나가 사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급식을 통해 좋은 식습관이 만들어 진다. 편식을 하는 아이들에게 급식은 편식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급식은 교육이다. 정영자 교사는 덜 달고 덜 짠 음식을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처음에는 싫죠. 맛도 없고… 하지만 꾸준히 싱겁게 먹다 보면 적응이 됩니다. 식약처의 권장사항이기도 하지만 짜게 음식을 만들지 않아요. 싱겁지만 맛있게 먹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는 아이들에게 짜지 않고, 달지 않게 먹는 습관은 급식을 통해서도 만들어 질 수 있다.

하루 1,750명의 점심식사를 준비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조리사가 오늘 급식으로 나갈 군만두라며 급히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왔다. 우리가 익히 아는 기름에 튀긴 군만두와는 다르다. 정영자 교사는 오븐에 구운 만두라고 했다. 이날 급식 식단은 닭죽, 얼갈이된장무침, 군만두, 한라봉 쥬스 등. 하루 1,750명이 먹는다는 말에 기자는 입이 벌어졌다.

호동초등학교의 전체 학급수는 55개 학급에 유치원 2학급. 간단하게 계산해도 학년 당 9개의 학급이 있다. 학생수는 1,570여명. 여기에 교직원까지 더해 점심 급식으로 매일매일 1,750명분을 준비해야 한다. 도내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성인에 비해 적게 먹는 초등학생이라 해도 그 규모가 엄청나다. 그나마 작년에 비해 줄어든 숫자라니 놀랍다. 점심급식에 나가는 쥬스를 검수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급식시간에 교실을 돌아보면서 급식지도를 하는데 예전에는 하루에 두, 세 학년은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었지만 여기는 한 학년도 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20년 경력의 베테랑 영양교사에게도 쉽지 않은 양이다. 

정영자 교사는 1998년부터 식품위생직으로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2007년에 영양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의 호동초등학교는 2년째다. 중간에 1~2년 교육청에서 급식행정을 맡아본 것 외에는 계속 학교 급식현장을 지켜왔다. 우연한 기회에 일을 시작하게 됐고, 학교에서 전공은 했지만 영양사 경험이 없었기에 시작부터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오죽하면 발령을 받고 근처 학교에 가서 친구랑 2주 동안 실습도 했다. “처음 발령받은 곳이 신설학교였고 저도 조리사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식판이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닦았어요. 원래는 임용이 되고 연수를 해야 하는데 그 때는 정말 급박한 상황이어서 2월에 발령받고 3월에 바로 학교로 갔죠. 1년이 지나서야 연수가 생겼어요.” 그제서야 조리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12명의 조리(실무)사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1,750이라는 숫자가 더 크게 다가오면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호동초등학교는 올 하반기들어 급식시설 현대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보통 10년이 되면 현대화를 진행하는데 호동교는 시설 개선과 함께 학생 수를 반영해 급식시설 확대도 포함되어 있다. 시설 개선이라는 측면에서야 적극 환영할 일이지만 영양교사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우선 급식이 중단되면서 위탁급식을 수개월 동안 해야 한다. 새로 만들어 지는 조리실과 거기에 들어가야 할 집기 선정, 조리공간과 동선을 고려해 설계에서 마무리까지 영양교사의 몫이다. 특히 급식만을 전문으로 시공하는 업체가 없다보니 더욱 꼼꼼하게 챙기기 위해서는 그녀의 임무가 더 크고 무겁다. 게다가 아이들의 한끼 식사와 교육을 책임져야 할 공간이니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할까. “영양교사 혼자서 해야 하는 업무가 좀 많은 편입니다. 급식, 수업, 행정절차에 따른 서류 준비, 심지어 시설관리까지도 영양교사의 몫이죠.”
정영자 교사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급식과 관련한 제반 사항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있고, 영양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한 급식과 교육에만 집중하는 시스템이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양선생님, 밥 맛있게 먹었어요”라는 인사가 가장 고맙고 기쁘다는 정영자 교사는 1,750명의 맛있고 건강한 끼니를 위해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현장으로 바쁘게 뛰어갔다. 그 바쁜 걸음걸음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