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성남신기초등학교 영양교사

사회초년 시절, 선배들이나 직장 상사에게 듣던 말이 있다.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수상소감에 이 말을 한다. 뻔한 말, 너무 뻔해서 식상한 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기 힘든 말, 바로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두려움, 긴장, 그리고 기대감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 가득했을 때의 긍정적인 마음. 점차 시간이 지나고, 일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진 그 청량한 마음가짐. 한 가지 일을 20년이나 해온 “베테랑”에게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떤 의미일까? 성남 신기초등학교 김미영 영양교사(45)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이다. <이유경 기자>

올해로 경력 21년째인 김미영 교사는 대학에서 연구직이나 병원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졸업할 즈음 학교급식이 국가정책으로 추진되면서 “좋은 기회다” 싶어 친구와 함께 준비, 합격했다고 한다. 고향은 전남 순천이고 초·중·고·대학까지 거기서 마쳤는데 경기도에 합격하면서 바로 집을 떠나 새롭게 터를 잡았다. 1997년 첫 부임지인 희망대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줄곧 성남시 소재 학교에서 근무했고, 지금 신기초등학교는 그녀의 7번째 학교다.

3첩 반상의 전통 계승 필요

오랫동안 영양교사 생활을 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양하고 많은 학생들을 겪었다. 세월이 지나간 만큼 학생들의 입맛도 변했다고 김미영 교사는 말한다. “식습관이 변하면서 선호하는 음식도 다문화 음식으로 변했어요. 선호음식을 조사해보면 일본라멘, 팟타이, 피자 이런 것들이 나와요. 요즘 학교가 학생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고, 급식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것을 준비하기는 하지만 학교급식마저도 그런 방향으로만 흐르다 보면 전통 밥상의 계승은 점점 어려워져요. 아이들이 먹지를 않으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때부터 밥, 국, 3첩 반상으로 구성된 급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일품요리를 선호하고, 밥·국·김치의 전통적인 밥상은 멀리하게 된다. 자극적인 음식, 달고 짠 먹을거리에 익숙해지다보면 입맛도 건강도 모두 잃게 된다. “입에 좋은 것만을 해줄 수는 없어요. 건강한 먹거리,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어른
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김미영 교사는 강조했다.

초심, 정직함으로 만들어 지는 급식

▲ 성남신기초등학교 점심급식

신기초등학교는 총 24개 학급이 있다. 교직원을 포함한 700여명의 점심을 김미영 교사와 6명이 조리원이 준비한다. 21년간 급식을 계획하고 준비한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초심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정직함과 책임감이라고 답했다. 이 역시 추상적인 답변이다. 개운치 않아 보이는 기자의 표정에 김 교사는 말을 이었다. “내가 만족하는 밥상이 아니라 아이들이 편하고 행복한 음식을 만드는 것, 그리고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비단 자기만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조리원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처음 발령을 받았던 희망대초등학교의 기억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힘들었지만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었고, 당시 학교급식 초창기라 여러 가지 시도도 해봤다고 한다. 함께 일했던 조리원들과도 마음이 맞아 힘든지도 모르면서 학생들의 점심을 준비했다. 그 기억과 경험이 아직까지도 버팀목이 된다며 미소를 짓는다.

식중독만큼이나 까다로운 알레르기 관리

단체급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힘든 것이 식중독이다. 그런데 요즘 식중독만큼이나 영양교사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알레르기다.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고 원인 또한 너무 다양한데다 딱히 처방도 없어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다. 중·고등학생이라면야 스스로 조심할 수 있지만, 초등학생이나 저학년일 경우에는 영양교사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신기초에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학생이 여럿 있다. 특히 한 학생은 우유, 밀가루, 계란에 반응을 한다. 학생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에 반응하는 것이다. 학생도 조심하고 영양교사도 조심했는데 한번 일이 터졌다. 서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음식에 반응이 일어났고,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김미영 교사는 원인을 찾아낸 것은 물론, 이 학생과 꾸준히 상담을 이어갔다. 학생도 먹어도 되는 것인지 수시로 질문했다. 그 과정이 지속되면서 학부모로부터 감사의 말도 들었다.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영양교사로서의 책임감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분명한 교육철학이 필요하다

김미영 교사에게 학교급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급식에도 반드시 교육철학이 있어야 해요. 학교급식을 시작하게 된 목적과 철학이 분명히 있어요. 한 끼, 밥 이상의 의미가 있기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싶어하는 것만 공급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영양교사들도 더욱 전문화되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교육철학이 분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의 학교급식이 자리잡기까지 선배들의 고생과 노력이 있었던 만큼, 더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급식의 발전을 위해 자기 개발과 공동의 목적을 위한 관심과 시간 투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하는 내내 김미영 교사에게서는영양교사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책임감이느껴졌다. 초창기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즐거움도 경험했다. 첫 부임지인 희망대초등학교에서 조리원들과 똘똘 뭉쳐 추어탕까지 만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그녀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교사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본인 스스로 모범이 되지 않으면 남을 가르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김미영 교사. 특히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해가 돼서는 안 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단다. 결국 그녀의 초심은 ‘아이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감있게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 김미영 영양교사가 잔반줄이기를 주제로 영양수업을 진행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