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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진 칼럼] 아주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감사한다지면 제90호 15면 <오피니언> (2017.12.4)
이원영 이사/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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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13: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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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영 이사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
요즘 무척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사는 동네에서 이런 저런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 일, 거창하게 말하면 풀뿌리 주민운동이라는 게 하려고 하면 참 일이 많고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식량닷컴> 운영진 칼럼을 빌어 저의 일상을 정리해 봅니다.

주민들과 5년간 투쟁...학교 앞 화상경마도박장 막아내
요즘에 다들 저를 만나면 많이 말씀을 하시는 주제가 용산에서 마사회의 화상경마도박장을 막아낸 일입니다. 마사회가 올해 말 12월31일 도박장을 폐쇄하겠다고 만천하에 공표하였기 때문입니다. 1,200억원을 넘게 들여 만든 초대형 장외발매소를 정상 운영했다면 매년 2,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을 영업점을 폐쇄하기로 한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마사회 입장에서는 억울하게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이 화근이 되었을 것이고 지난 5년간 정치인도, 언론사들도 학교 앞 도박장 강행에 고운 시선이 터럭만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살면서 이렇게 기쁘고 통쾌한 일이 생기다니 5년간 함께 싸워온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해준 분들이 고마웠습니다.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 올 3월부터 상근
현재 저의 활동 직함, 작지만 소중한 밥벌이는 풀뿌리 시민운동단체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입니다. 올해 3월부터 상근을 시작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사는 동네에서 전문적인 주민운동을 해보자는 결심이 있었기에 즐겁고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토론하고 회의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도모했습니다. 능력도 부족하면서 아이디어가 넘칩니다. 지난 여름에는 용산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했는데 촛불정국과 대선으로 추진을 못하다가 올해 5월 봄부터 본격적으로 건립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과 함께 건립 모금활동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전개했습니다. 시민 항쟁의 경험과 정권교체의 덕인지,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에 분노한 많은 시민들 덕분인지 짧은 기간에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 모금운동에 참여했고 5,000만원이 넘는 건립기금을 훌쩍 넘겨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100만평 미군기지가 있고 외세 침략의 교두보였던 용산의 이태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것은 매우 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오가는 외국인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광경을 접하는 일이 매우 색다릅니다. 소녀상 건립 후 함께 해주신 분들과 감사의 마음으로 ‘아이 캔 스피크’ 영화를 단체 관람했습니다. 묵직한 감격이었습니다.

용산생협 창립 6년 만에 조합원 1,500명
이야기 나온 김에 제가 사는 동네 자랑을 한 가지 더 해보겠습니다. 용산에는 주민들이 만든 생활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용산생협을 창립한지 6년 만에 조합원이 1,500명이 되었습니다. 아직 운영에 어려움이 많고 아마추어 수준의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수가 지닌 의미는 매우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생명, 환경, 생태, 농업의 귀한 가치를 생각하는 소비자가 이렇게 많구나 라는 큰 자부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 아이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네 부모님은 어디서 장을 보시냐”고 물었답니다. 생협에서 장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협에 가입을 하셨다고 합니다. 가족의 안전한 먹거리로 시작해 생활의 변화를 만드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소중한 발걸음입니다.

3월부터 가족먹거리 직접 요리 시작
우리 가족 먹거리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올해 3월부터 동네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가족들이 먹는 음식의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우리 집 주방의 ‘음식 조리권’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을 보는 일이 일주일에 서너 번이 넘게 됐고 고민 끝에 최근에 전국여성농민총연합에서 하는 언니네텃밭 제철 꾸러미를 신청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마다 강원도 횡성의 여성농민들이 가꾼 텃밭 채소와 알이 실한 유정란, 콩 맛이 살아있는 두부 등을 기다리는 설렘이 가을햇살을 맞는 것처럼 행복합니다. 수준급은 아니어도 간단한 요리를 그래도 좀 할 줄 아니까, 그런 설레는 기분도 자랑꺼리입니다. 요즘에는 알싸한 가을 무, 아삭아삭 총각김치 맛이 최고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을 냉이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2017년은 온 가족이 민주주의를 체험한 소중한 한 해
이 글을 쓰는 오늘은 12월 1일입니다. 저녁에 문방구에 들러 내년 수첩을 구입했습니다. 보통 12월이 되면 아쉬움이 많았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2017년은 촛불항쟁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촛불로 만든 권력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매우 역사적인 한 해였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을 체험하게 한 소중한 한 해였습니다. 작년 가을, 겨울과 올해의 경험은 부모나 아이나 모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부에 가슴 벅찬 기대와 응원을 보내는 것은 국민들의 힘으로 만든 새로운 권력이라는 특수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이래 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뿔뚝 화가 치밀 때도 있습니다.

작은 일에 분노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고파
우리 같은 소시민들, 조금은 깨어있는 민주시민들은 가끔 아주 작은 일에도 분노합니다. 어떨 때는 왜 그러지 싶다가도 그 작은 분노가 세상을 바꿔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거대한 구조와 싸웠지만 그 싸움의 시작은 마음을 건드린 작은 일, 작은 분노이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혁명은 거대한 일이지만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마무리할까 합니다. 우리는 소소한 작은 일에 분노하면서도 자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깐깐한 말투도 고맙고, 빨간 사과에 난 보조개도 고맙고, 반갑게 인사해주는 동네 형님들도 고맙고 작은 시민단체를 과하게 평가해주는 회원들도 고맙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듯이 작은 일에 분노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면서 더 아름다운 날들을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조금은 이르지만 2018년 밝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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