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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칼럼]생명의 무게, 자존지면91호 14면 <오피니언> (2017.12.18)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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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0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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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진 교수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종종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쉽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지만 정답과는 거리가 먼 질문 하나. “냉이는 제철이 언제일까요?” 열이면 아홉은 ‘봄’이라고 대답하는 이 문제의 진짜 답은 무엇일까? 농촌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기억을 되살려 볼 수 있으련만 오늘날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몰려있는 상황에서는 모두들 갸우뚱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필자도 ‘언니네 텃밭’ 꾸러미를 받기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사실 냉이는 대표적인 월동작물이다. 즉, 늦가을부터 나기 시작해서 봄이 되면 사라지는 작물이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맛도 떨어지고 또 슬슬 씨앗을 뿌려야 하는 땅을 골라야 하는 농민들이 냉이를 한꺼번에 다 거둬들여 장에 내놓기 때문에 장에서 먹을거리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봄이 되어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연한 듯이 봄이 제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겨울이면 김장채소까지 다 거둬들인 땅에 누가 씨 뿌린 것도 아닌데 저절로 자라는 것 중의 하나가 냉이다.

이런 채소 중에는 냉이보다는 좀 더 따뜻한 남쪽이라야 가능한 듯 보이는 시금치도 있다. 그럼에도 냉이와 시금치는 격이 다르다. 시금치는 이미 시설재배가 가능하다. 시설재배가 가능하니 1년 내내 수확도 가능하다. 이런 시금치 씨앗은 이미 씨앗을 돈벌이로 여기는 기업들의 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키만 삐죽 큰 채 본연의 짙은 초록을 버리고 옅은 초록을 지닌 채 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자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시금치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설재배에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채 스스로 겨울을 나는 냉이는 얼마나 대단한가.

냉이들은 하나같이 땅에 바짝 붙어 옆으로 쫙 벌어진 채 자란다는 것이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볕을 많이 받기 위해서라도 온 몸을 활짝 열어야 하고, 또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땅에 바짝 붙어서 자라야 하니 그런 모양새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에게 처해진 조건을 이겨내고 더디지만 결국 피워내고야 마는 이 놀라움, 이것이 바로 생명의 무게이다. 이 생명의 무게 덕에 우리는 굶주리지 않고 우리의 생명의 무게를 지켜나갈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12월이면 여성농민들이 분주하게, 그럼에도 신명나게 준비하는 잔치가 있다. 처음에는 전국에서 한 곳에 모여 한 번 치르던 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늘어나 이제는 지역별로 다양하게 치러지고 있는 이 잔치가 바로 토종씨앗 축제이다. 말이 축제이지 온갖 지방정부들의 철마다 오는 흔하디 흔한 온갖 이름의 축제처럼 화려하지도 흥청망청하지도 않다. 그저 소박하게 자신들이 한해동안 기르면서 얻어낸 씨앗들을 전시하고, 한 켠에서 그 씨앗으로 얻은 작물들로 먹을거리를 조리해서 내놓고, 또 한켠에서는 그 농민들과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나눈다. 이렇게 소박한 잔치가 소중한 것은 이 여성농민들이야 말로 토종씨앗이 자신의 실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수십 년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재주 덕에 우리는 또 굶주리지 않고 우리의 생명의 무게를 지켜나간다.

자연에서 사람에게 길들여짐을 거부한 채 자라는 냉이와 여성농민들의 손에 의해 갈무리 되어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자신의 실체를 이어온 토종씨앗들에는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그런 모양새로는 결코 지닐 수 없는 위엄이다. 생명의 무게가 지니는 위엄이며 그것이 바로 ‘자존’이다.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이런 생명의 무게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명의 무게를 진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세심한 주의와 관찰력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만 눈에 띈다. 그래서일까. 우린 삶 속에서 이런 생명의 무게를 너무 쉽게 무시하거나 외면하곤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런 손쉬운 무시와 외면을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에게 비수처럼 들이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지 일방적인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듯하지만 결코 길들여지지 않고 자라는 냉이처럼, 긴 세월 자신이 가진, 남들과는 다른 그 어떤 특징을 가진 채 생명을 이어온 토종씨앗처럼, 그런 자존감을 가진 미래세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기성세대인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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