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영양교사가 되고 싶다”
[인터뷰] 황선미 화성 장명초등학교 영양교사

사무실은 김포시 통진읍, 먹고사는 집은 김포공항 근처인 기자에게 ‘화성가는 길’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황선미 영양교사와 전화통화를 하는데도 ‘뚜벅이’라는 말에 ‘차가 없으면 오기 힘들다’며 걱정을 했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온갖 포털사이트와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뒤적거려도 모든 교통방법이 2시간 이상. 그것도 환승하는 교통수단이 딱딱 맞춰 도착하는 것을 기준으로 말이다. 

겨울 햇살과 쌀쌀한 공기에서 청량감마저 느껴졌던 1월의 어느 날, 장명초등학교를 찾았다. 복도에서 한 학생에게 급식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한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걸어간다. ‘무시당한건가!’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 학생은 흘끗 보더니 다시 앞서 간다. ‘따라오라는 건가?’ 하며 가는데, 다시 뒤를 돌아보면서 “여기예요!”라고 말하더니 지나쳐 되돌아간다. 급식실 바로 앞까지 데려다 준 것.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요새말로 ‘츤데레’인가 싶다.

먼 길 오느냐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아주는 황선미 영양교사(45). 장명초등학교와 장일분교, 화수초등학교 등 세 학교의 학생들과 교직원 210여명의 건강하고 맛있는 점심을 준비한다. 할머니께서 당시 인기있던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배우의 직업이 영양사였고, ‘저 일을 해보라’는 말씀에 시작하게 됐단다. 20년 전에 영양사를 시작했고, 학교 영양교사로는 14년 경력이다. 화성지역 영양교사 대표를 맡고 있는 황선미 교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유경 기자>

▲ 황선미 화성 장명초등학교 영양교사

작은 학교의 급식이야기
장명초등학교 전교생과 병설유치원 및 교직원을 합치면 80여명. 오히려 공동조리교인 화수초등학교가 100명이 넘는다. 말 그대로 작은 학교다.

학생수가 많지 않다보니 급식비도 적고, 식품비도 많지 않다. 황선미 교사는 급식비 가운데 80%이상을 식품비에 쓴다. 친환경 쌀과 잡곡은 물론이고 친환경 가공품을 사용하는데, 작은 학교의 경우 식품비를 80% 이상 써야 친환경 급식을 할 수 있단다. 공동조리교라 인건비가 교특비로 지원되어 그나마 식품비 확보가 가능하다. 좋은 식재료가 있어야 급식도 좋아지는 것이라며, 식품비 확보를 위한 인건비 분리, 조리사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학교의 어려움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도 발생한다. 화성시는 소규모 학교에 우유를 무상급식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방학 중 우유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됐다. 업체에서 각 가정으로 배송을 해줘야 하지만 배송비용이 만만치 않아 배송업체가 난색을 표했고, 결국에는 각 가정에서 직접 방문해 한 번에 받아가는 것으로 했단다.

전교생이 14명인 장일분교는 식당이 없어서 복도에서 배식을 하고 교실에서 식사를 한다. 시설 개선을 요구해 봤지만, 작은 학교에 대한 시설투자가 쉬운 일은 아니다.

“2018년부터 농촌형 학교급식비 단가 지원이 없어졌어요. 경기도에서는 지난해와 대비해 인상됐다고는 하지만, 인상효과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됐어요. 학교가 멀리 있으니까 들어오겠다는 배송업체도 없고, 결국 유통비용마저 학교가 부담하게 됩니다. 공산품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아요. 무상급식이 아닐 때도 지원되던 부분인데, 급식인원이 적은 농촌형 학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성시의 학교급식 정책, 내 고장에 대한 자긍심 키운다
황선미 교사는 인터뷰를 하면서 화성시의 정책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냉장시설을 갖춘 배송장이 생기면서 질 좋은 식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과 잡곡, 농산물, 과일 등이 학교급식에 공급된다. 올해 ‘화성로컬푸드 제철과일 먹는 날’을 진행하면서 향남 수박을 제공했고, 이 외에도 장안 블루베리, 송산 체리 등 지역에서 생산하는 과일을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제공했다. 황선미 교사가 보여준 검수일지에는 생산지가 ‘화성’이라고 표기된 것이 많았다.

▲ 화성 로컬푸드 제철과일 먹는 날

“화성에서 생산된 식재료가 많이 들어올 때 뿌듯해요. 급식지원센터가 여러 해 동안 노하우가 쌓이면서 농가들과 계약재배를 하고 있고, 농가에 대한 교육도 하고 있죠. 지역 농업도 활성화되고 판로도 확보되는 것이잖아요.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에도 좋아요. 내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 생산된 먹거리이고, 직접 가서 체험도 하면서 지역에 대한 자긍심도 생길 뿐만 아니라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도 생기죠. ‘급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다양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화성시가 영양(교)사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하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역량강화를 위한 워크샵을 비롯해 연수도 개최해 많은 영양(교)사로부터 호응을 받기도 했다. 또한, 학생이나 영양교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학교, 학부모, 교직원 더 나아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식생활 교육, 식습관 개선운동을 펼치면서 다양하게 소통하려는 화성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급식에서 중요한 것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학교급식은 이윤 추구가 아니잖아요. 적정한 예산 집행, 가급적이면 식품비를 합리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식품비는 급식의 질과 연결되기에 식품비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합니다.” 최근 학교급식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학교급식 사진 중에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거나, 아이들 입맛에 따라 반조리 음식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표했다. “푸짐해 보이고, 맛있어 보이고, 반찬도 많고... 그런데 과연 그것이 좋기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정된 급식비에서 추가 반찬을 조리하다 보면 식재료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황선미 교사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식재료 본연의 품질이다. 친환경을 고집하고, 장 하나라도 최상의 품질을 사용하고, 양념을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려고 한다. 돈까스나 탕수육 등 반조리 제품을 살 수도 있지만 직접 만든다. 공동조리교 급식까지 하루 3차 조리를 하는데, 조리사들이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굽힐 수 없단다. 2017년에는 식재료비로 85.5%를 썼다. “고객 만족도 중요하지만, 식습관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채소가 먹기 싫었는데 먹다보니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뭉클했어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골고루 잘 먹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기쁨입니다.”

▲ 급식 잔반 줄이기 및 식생활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된 ‘환경지킴이 지구 사랑 온도계’

‘영양교사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말하는 황선미 교사. 새해에는 여러 모양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이다. 결손가정, 조부모 가정 등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식습관이 좋지 못한 것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제대로 먹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상처있는 아이들이 제대로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치유가 됐다는 것. “직접 와서 말은 못하더라도 그 아이들이 ‘우리학교 급식 짱이예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라는 다짐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