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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칼럼]대통령 신년사 유감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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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5  18: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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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진 교수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2월 마지막 날 영화 <1987>을 봤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음은 무겁고 우울했으며, 한해의 마지막 날 꼭 이 영화를 봐야만 했나 서로를 나무랐다. 여기저기 영화평을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평이 대세지만 우리는 그렇게 울지도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을 그렇게 겪은 것에 대한 우리의 어리석음과 순진함에 대해서 불평을 했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며, 다들 나름 자신의 영역에서 그 시절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 30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1987년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필자도 그랬다.

여기저기 강의를 하노라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법대 교수가 왜 농업을 이야기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1987년의 광장은 대학 새내기 시절 고시를 포기하고 4년 내내 다른 일만 하던 필자가 공부를 다시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정치경제학을 선망하는 법학도(?)로서 선택한 전공이 ‘농업법’이었다. 그때는 세상이 바뀌면 ‘농(農’)에 대한 가치도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30년이 훌쩍 지나갔다. 2017년 우리는 또 한 번 세상을 바꿨다. 그 계기도 ‘농’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농’에 대한 가치도 바뀌었는가?

6개월 전 필자는 대통령의 미국방문과 관련하여 ‘먹을거리’에 대한 무심함을 지적한 바 있다 (‘먹고 산다는 것’ 식량닷컴 지면 84호, http://www.sigr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8307 참조). 6개월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신년사를 보면서 6개월 동안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정부의 태도를 본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지난 12월 27일의 ‘2018년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발표에서 정부는 농산물 가격을 단 한 군데 소비자물가안정을 위해 언급했을 뿐이다. 대신 농업정책은 온통 스마트팜과 창업지원으로 채웠다.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스마트팜과 금융 등의 각종 ‘농업’이라는 산업의 창업지원이라니! 이건 마치 100대 국정과제에 말했던 청년들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의 재판을 보는 듯했고 ‘농’을 여전히 산업의 한 분야로 인식하는 수준을 보여줬다. 그러나 더 문제인 것은 농산물 가격의 문제를 보는 수준이다.

농산물 가격은 단순히 농민들이 돈을 벌게 해주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듬해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것을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자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결국 대다수가 저임금 노동자인 소비자들이 저임금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인 낮은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자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결과도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이 수준이 더욱 유감인 이유는 이미 50여 년 전에도 농산물 가격은 물가안정의 수단이었는데 뭔가 세상이 바뀐 듯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정철학이 ‘사람중심의 경제’라고 말하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수십 번이나 언급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실업, 중소상인, 세월호 희생학생, 어린이, 노인, 여성, 치매 등의 환자, 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심지어 장기소액연체자까지 다양한 국민을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언급하였는데도 그 25분의 발언 어디에서도 ‘농’이나 ‘농민’에 대한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러니 ‘농민은 등외국민이다, 아니, 국민도 아니다’라는 자괴감만 쌓이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것이다. 그래서 신년사에 유감이다.

어디 이뿐이랴. 신년사에서 개헌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개헌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부분은 전문가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개헌방향 또는 방안이다. 국민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원하는 개헌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조문까지 만들고 이를 근거로 천만 명 이상의 서명까지 받아낸 개헌안이 있는가. 오직 농민헌법 하나뿐이다. 필요하다면 국민개헌안을 만들어 국회와 협의하겠다면서 이런 모범사례를 만들어 낸 농민들을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지 않은가? 그러지도 못한 신년사, 참으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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