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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칼럼]먹거리문제는 또 없다지면 제95호 14면 <오피니언>(2018.4.2.)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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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4  11: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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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진 교수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대통령의 개헌안이 발의됐다. 이 개헌안이 나오기 전에 이미 농민들은 개헌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먹거리와 농업에 관한 개헌안을 만들었고 무려 1,00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농민들이 만든 개헌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권의 범주에 먹거리에 관한 권리를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주장된 것도 아니며 이미 많은 나라에서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이었기에 개헌안에 거는 기대도 상당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났다. 적어도 필자가 아는 농민들 가운데 대통령의 개헌안을 두고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식량주권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국제적으로 여러 차례의 식량주권 선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닐레니 선언 이후 처음으로 식량주권 토론회가 열렸고 그 후 10년, 그 사이 농민단체는 우리 실정에 맞게 먹거리 기본권이라는 단어로 식량주권을 이야기 해왔다. 그리고 이를 헌법에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또다시 좌절된 것이다. 이 개헌안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가 농민들의 개헌안을 순순히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없다.

이 문제를 적어도 청와대에서 강력히 주장해 줬어야 할 농어업비서관도, 행정부에서 이를 관철해 줬어야 하는 농식품부 장관도 다들 사직하고 공석이다. 그나마 몇 명 농민 국회의원이라고 해왔던 사람들의 목소리 역시 들리지 않는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범농업계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행동에 나섰겠는가.

주권은 말 그대로 주인된 권리이다. 식량주권은 식량문제에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가지자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FAO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누가 생산하건 총량만 맞추고 무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식량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적정량의 식량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비축하는 식량안보와도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적어도 식량주권은 식량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정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을 것인가에 대해 원하는 바를 국가와 정부는 관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민단체들이 이를 먹거리 기본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량, 즉 먹거리의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법제도나 정책은 이에 맞게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개헌안 어디를 봐도 이것이 없다. 개헌안 제35조 제5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질병과 보건의료에 관한 이야기다. 개헌안 제3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재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건강과 안전이 먹거리와 밀접하고 먹거리로 인해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이야기하고 있건만 불행히도 먹거리는 헌법으로 보장받지 못했다. 여전히 굶주리는 아이들을 비롯한 국민들을 위한 각종 구호단체의 호소가 있건만 이 정도의 문제는 헌법에서 보장할 거리가 못된다고 버림받았다. 심지어 제38조 제3항에는 ‘국가는 동물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까지 정해져 있다. 어쩐지 국민들의 먹거리를 보장받는 문제가 동물보호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듯하여 서글프다 못해 분하다.

우리가 식량주권 내지는 먹거리 기본권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헌법의 ‘경제’조항에서 농민들의 사정을 봐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 제6조에서 정하고 있는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기본권으로 인정되어야 ‘시장’에 농업생산을 맡기지 않고 정부가 먹거리문제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겨우 ‘공익적 기능’ 하나 넣고서 뿌듯해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정말 실망을 넘어서 절망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계획경제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단체장 후보를 보고 싶다. 아니면 또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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