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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진칼럼]제주 4.3과 감자(지슬)이야기지면 제96호 15면 <오피니언>(2018.04.16)
정근우 식량닷컴 이사/(사)김상진기념사업회 회장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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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7  13: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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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 식량닷컴 이사
(사)김상진기념사업회 회장

오랜만에 제주를 다녀왔다. 올해는 제주 4·3사건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로서 제주에서는 뜻 깊은 행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중반기조차도 ‘제주 4·3’이라는 단어는 입 밖에 꺼내기 껄끄러운 ‘금기어’였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4·3을 물으면 처음 듣는다는 사람이 많고, 설사 알아도 ‘무장공비들이 산을 내려와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매년 4월 노란 유채꽃이 절정을 이루고 벚꽃과 동백이 만발하는 최고의 계절이지만, 70년 전 이념의 갈등과 미군정 시기 이승만 정권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 엮이면서 7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고한 제주도민 3만여명이 죽임을 당한 전대미문의 이 사건은 70년이 지나도 아직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1운동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경찰의 민간인에 대한 발포사건으로 촉발되어 1948년 4월 3일~1954년 9월 21일 제주도 전역에서 일어난 대학살극이다. 남로당 무장대와 미군정, 국군, 경찰 간의 충돌 과정과 이승만 정권 이후 미국 정부의 묵인 하에 벌어진 초토화 작전 및 무장대의 학살로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여기에 이승만 망명 이후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는 반공정권 하에서 수많은 제주도민과 민주인사들은 4·3사건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고문당했던 것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지속기간은 더 길게 볼 수도 있다.

이것이 위키백과에 나오는 제주 4.3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지만, 이번 평화기행에 동참하면서 학살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었던 소름 돋는 증언들은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를 살아온 부끄러운 우리 역사의 홀로코스트에 다름아니다.

작년 5월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5·18기념식, 현충일 등 몇 번의 추도식에서 유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정성이 담긴 추도사로 국민들에게 많은 감명을 줬다. 올해 문 대통령의 제주 4·3 추도사에서는 세상에 이 비극을 알린 예술 작품을 일일이 언급하여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 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이번 제주 평화기행 중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의 촬영 현장인 서귀포 넓은궤(용암동굴)를 방문했다. 영화 <지슬>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를 배경으로 한다. 1948년 11월 제주도에는 해안선 5㎞ 밖에 있는 도민은 ‘폭도’로 간주하겠다는 소개령이 내려진다. 당시 마을 사람 120명은 토벌대를 피해 50여일 동안 마을과 가까운 ‘큰넓궤’라는 동굴에 머물지만 군인들에게 발각돼 대부분 죽음을 맞게 된다. 이 비극적 사건을 흑백영상으로 극화한 것이 영화 <지슬>이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인데 地實이라는 한자에서 왔다고 함)

실제로 제주에서는 당시 먹을거리가 부족해 감자로 연명했는데 동굴로 들어간 사람들 또한 감자로 끼니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홀로 집에 남았다가 군인에게 살해된 노모. 그 노모를 데리러 갔다가 불에 탄 초가집 폐허에서 감자를 가져와 동굴에서 말없이 나누어 먹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감독은 본인이 ‘힘든 시기를 견딜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소울푸드(soul food)라는 걸 떠올리며 ‘지슬(감자)’을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제주를 다녀온 뒤, 감자를 먹으면서 영화 <지슬>을 떠올리고 제주 4·3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감자는인류의 커다란 식량 자원이며 종자의 개량과 씨감자 기술개발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편, 통계에 따르면 제주의 감자재배 면적은 2005년 6,000ha 이었던 것이 계속 줄어 최근에는 1,800ha까지 급감했다고 하는데 기존 제주 감자품종 ‘대지’가 더뎅이병에 매우 취약하다는게 이유 중 하나라고 알려졌다.

올해 70주년을 맞아 제주4·3 유적지를 다녀오면서 대통령의 추도사에 감명을 받고, 영화 <지슬>의 현장을 다녀오며 감자가 제주 도민의 ‘소울푸드’라는 사실에 인류의 식량인 ‘감자’에 대해 여러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하루빨리 제주4·3의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고 당시 이념에 희생된 희생자와 유족들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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