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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여행기]제주의 달콤한 전통 보양식 꿩엿을 만나다지면 제96호 7면 <식품·건강>(2018.04.16)
리온소연 공정여행가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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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7  14: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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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온소연 공정여행가
달달하고 달콤한 추억의 엿

어릴 적 학교 앞 구멍가게에는 늘 엿이 있었다. 무늬 없는 투명 포장지에 싸인 직사각형의 얇은 갈색 엿과 호박엿, 가래떡 모양의 긴 호박엿이 있었다. 시장에 가면 넓은 나무판에 호박엿을 놓고 파는 엿장수 아저씨가 있었다. 딱딱해서 조금씩 녹여 먹어야 하는 엿, 휘어 쥐는 엿 등 점성도 다양해 취향별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던 시절, 엿은 그 달달한 맛과 함께 유년시절의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엿 맛을 보기 힘들어진 요즘, 제주에서 꿩으로 엿을 만드는 곳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구좌읍에 위치한 제주민속식품 꿩엿 공장(구좌읍 번영로 2178)은 성불 오름이 뒤에 있어 경치가 좋았다. 꿩엿 체험을 하고 오름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처음 맛보는 제주 꿩엿의 맛
꿩엿이라니... 어떤 맛일지, 어떤 모양일지 가늠이 안 된다. 엿에 견과류를 뿌려 놓은 것은 봤어도 고기가 들어간 엿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닭고기, 쇠고기도 아닌 먹어 본 적도 없는 꿩고기가 들어간 엿이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식용 꿩엿을 보니 엿이라는 나의 편견을 깨는 갈색 빛깔의 잼 형태이다. 일단 한 숟가락 입에 넣어 본다. 달달하고 구수한 부드러운 맛에 있는 듯 없는 듯 잘게 씹히는 고기는 담백하다. 꿩엿이라는 생소한 이름과는 달리 익숙한 맛이다. 맛있어서 숟가락이 바빠진다. 과거 제주에서는 쌀이 귀해 좁쌀로 엿을 만들었다. 좁쌀은 점성이 약해 육지와 달리 떠먹는 형태의 엿이 만들어 졌다.

꿩엿은 겨울철 기력이 떨어질 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 두 숟가락 꺼내어 아껴 드시던 제주의 귀한 보양식이다. 귀한 음식이라 집안의 어른, 큰 손주만 맛볼 수 있었다. 이틀을 고아 만들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보양식을 정성껏 만들고 먹지는 못했던 딸들에게는 서러움의 음식이다. 감기, 잔기침, 기관지에 좋고 기력 보호용으로 피곤할 때,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좋다. 이 지역 일대에서는 집집마다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지만 만드는 방법이 까다롭고 힘들어 이제는 이곳이 제주에서 유일한 꿩엿 공장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제슬로푸드협회 맛의 방주에 등재됐다. 꿩엿은 귤, 옥돔과 함께 제주 3대 특산물이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지도가 낮아 안타까웠다.
   
▲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 꿩엿에는 진짜 꿩 고기가 들어간다. 겨울철 기력이 떨어질 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한 두 숟가락 꺼내어 아껴 드시던 제주의 귀한 보양식이다.

아궁이 불로 고아 만드는 진한 제주의 맛
강주남 대표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꿩엿을 만들고 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께서 꿩엿 만드는 걸 보고 자랐으니 대대로 꿩엿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어릴 적 꿩엿은 이틀에 걸쳐 만들었어요. 아침에 어머님, 할머님이 쌀을 씻고 꿩고기를 다듬으면 하루가 가죠. 저녁 어슴푸레 해질녘에 삭혔다가 짜서 고기 시작해요. 할머니는 아궁이에서 밤새 꿩엿을 저으면서 만들고 저 같은 어린아이들은 맛보려고 지켜보다가 잠이 들었죠. 아침에 일어나면 만들어져 있었어요”

아궁이에 불을 때면 방 아랫목이 따뜻하다. 밥을 지어 당화시켜 아랫목 따뜻한 곳에 놓고 이불을 덮어 8시간 보온을 하는데 온도가 맞지 않으면 삭혀 지지가 않는다. 잘 삭혀지면 짜서 고우기 시작한다. 옛날 할머니들은 아궁이에 앉아서 처음에는 센 불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센 불을 다 꺼내고 잔불로 고았다. 그렇지 않으면 응축만 되고 맛은 깊어지지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집마다 꿩엿 만드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한다. 할머니가 고시다 깜빡 조시면 되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무른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무르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먹어야 살아남는 거예요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으니 보관하려면 수분을 많이 빼야 해서 식으면 갱엿처럼 굳는 형태가 많았다. 이십 년 전에는 꿩엿을 풀 때 숟가락이 휠 정도였다. 지금은 냉장고가 있고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방법이 달라져 꿩엿을 그대로 먹기보다 빵에 발라먹는 사람들이 늘었다. 젊은 세대는 단 맛이 강하거나 엿 향이 나면 안 좋아해서 강 대표는 냉장고에서 꺼내어 바로 빵에 발라 먹을 수 있도록 더 부드럽고 단 맛과 엿 향이 덜하도록 끊임없이 연구했다. 십여 년 전에는 동네 할머니들께 그게 꿩엿이냐고 욕도 많이 먹었다.

“꿩엿을 살리려면 사람들이 많이 먹어야 하거든요. 요즘 분들은 이게 더 쉽게 접할 수 있죠. 옛날에는 이렇게 드셨지만 꿩엿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먹어야 살아남는 거예요. 꿩엿 식혜도 만들어 보려고 해요.”

사람들이 많이 먹어야 꿩엿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는 꿩엿뿐만이 아닌 맛의 방주에 등재된 모든 음식들에 해당되는 말인 셈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맞추어진 유통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중저가 상품에 익숙해져 있다. 꿩엿을 비롯한 맛의 방주의 음식들이 그 가치와 생산과정의 수고만큼 값을 받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강 대표는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생산자로서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이 헛된 일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의 힘이다. 지역의 고유한 맛을 지켜나가는 이러한 생산자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문화의 한 페이지를 잃는 것이다. 문헌 속에 글로 존재하는 음식이 아닌 지금 나의 혀로 맛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맛, 이 맛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강주남 대표

   
▲ 꿩엿 공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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