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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여행칼럼]뜨겁게 내린 술 소주!지면 제101호 7면 <식품ㆍ건강> (2018.07.02)
김지연 수원시학교급식지원센터장·공정여행가  |  mfood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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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2  23: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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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수원시학교급식지원센터장 / 공정여행가
아찔하게 유혹하던 꽃향기도 살랑이며 불어와 마음을 일렁이던 봄바람도 지나고, 들녘이 뜨거운 태양이 부추겨 온통 짙은 초록이다. 여름은 후두둑거리는 빗소리로 시작되는 것 같다. 어제는 전국이 온통 여름비로 덮였고,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는 동네 전집의 처마에도 빗소리로 가득했다.

바늘과 실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고, 센치해진 나의 감성에 내 오랜 친구는 어김없이 불려 나와 마주보며 사는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내 놓는다.

비오는 날, 달보드레한 막걸리 한 잔을 걸쳐도 좋겠지만 어제처럼 장맛비가 장대같이 내리는 날은 감성이 한껏 폭발해서 귀한 감홍로주 한 병을 모셔와 홀짝홀짝 아껴 마시며 빗소리와 벗하기도 한다.

뜨거운 술, 소주
감홍로주는 소주다. 원래 소주는 증류주인데 소주의 ‘소(燒)’는 ‘불태우다’는 뜻을 가진 글자다. 소주는 어떤 곡식으로 술을 빚는지, 어떤 누룩을 쓰는지, 어떻게 증류하는지에 따라 그 맛과 향, 색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술이 있었다. 기후와 토양, 곡식의 종류와 품종, 누룩의 종류와 물이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 달라 아주 다양한 술이 있었다. 다양성은 넉넉함, 풍요로움, 깊음, 넓음, 곧 살아있음을 의미했다. 안타깝게도 근현대의 풍진 세월을 지나며 그렇게나 다양하던 술들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사먹는 값싼 소주는 이렇게 다양하게 정성들여 빚은 술이 아니다. 우리 농업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재료의 고유한 맛과 향을 살린 것이 아닌 값싼 주정에 물을 타고 첨가물을 넣어 만든 술이다. 물론 주머니 사정 딱한 우리네 서민들이 값싸게 먹고 취할 수 있는 술이긴 하지만...

감홍로를 둘러싼 이야기
요즘은 편의점만 가도 4캔에 만원, 8캔에 1만 5,000원하는 수입맥주가 대세인 마당에 우리 쌀로 힘들게 술을 빚어 얼마 나오지 않는 맑은 술에 귀한 약재를 넣어 증류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을 하는 감홍로주야 말로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 오를 만하다 싶다.

‘감미롭고(甘) 붉은(紅), 이슬(露)처럼 맑은 술’이란 의미를 가진 감홍로는 본래 평양 술이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3대 명주(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고, 정읍의 죽력고)를 고르고 그중 첫자리에 감홍로를 놓았다. 전통적으로 술에는 격이 있는데, 로(露)·고(膏)·춘(春)·주(酒) 순이라고 한다. ‘로’자가 들어간 술이 최고라는 말로, ‘이화로’ ‘승로’ 같은 술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 감홍로가 유일하다.

감홍로의 은은한 붉은 빛깔과 깊은 맛에 평양의 주당과 기생들이 이 술을 최고의 술로 쳤다고 한다. 근대 이후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감홍로를 맛본 뒤 ‘조선의 위스키’라고 평가하기도 했었다고.

감홍로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아주 다양하다. <별주부전>에서는 자라가 토끼를 꼬드길 때 ‘토끼야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단다’라고 회유하는 대목에 등장하고, <춘향전>에는 한양에 가겠다는 이몽룡을 붙잡으려고 춘향이가 향단이에게 “감홍로를 가져오라”고 해서 마시는 대목에 감홍로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나눈 이별주가 바로 이 술이었던 것이다. 역사 속 유명 인물들도 이 술을 사랑했다. 조선 최고의 기생이라 칭하는 황진이는 서화담을 보고 그의 남자다움을 빛이 붉고 맛이 독한 감홍로에 비유했다.
   
▲ 감홍로주와 이기숙 명인의 ‘명인인증서’
감홍로의 명맥을 잇다
감홍로를 빚는 이기숙 명인(식품명인 43호)은 문배주 기능보유자였던 중요무형문화재 고(故) 이경찬 옹의 딸이다. 이 명인은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부곡리에서 선친의 제자이자 남편인 이민형 대표와 함께 ‘농업회사법인 감홍로’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감홍로 복원을 시작해 2012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문배술은 큰오빠가, 감홍로는 작은오빠가 이어 받아 만들다가 작은오빠가 돌아가시면서 이기숙 명인이 명맥을 잇기 위해 이어 만들게 됐다. 계승자로서 증명을 해내야하는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명인의 칭호를 받게 됐다.

세 번 증류한 소주에 진피, 정향, 용안육, 계피, 생강, 지초(원래는 방풍도 들어가야 하지만 방풍은 2009년부터 의약품으로 분류돼 술에 넣을 수 없게 됐다) 등 몸에 좋은 약재 7가지를 넣어 2년간 숙성 시켰다. 선친에게서 전수받은 비법으로 술의 독을 최소화 시킨 명품이다. 감홍로는 귀한 술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기운이 있어 배를 따뜻하게 해줘 비상약으로 쓰일 만큼 약성이 좋은 술이다.

알콜도수 40도의 이 술은 높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고 은은한 향과 함께 감미롭다. 감홍로를 담은 도자기 또한 은근한 멋을 풍기는데 술을 마시고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재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에 상표도 찍지 않았다고 하니 고운 술의 맛과 향처럼 곱디고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술은 귀한 음식이다. 잔치나 제사에 빠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교두보이다. 술은 곧 문화이고 사람 사이의 대화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술 한 잔이야말로 최고의 술이 아닐까?

더위를 식히려는 듯 단비가 내린다. 빗소리 벗 삼아 달큰하고 부드러운 감홍로 한 잔 기울이며 한껏 감수성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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