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소장

농업규모화 중심의 잘못된 농산물유통구조는 소규모농가의 줄 퇴출로 이어져 왔다. 농산물 판매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금 대부분은 중간유통업자의 몫이 됐다. 규모가 작은 소농은 당연히 경쟁력을 잃어갔고 퇴출됐다. 지난 1994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국가적 흐름이다.
 
농업인구가 급속하게 감소된 원인중 하나는 몇몇 대농가를 중심으로 규모화가 촉진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농정의 화두는 억대농부 육성이라는 규모화였다. 모든 농정당국은 이구동성으로 억대농부 육성을 위해 규모화를 주창해왔다. 그것에 부응해 농업은 급격하게 붕괴되어 갔다. 땅덩어리는 좁은데 몇몇 대농들은 규모를 키우는데 혈안이 됐고, 소농들은 일자리를 잃고 농업노동자로,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흐름에 제동이 걸린 것은 완주에서 시작된 로컬푸드운동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잇는 유통구조 혁신이 소농을 살려냈고, 규모화가 아닌 가족농에 기반을 둔 다품종 소량생산운동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있다. 완주에서 입증되었듯이 로컬푸드운동은 직거래를 통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소농들은 살아났고, 귀농인들은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했으며, 직접 가공 유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질의 사회적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농민들은 많이 농사지어 싸게 파는 기존 유통방식을 거부하고 작게 짓지만 제값을 받는 로컬푸드를 선택하고 있다. 어차피 현재 농업규모화는 이미 양적팽창의 한계에 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규로 농사에 뛰어드는 농가들은 막대한 자본력이 없는 한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기가 힘들다.

흑돼지 100두를 키워 한 가족이 살아갈 안정적인 소득(연봉 4,000만원대)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의구심을 표현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존 공장식 사육방식으로 100두를 키워 판매하면 최대치로 잡아도 1,000만 원 이상의 수익은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1,000만원 소득으로 한 가족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100두를 사육해 한 가족의 안정적 소득기준 4,000만원 이상을 올릴 수 있는 배경에는 직거래가 있다. 축산업에서 복잡한 여러 단계의 유통구조를 통하지 않고 포장처리라는 1차 가공만을 거쳐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기에 돼지 100두를 사육해 한 가족의 생계문제가 해결된다.

한국에서 새로운 농업의 방향은 우선적으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이며 다음이 유통구조 혁신이다. 유통구조를 바꾸는 순간, 퇴출대상 실직 농가는 새로운 일자리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향후 농정의 핵심방향은 국민의 신뢰회복과 직거래이다. 신뢰회복 문제는 직거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것은 로컬푸드운동과 직거래를 취해온 농가들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다. 응당 한국의 모든 농정당국이 직거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농정의 총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 아직도 한국의 농정당국자들은 남들이 안하는 특이한 농업분야 발굴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농업을 살릴 수 있다. 돼지 1만두를 사육하는 억대부농 육성정책보다 돼지 100두를 사육하는 100농가를 육성하는 것이 창의적인 농업이다. 1만두를 키우는 농가에 10명의 외국인 일자리가 있다면 100두를 사육하는 100농가에는 가족이 있다. 유통구조를 바꿔야 농업을 회생시키고 농촌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