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만 하더라도 봄이면 뒷동산에 올라 나물을 뜯어 그것을 밥상에 올려먹고, 일부는 잘 말려 추운 겨울의 유용한 먹거리로 삼았다. 시골에 고향을 둔 베이비붐 세대들은 봄철에 동네 아낙네들이 취나물, 돗나물, 뽕나무 순, 화살나무 순, 두릅나무 순 등을 정성껏 채취하는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봄에 올라오는 새순은 영양가가 풍부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식재료가 된다. 옛 사람들은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되 절대로 뿌리째 남획하거나 필요이상으로 채취하는 것을 삼갔다.

1970년대 이후 도시화와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연과 교감하던 삶의 형태는 줄어들고 도시의 편리함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자연에서 배우던 전통이 단절된 삶은 우리의 후배들에게 불행한 일이기도 하고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최근 참살이(Well-being)와 힐링(Healing)의 분위기가 확대되면서 자연과 야생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차로 많아지게 되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휴식처를 찾는 것도 한 이유이지만, 생활 속의 스트레스를 자연에서 치유 받고 싶은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야생화(野生花)하면 깊은 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식물로 여기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파트 화단 구석에서, 동네의 야트막한 야산에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다. 햇살이 따뜻해지는 4월에 접어들면 노랑, 파랑, 분홍 등의 봄꽃들이 본격적으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초봄 올망졸망 무리를 지어 반갑게 맞이해주는 꽃이 바로 현호색(玄胡索)이다. 꽃은 작지만 형태가 특이하고 색도 아름다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꽃을 한번 보게 되면 그 잔상이 머리 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야생화가 주는 매력이다.

▲ 다양한 꽃색을 띄는 현호색.

현호색을 사진기로 찍고 있노라면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어머 여기에 꽃이 있었네. 언제 이렇게 피었대”라고 한다. 이 식물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뿐 전에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세상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인다.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꽃이 보일 것이요, 관심이 없는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무심코 지나쳐 버린다.

현호색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키는 20cm 정도까지 자란다. 땅속에 깊게 들어 있는 뿌리를 캐어보면 동그란 모양의 덩이줄기(塊莖)가 달려있고 이 부위에서 줄기가 나온다. 이 덩이줄기는 현호색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현호색 종류를 구분하는데 사용된다. 앙증맞게 생긴 잎은 어긋나고 갈라지며 잎자루가 길쭉하다.

▲ 만개한 현호색.

4월에 연보라색, 보라빛이 도는 하늘색, 분홍색에 가까운 보라색 등 다양한 색상의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핀다. 2주 정도 개화 후 꽃잎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그 자리에 작은 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열린다. 여느 봄꽃과 같이 다른 나무들이 움을 트기 전 고 잎과 꽃을 피운 후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전략이다. 잘 익은 열매를 열어보면 작고 까만 씨앗들이 들어있다. 현호색은 씨앗으로 번식이 잘 되기 때문에 이 식물을 기르고 싶은 분들은 여름이 오기 전 씨앗을 채취해서 정원이나 화분에 뿌리면 된다.

▲ 현호색 열매.

▲ 현호색 군락.

현호색은 잎이 가을까지 계속 남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 좋지만 열매를 맺음과 동시에 잎이 사그러들면서 휴면에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현호색을 볼 수 없다.
꽃의 지속성만 유지된다면 봄철의 야생화는 크기도 작고 꽃색이 아름다워 조경용 소재로도 개발하면 손색이 없을 것이다.

현호색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세계에 3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한국에는 현호색 외에도 갈퀴현호색, 쇠뿔현호색, 들현호색, 좀현호색, 섬현호색, 산괴불주머니, 자주괴불주머니 등 20여종의 현호색 종류가 분포하고 있다. 이전에는 잎의 모양을 보고 애기현호색, 댓잎현호색, 빗살현호색 등을 따로따로 구분하여 불렀지만 이제는 통합해서 현호색으로 부르고 있다. 이 식물을 일일이 구분하느라 머리가 아팠던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호색은 잎 등의 변이가 매우 심한 종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다.

식물 이름은 대부분 한글 이름을 사용하지만 현호색(玄胡索)처럼 생약명의 한자 이름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특이한 경우다. 현호색(玄胡索)은 이외에도 연호색(延胡索) 또는 현호삭(玄胡索)으로, 북한에서는 땅구슬, 땅방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북한에서는 비록 현호색을 순수한 한글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식물 이름에 그 어감은 그대로 살아있다. 현호색의 경우에서 보듯이 식물에 대한 서양인과 동양인의 관점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꽃 모양을 보고 종달새의 머리 깃을 닮은 형태라는 뜻의 코리달리스(Corydalis)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용도에 맞추어 현호색이라고 명명했다. 현호색(玄胡索)이라는 이름이 아직까지도 유용한 것은 선조들이 예전부터 이 식물을 약용으로 많이 사용해 왔음을 짐작케 한다.

현호색은 뿌리에 달려있는 덩이줄기(塊莖)를 약재로 많이 사용한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검은(玄) 오랑캐(胡)를 찾는다(索)는 의미로 몸속의 독소를 찾아내어 없애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현호색의 사용법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현호색의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며 간과 비장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호색의 덩이줄기에는 코리달린(corydaline), 푸마린(fumarine)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기와 혈을 잘 돌게 하고 어혈(瘀血)과 통증을 없애는 작용이 뛰어나며 생리를 고르게 한다. 현호색은 유독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약으로 사용하고 싶다면 꼭 전문가와 상의한 후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봄철에 야생식물을 잘못 먹다가 사고가 나는 것은 정확한 사전 지식없이 식물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사고는 원칙을 무시한 행동에서 나오는 것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야생식물을 배우던 초창기 독초를 무턱대고 먹었다가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4월 말이 가까워오면 현호색은 괭이눈 종류, 꿩의바람꽃, 중의무릇 등과 함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다, 양지꽃, 제비꽃, 애기똥풀, 미나리냉이, 앵초, 피나물 등에게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다. 자연의 섭리에 맞추어 자신의 자리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다.

이번 주말 가족과 함께 가까운 야산에 올라 야생화를 만나보는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한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으면서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고, 아이들은 자연과 교감하게 된다. 산행을 하다 길가에 핀 현호색을 만나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꽃을 감상해 보라.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에 놀라고 마치 새들이 재잘재잘 합창하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질 것이다. 

▲ 잎 형태가 다른 현호색.

▲ 만개한 현호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