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글 슬로푸드문화원 생물종다양성위원회 간사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슬로푸드(Slow Food)’에서는 종 다양성 보존이라는 중요한 목표 아래 ‘맛의 방주(Ark of Taste)’ 프로젝트를 펼쳐나가고 있다.

맛의 방주 프로젝트는 잊혀져가는 음식의 맛을 재발견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종자나 품목 등을 찾아서,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어서 널리 알리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10월에 개최될 남양주국제슬로푸드대회에 앞서, 맛의 방주 등록을 서두르고 있다. (사)슬로푸드문화원에서는 지난 호부터 맛의 방주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왜 맛의 방주인가?

맛의 방주에서는 특정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담고 있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먹을거리를 찾아낸다. 과일, 채소, 동물종, 치즈, 빵, 발효식품, 절임식품 등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들을 대상으로 한다.

몇 세대 안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러한 생산품들을 지키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을 유도하기 위하여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생산품의 소비를 통하여 생산자를 지원하거나, 멸종이 되지 않도록 소비를 줄이는 일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맛의 방주의 역사

맛의 방주 프로젝트는 1996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살로네 델 구스토(Salone del Gusto : 국제 슬로푸드 대회)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다음 해인 1997년 맛의 방주 선언문이 발표됐다. 선언문에서는 먹을거리의 산업화에 따른 소멸위기의 생산자들을 보호함으로써 맛의 세계(Universe of Flavors)를 지켜낼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해야 할 일들과, 맛의 방주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 명시했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맛의 방주 위원회가 출범했다. 여기서는 맛의 방주 품목의 분류를 정하고, 선정 기준을 마련했다. 이어서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위원회가 출범되어 선정품목을 카탈로그화 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2002년 10월에는 이 조직들이 한데 모여, 국제 맛의 방주 위원회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하여 국가위원회가 설립되지 않았거나, 슬로푸드 네트워크가 없는 지역의 품목들도 맛의 방주에 등재될 수 있게 됐다.

맛의 방주의 국제적 현황과 등재를 위한 절차

2013년 현재 19개국에 맛의 방주 국가위원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총 76개국의 1,162개의 맛의 방주 품목이 등재되어 있다. 맛의 방주 선정 품목으로는 식초, 씨리얼, 잼과 장기 저장식품, 생선과 해산물 저장식품, 육류와 부산물, 페스츄리, 케익과 사탕, 허브와 향료, 치즈와 유제품, 과일, 콩, 꿀, 와인음료, 올리브오일, 종자기름, 채소, 빵, 파스타, 구운음식, 야생열매, 품종(Breeds), 소금, 절인고기(cured meat), 포도주, 포도나무 등이 있다.

맛의 방주 등재를 위해서는 슬로푸드 종다양성재단(www.slowfoodfoundation.com)에서 양식에 맞게 직접 품목을 등록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활한 등재절차를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위원회가 설립되는 것이다.

등재하고자 하는 품목의 명칭, 특성(맛, 외관, 향 등), 역사, 생산지역, 생산량, 판매여부, 소멸위기인 사유 등 양식에 맞게 기재하여 신청을 하면, 국가위원회의 심사와 번역 과정을 거쳐 국제본부에 최종 등록할 수 있게 된다.

▲ 지난달 16일 오후 2시 남양주 2013 AsiO Gusto(국제 슬로푸드 대회) 조직위 회의실에 일본 맛의 방주(Ark of Taste) 등재 전문가인 구로카와 요코(Kurokawa Yoko), 토쿠야 카와테(Tokuya Kawate) 교수가 방문해 대회 조직위 관계자들과 회의를 했다. 이날 회의는 10월에 있을 남양주국제슬로푸드대회에 앞서 일본의 맛의 방주 등재와 경험을 들어보고, 일본의 국제 대회 참여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일본의 맛의 방주

지난 4월 28일과 5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슬로푸드문화원, 남양주국제슬로푸드대회 조직위원회의 실무자들과 일본 맛의 방주 관계자와의 회의가 있었다. 10월에 있을 남양주국제슬로푸드대회에 앞서 맛의 방주의 등재와 관련된 경험을 들어보고, 대회에서의 일본의 참여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맛의 방주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현재 27개의 품목이 등재되어 있다. 파, 무, 호박 등의 채소류와 생선으로 만든 훈제식품, 초밥, 어간장 등의 가공품이 주를 이루고, ‘자자무시’라는 식용곤충도 등재되어 있다.

최근에는 쌀, 미소시루(된장국), 스케모노(장아찌), 잡곡, 고구마·감자, 무, 가지, 오이 등 흔히 쓰는 것들을 바탕으로 소멸위기에 처해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다.

다른 국가와는 달리 일본은 맛의 방주 국가위원회 산하에 학술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다.

맛의 방주 위원회는 국제본부, 지역에 있는 지부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역할과 학술위원회가 제안한 품목에 대한 최종 결정의 역할만 수행한다. 학술위원회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맛의 방주 품목의 선정과 지원 방안에 대한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등재 품목의 평가를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수준에서 하고자하는 일본 슬로푸드의 의지다.

10월에 진행될 남양주슬로푸드국제대회 맛의 방주 컨퍼런스 행사에서 일본 맛의 방주 위원장의 사례 발표를 들을 수 있다.

일본 슬로푸드는 지역 차원에서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40개가 넘는 지부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맛의 방주 등재 역시 활성화된 지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이벤트와 홍보를 통하여 등재된 품목이 실제로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6월초 맛의 방주 위원회가 출범, 본격적으로 맛의 방주 프로젝트가 시작될 예정이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맛의 방주’ 등재 자체를 목적으로 두기 보다는, 이를 통하여 지역 차원에서의 슬로푸드 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이다.

※슬로푸드문화원에서는 사라져가는 생물종과 관련된 향토음식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이메일 접수 : fourmis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