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함평 자희향

“어제 들여온 유기농 찹쌀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우리술을 만들고 있는 전남 함평군 신광면 삼덕리 (유)자희자양의 문을 열자마자 좌측에 쌓여 있는 쌀가마니를 보고 노영희 대표 꺼낸 첫 마디다. 이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1천2백만 원 어치”라면서 “진작에 구입했어야 했는데, 돈이 없어 어제서야 구입했다”고 말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술을 만드는 사람이나 생산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똑같아 보인다.

▲ 1년에 1억2천만 원 어치 쌀을 구입하는데 한꺼번에 구입하지 않고 쌀 빚을때마다 1개월에 한 번 꼴로 구입한다. 유기농영농조합과 계약재배를 통해 구입한 쌀 40kg 1가마로 3독을 담근다.

좌측 맨 끝에서는 두 청년이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르고 쌀을 씻고 있다. 노 대표의 두 번째 소개가 이어졌다. “제 아들들입니다. 지금 밑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4, 27세인 두 아들은 벌써 ‘자희향’으로 직업을 정했다고 했다. 전통주를 공부한 엄마를 도우며 함께 술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선 직업 후 공부' 가 노 대표와 아들들이 정한 원칙이란다.

▲ 인터뷰는 사업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준비 중인 체험장에서 진행했다.

‘자희향’은 노영희 대표가 함평 유기농 찹쌀로 만든 탁주와 국화를 넣어 만든 국화주의 브랜드로 “저절로 향기가 난다”라는 뜻이라고. 가격도 이름 만큼이나 비싸 서울의 막걸리바에서 500ml 한 병에 1만5천원이 넘는다. 일반 막걸리보다 5배도 넘는 가격이다.

유기농 찹쌀로 만들어서 비싼가?

물론 유기농쌀이라 가격이 비싼건 사실이지만 재료보다는 과정에 포인트가 있었다. 즉, 우리가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 막걸리가 1주일 만에 만들어지는데 비해 자희향은 3개월~4개월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한 마디로 저온 숙성 방식으로 술을 빚는데, 자희향이 숙취가 없고, 일체 첨가제를 넣지 않는데도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우러나오는 비결이란다.

현재의 자희향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원래 술을 못 먹는 고 대표가 자희향을 만들게 된 계기는 풍물로부터 시작된다. 경기도 안양에서 어울림이라는 풍물패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임실 필봉굿을 배우게 됐는데, 굿을 마치고 한 잔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술에 필이 꽂혔단다.

“충청도의 한 농가에서 술 만드는 법을 배워 안양 집에서 1년간 술을 담았지만 계속해서 실패만 했어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전통주연구소다. 그 곳에서 박록담 선생님을 만나 5년간 술 공부를 하고 함평 친정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방 하나를 빌려 술을 빚었는데 또 실패했다.

“그러나 안양에서와는 달리 원인을 알고 있었죠.”

저온저장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5평짜리 저온저장고를 구입해 술을 빚었다. 물론 이번엔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자희향 비법을 하나씩 만들어 왔다.

장독대와 기와로 된 전통가옥?

“자희향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스타가 됐어요. 각종 품평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서 언론이란 언론을 다 경험한 것 같아요.”

그런데 취재 오시는 분들마다 실망을 하는 눈치였다. 전통술을 만든다고 해서 기와로 된 전통 가옥에 장독대가 멋있게 서 있을 줄 알았는데 모든 과정이 조립식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3개월, 국화주는 4개월을 숙성시켜야 하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완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해야만 했다.

“멥쌀을 갈아서 죽을 쑤고 여기에 누룩과 함께 밑술을 담고 이후 찹쌀을 쪄서 덧술을 담급니다.”

숙성 과정도 3단계를 거친다. 1차는 32~34도에서 2차는 12~17도의 숙성 과정을 거친다. 탁주는 3개월, 청주는 4개월을 숙성시킨 후 출하 직전 2도의 냉장실에서 발효를 일시정지시켜 보관하였다가 주문량에 맞게 포장하여 배송한다. 전통술을 과학적이고 현대식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 전통 가옥이 아닌 조립식 건물 속의 장독대가 인상적이다.

“전통집에선 제대로 된 품질이 나올 수 없어요. 언론들도 현대식, 과학적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세계속 전통주가 되기 위해 과학적, 현대식으로 술을 빚고 있다고 홍보해야 합니다. 1년 내내 같은 조건을 유지해야 하거든요.”

언론의 힘이 참 무서웠다.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정동 ‘(주)달하’와 논현동 ‘신유가’ 등 서울에 자희향 막걸리바가 2개나 생기고, 물뛴다, 월향 등 유명한 막걸리바는 물론 일본 등 외국 시장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현재 수 십 곳에 자희향을 납품하고 있고, 다음 달부터는 골프장과 호텔에도 납품 계약이 되어 있다.

친정 엄마 팔찌 팔아 유기농 쌀 구입

“술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친정 엄마 팔찌를 판적도 있어요.” 그동안 참 많은 어려움을 겪어 오다 작년부터 흑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지난 6~7년 동안 10억 원도 넘게 투자를 했다. 그래서 유기농 쌀을 사용하면서도 유기농 인증을 못 받았는데 올해부터는 인증도 받으려고 한다. 유기인증을 받으려면 돈도 많이 들어가고 시설도 갖추어야 하는데 그동안 하나씩 시설도 갖추어 놓았고,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세계 속의 자희향이 되고 싶다

일본에 갔을 때 도쿄에 300년전 120개 있던 양조장이 2개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업 틈새시장을 공략해 살아 남았다고 했다. “일본의 사케처럼 세계 속의 자희향이 되고 싶어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3개월 숙성과정을 거쳐 대량생산 하는 것은 자희향이 처음입니다.”

“2~300년 동안 대를 이어 가는 양조장을 만들고 싶다” 그동안 전통술 재현에 성공했다. 그리고 생막걸리 병입은 내가 처음이다. 제대로 된 양조장 만들어 2~300년 물려주는 게 꿈이다. 다행이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자희향을 만들기로 했다.

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선생님으로부터 술을 배웠고, 지금도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 현재도 단국대 증류주과정 교육을 받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술을 빚고, 주말에는 술 교육을 받고 남편 있는 안양 집에도 간다. “요리일 하면서 처음엔 사찰음식 배우려다 이렇게 됐다. 약선 요리를 전공했다. 내 발전이 곧 전통주연구소 발전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