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수 (주)달하 대표

기획｜막걸리바 탐방

들판에서 농삿일 중간에 먹는 새참 만큼 맛있는 밥이 또 있을까. 여기에 막걸리까지 한 잔까지 걸친다면…생각만해도 군침이 절로 돈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맛 뿐만 아니라 가격도 서민적인 대표적인 우리나라 술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현상들이 목격된다. 값도 비싸고, 들판이나 주막이 아닌 서울 한 복판에서 마치 양주를 즐기듯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막걸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우리나라 전통을 살린 막걸리라며 열광한다.

막걸리를 파는 사람들도 우리가 알고 있는 주모가 아니다. 양조가도 아니면서 술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서울 한 복판 막걸리바에서 막걸리 연구가들이 막걸리를 팔고 있다.

덕수궁길 ‘경향아트홀’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막걸리바 ‘자희향’을 찾았다. ‘자희향’은 전남 함평의 자희자양 양조장에서 생산된 막걸리를 파는 곳이다. 전통주의 명인 박록담 전통주연구소장으로부터 공부한 노영희 대표가 빚은 자희향을 ㈜달하 김준수 대표가 파는 곳이다. 김 대표를 만나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통주연구소에서 근무했던 김 대표는 막걸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원자재가 다르면 기술도 다르다”

김 대표는 일반 막걸리보다 5배나 비싼 이유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함평 유기농 찹쌀로 3~4개월동안 발효시켜 만든 술이 어떻게 1주일만에 만들어지는 술과 같은 맛일 수 있냐"며 반문한다.

김 대표에 따르면 막걸리는 우리 술이지만 시중의 모든 막걸리가 우리 고유의 기술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막걸리의 맛과 향의 60% 이상을 좌우하는 것은 발효제인 누룩이다. 전통 막걸리는 국내산 햅쌀에 국내산 생밀을 굵게 간 전통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한다. 전통 누룩에는 다양한 균이 서식해 재료의 가공법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전통 막걸리가 맛있는 비결이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막걸리가 일본식 개량누룩(입국)을 발효제로 사용해서 만들어 진다”고 말했다. 어느 술이나 비슷한 이유가 바로 개량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국에 단맛을 내는 첨가제 ‘아스파탐’을 첨가한 뒤 최대 7일간 발효시켜 만든게 요즘의 막걸리라는 이야기다. “입국에는 다양한 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맛과 향이 전통식보다 덜할 수밖에 없다”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전통주 맥 끊어 놓은 일본누룩

김준수 대표는 “1907년 조선총독부령으로 주세법이 공포되면서 전국의 모든 술이 하향평준화 됐다”고 말했다. 누룩을 통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주세법이 공포되기 전 전국적으로 15만5,632개소에 이르던 양조장이 주세법 공포 이후 잠적하기 시작했고, 주류 단속이 강화되면서 모든 주류를 탁주, 약주, 소주로 획일화시켰다. 1917년부터는 주류제조업의 정비가 시작되면서 자가 양조가 전면적으로 금지됐다.

이후 1920년을 기점으로 신기술이 도입돼 재래식 누룩을 사용하던 방법에서 흑국, 황국의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됨과 동시에 전통주는 대부분 맥이 끊기게 됐다.

“본질은 술맛이다”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 전통주를 제조해 온 업체들이 최근 ‘우리술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가고 있는 상황과 관련 김 대표는 “술맛이 본질”이라면서 근본적인 대안이 못 된다는 평가다.

반면에 김 대표는 자희향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따라서 자희향을 열심히 홍보하는게 유일한 대안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러한 김 대표의 마인드는 곧바로 인터넷에 투영되고 있다. 김 대표에 의하면 네이버에서의 막걸리업계 탑은 자희향이다. 그는 막걸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워낙 강해서 막걸리 이미지로는 자희향을 제대로 알릴 수 없다며 “막걸리가 아닌 자희향”을 홍보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이 곧바로 주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자희향에 대한 인식을 심어 나가고 있다”면서 “간판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자희향’을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숙취없는 막걸리 자희향

자희향의 막걸리는 일반적인 막걸리와 다르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달큼하게 입안에 감기면서도 풍부한 꽃향기가 피어오른다. 단맛도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의 달달한 감칠맛이다. 숙취도 없어 다음날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김 대표는 이같은 맛의 비결은 ‘저온 장기 숙성’에 있다고 설명한다. 보통 막걸리가 일주일 전후의 발효 과정을 거쳐 시중에 나오는 데 비해, 자희향은 찹쌀을 밀누룩으로 2번 발효시켜 100일동안 숙성한다. 이렇게 긴 시간 숙성되기에 감미료를 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단맛이 배어나온다. 장기 숙성은 또 숙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화가 세상을 바꾼다

김준수 대표는 “한국 술집의 차별화요소는 인테리어나 퓨전안주가 아닌 바로 술 맛이어야 한다”라며 “최근 막걸리바가 소수 운영되고 있지만 본질인 술맛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목표는 호프나 이자카야 문화처럼 막걸리를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3,500년 역사를 찾아야 한다”면서 “제조역사가 100년 밖에 되지 않는 현재의 입국 막걸리가 아닌, 그 이전 시대의 술상품을 개발해 경쟁력 있는 술맛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면 우리도 와인이나 사케와 같은 술문화를 갖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현재 서울에만 20여개의 막걸리바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1만원이 넘는 고가지만 어떤 때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기도 한다. 어떤 막걸리바는 사업장을 여러개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전통술을 고집하며 어렵게 고군분투해 온 전통주 업체들이 살아남는 새로운 문화가 서울 한 복판에서 싹트고 있다.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