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열린 인천도시농부아카데미 특강 ‘생태공동체와 농사’에서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변산공동체 설립자)가 강연을 하고 있다.

화학비료, 농약, 비닐멀칭 등을 사용치 않는 친환경 유기농법 일명 ‘3무(三無)농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가고 있는 도시농부들이 공동체정신과 생태적 삶의 방식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았다.

인천도시농부아카데미 특강 ‘생태공동체와 농사’가 19일 오후7시 인천시 부평4동 부평문화원에서 열렸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시사인천, 작은도서관 아름드리, ㈜푸르내흐르내, 계양봉사단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공개 특강에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과 관심 있는 시민들 70여 명이 참석했다.

▲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

이날 초청된 강사는 ‘농부 철학자’로 불리는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 윤 대표는 그의 나이 53세이던 1995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전북 부안에 변산공동체를 설립하고 일궈왔다. 변산공동체는 일을 놀이 삼아 살면서 사람과 자연이 서로 생태적 공동체를 이뤄나가고자 하는 농사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로 잘 알려져 있다.

7시 15분부터 시작된 강의에서 윤구병 대표는 9형제의 이름 내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구병’이라는 이름은 9형제의 막내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명. 일병부터 구병까지 형제 가운데 육병까지 배운 형들이 6.25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남은 자식들을 무지랭이로 키워서 목숨을 살리려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이른 봄 제일먼저 올라오는 쑥 새순을 지금도 누구보다 제일 잘 뜯을 자신이 있다는 윤 대표는 자신을 ‘쑥 캐기의 달인’이라고 소개했다. 윤 대표는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자연에서 나는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다 먹어보고 스스로 살길을 찾았다”면서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자란 삶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밀고 나가는 자세와 태도를 키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에게 하루 8~10시간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보충·자율학습 등을 하게 하면서 머리만 굴리도록 하고 있다”며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과 서로 도와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특유의 교육철학을 강조했다.

1부 강의가 끝날 무렵 현재 대표로 몸담고 있는 보리출판사에 대한 소개도 들을 수 있었다.

“1988년 설립 후 보리에서 25년 동안 낸 책이 300종이 안 됩니다. 파주에서 1년 된 출판사들도 한 해에 내는 책만 500종 넘습니다. 왜 이렇게 더디게 왔냐면 책 한권을 펴낼 때 나무 한 그루를 벨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서 확신이 들어야만…”

나무와 인간은 목숨(목으로 드나드는 숨)을 주고받는 사이인데,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책을 만들 때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나무 다섯 그루, 열 그루를 심어야 다음 세대도 살 수 있다는 깨우침과 감동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만 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보리출판사는 무상교육·무상숙식을 위한 변산공동체 운영 재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도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소신과 원칙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굳어 보였다.

“첨단무기는 대항할 수 있지만, 식량자급 안되면 방법 없어”

휴식 시간 후 이어진 강의에서 윤 대표는 “첨단무기에는 대항할 수 있지만 식량자급이 안되면 대응할 방법이 없다”며 먹거리 문제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식량자급률은 20%대로 떨어지고 잡곡자급률은 5%미만이지만, 시골에서 노동으로 일하고 있는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이라며 “지금 세대마저 사라지면 식량을 가져다 먹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체제가 되더라도 아이들 절반이상이 시골로 갈 수 밖에 없는 운명 앞에 놓여있는데 머리만 굴리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에서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겠다는 마음이어야”

윤대표가 강연을 통해 도시농부와 도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핵심은 강의 후반부에 있어 보였다.

윤 대표는 “도시에서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길을 찾아 돕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도시농부들에게 생태적인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그는 “시멘트로 덥힌 도시에 사는 도시민들이  먹을 것을 대주는 농촌을 식민화 시켜왔으며 먹거리를 공정거래 하지 않고 뺏어왔다”면서 “제철에 나는 먹거리를 찾지 않는 철 없는 도시민들이 겨울에도 하우스에서 수박, 딸기를 키우게 하는 등 농촌도 철없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윤 대표는 “사람과 사람끼리만 제 앞가림 할 게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도우며 살고 앞가림해나가지 않으면 사람도 생명체도 살길이 없다”며 “도시농업이든 시골에서의 농업이든 일방적 착취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먹거리는 그 생명체 입장에서 보면 생체보시인데, 우리가 되돌려주지 않으면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면서 “농부는 씨뿌리고, 김매고, 거두어 곡식으로 삼으면서도 좋은 종자를 골라 이듬해에 다시 뿌려 자신도 살고 생명체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또 “농사를 지어도 자본주의식으로 생각하면 자기 노동력으로 만든 거니 내꺼라는 생각으로 주지 못하겠지만 농부는 뿌리고, 김매고, 거두지만 했을 뿐 나머지는 자연이 해준 것임을 알기에 내 소유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자연에게 모질지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강연장을 찾은 도시농부들에게 그가 남기고 싶었던 단 한마디의 말은 결국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길을 찾아가면서 나눌 줄 아는 도시농부가 되어 달라”일지도 모른다.

<유정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