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호 페이스북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방장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 봄꽃은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풀들로 인해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이 무렵 초본(草本)들의 자리를 대신해 나무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이는 생태계란 역시 조절과 조화의 공간인가 보다.

산 중에 피어나는 수많은 나무꽃 중에서 일명 천녀화(天女花)라 불리는 ‘함박꽃나무’만큼 화려한 꽃도 없을 것이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木蓮科, Magnoliaceae)에 속하는 키가 작은 나무로 전국 산지의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다. 잎은 광택이 나는 계란모양으로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 뒷면의 맥을 따라 털이 나있다.

함박꽃나무의 포인트는 단연 꽃이다. 5월부터 6월에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꽃이 아래를 향해 달린다. 함박꽃나무는 흰색의 꽃이 함박(함지박)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의 가지를 살짝 잡아 당겨 꽃내음을 맡아보면 그 향기가 그윽하게 뇌리 속을 파고든다.

▲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의 향은 봄에 피는 백목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수줍음이 많은지 꽃을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고 매일매일 몇 송이씩 피워 올린다. 순백색의 꽃잎은 6장이고 그 가운데 부분에 붉은색을 띄는 수술이 자리 잡고 있다. 열매는 9∼10월경에 익으며 빨간 씨앗이 많이 맺힌다. 비슷한 종으로는 잎에 얼룩이 있는 얼룩함박꽃나무, 꽃잎이 12개 이상인 겹합박꽃나무 등이 있다.

현존하는 목련은 원시적인 꽃을 피우는 식물 중 하나이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받침과 꽃잎이 함께 달려 있어 통칭해서 꽃잎으로 부른다. 암술은 암술머리, 암술대, 씨방의 구분이 없고 수술도 수술대와 꽃밥의 구별이 쉽지 않다.

목련꽃에는 꿀샘이 없어 딱정벌레나 파리와 같이 꽃가루를 먹는 곤충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진다. 딱정벌레는 후각이 발달하여 강한 향기가 나는 꽃을 잘 찾아든다.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진화하면서 꽃 아래 부분에 씨앗을 감싸는 씨방 조직이 발달했는데, 목련 종류는 씨방 조직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진화를 멈추었다. 올 가을 함박꽃나무나 목련 열매를 유심히 살펴보라. 핫도그 같은 모양의 덩어리에 붉은 씨앗들이 각각의 방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화(國花)는 무궁화,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피어나고 붉은 강렬한 꽃 색이 북한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1970년대 군부독재와 더불어 반공의 이념이 강조되던 시절 붉은 색깔의 진달래를 금기시했던 영향 탓이기도 하다. 진달래가 북녘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꽃임에는 분명하지만 북한의 국화는 아니다. 북한의 국화는 1991년부터 ‘목란(木蘭, 함박꽃나무)’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일화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황해도의 한 휴양지를 방문했을 때 나무에 핀 아름다운 꽃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 꽃을 보고 난 후 이처럼 좋은 나무를 함박꽃이라 부르는 데는 아쉬움이 많다고 하면서 이 꽃을 ‘나무에 피는 난’ 이라는 뜻의 목란(木蘭)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혹시 등산 중에 함박꽃나무를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깊은 산중에서 함박꽃나무를 만나면 여러 개체가 한꺼번에 자라지 않고 한 그루씩 따로따로 자라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다른 식물은 같은 종끼리 오순도순 모여 살건만 이 식물은 옆에 자기 동료가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서로의 이념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다.

▲ 피는 과정(1)

▲ 피는 과정(2)

▲ 피는 과정(3)

▲ 피는 과정(4)

▲ 피는 과정(5)

▲ 피는 과정(6)

일상에서 함박꽃나무는 주로 관상용과 약용식물로 사용한다. 꽃 색이 아름답고 향도 좋아 화단이나 정원의 낮은 장소에 심으면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그윽한 향기가 정원을 가득 채운다.

함박꽃나무는 배수가 잘 되는 비옥한 땅의 반그늘에 심으면 잘 자란다. 야산에서 생장하는 나무라 내한성은 강하지만 오염이 있는 지역이나 해풍이 부는 해안가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번식 방법은 씨앗을 땅에 뿌리거나 새가지를 잘라 땅에 꽂으면 된다. 가을에 씨앗이 익으면 바로 파종하기보다는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저온에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뿌리면 싹이 잘 튼다. 봄이나 가을에 새가지를 잘라 심고 뿌리가 내린 후 옮겨 심어도 된다.

다른 종류의 목련과 마찬가지로 함박꽃나무도 비염과 축농증을 치료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백목련의 꽃봉오리를 신이화(辛夷花)라 부르고, 함박꽃나무의 생약명은 천녀목란(天女木蘭)이라고 한다(한국본초도감 참조).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를 따서 그늘에 말린 후 끓여서 마시면 향기 좋은 차도 마시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겨울철에는 잔가지를 잘게 썰어 물에 끓여서 복용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한방에서는 다양한 용도의 치료제로 함박꽃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6월 말 무렵부터 낮은 지역에 피어 있는 함박꽃나무는 자취를 감추었고 해발 1,000m 이상의 산에 올라야 이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많은 자생식물이 외국으로 유출되어 다시 역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함박꽃나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의 것에 신경을 제대로 못 쓰는 사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소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소중한 자연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이 땅에서 자라는 생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듬뿍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