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근우 식량닷컴 이사 / 김상진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습관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과 신념체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영국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라는 사람이 지난달에 한국을 방문했다. 나는 그를 만난 적도 없고 그가 저술한 책도 한 권 읽은 적이 없지만, 몇 년 전 그가 TV에서 그의 원작 리포트 ‘6도의 악몽(Six Degree)’이라는 지구온난화 관련 다큐멘터리를 한편 보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가 생각을 바꾼 사연이 몹시도 궁금했다.

동양에서는 인생 마흔 살이면 자기 생각에 의심이 없어진다는 불혹(不或)의 나이인데, 전세계적으로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이 그를 안티 GMO의 전선에서 용감하게 이탈하게 만든 것일까?

1990년대 초반부터 GMO를 반대하는 활동을 극렬하게 벌이던 그가 올해 1월 옥스퍼드 농민대회에 나타나 “과학을 무시한 그동안의 GMO 반대는 잘못된 것”이었다라면서 공개석상에서 과학상식의 유턴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 영국의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 <사진=Arirang TV 코리아투데이 캡쳐>

올해 나이 40을 갓 넘긴 1973년생. 역사와 정치학을 전공한 이 친구는 그동안 GM농산물을 카메라 앞에서 내팽개치는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보여주면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유명세 때문에 많은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면서 유력 기업에 돈으로 매수되었다는 치욕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전 세계를 돌면서 GM농산물이 안전하며 지구의 기아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과학기술임을 선동하고 다니고 있다.

자신이 과학에 무지했던 시절에 판단했던 생각을 과학을 공부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고, 늦게나마 그 잘못을 수정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1월 옥스퍼드 농민대회에서 한 그의 연설에서 그가 GMO에 대해 든 논거들은 고도의 과학적 근거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재배과정에서 농약사용량이 증가되지 않았다는 등 또는 농민의 종자 주권문제도 변하지 않았다는 등, GM농산물이 위험한 줄 알았는데 15년간 많은 사람들이 3조 그릇이나 먹었으나 어떤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등 귀납적 추론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가 주장한 팩트(사실)에 대한 과학적 적합성 여부는 인터넷을 10분만 뒤지면 통계자료로 쉽게 판단이 가능한 것 들이었다.

오히려 비과학적 영역이지만 아프리카의 ‘잠비아’라는 나라의 비극적 선택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이 오히려 그럴듯한 변명으로 들린다.

“실제 있지도 않은 GMO 피해 사례가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어요. 2002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선 정부가 GMO에 독성물질이 있다고 오해해 GMO 식량 원조를 거부함으로써 수 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내가 생각을 바꾼 것은) 책임 있는 환경운동가로서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고민과 입장선회는 이유 있는 선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진실은 무엇인가?

2000년부터 3년간 계속된 가뭄과 장마로 인해 잠비아의 식량문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전해진다. GM옥수수의 수입을 거절한 잠비아, 짐바브웨, 모잠비크는 수 백 만 명의 자국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도 그동안 GMO를 불태우면서 재배와 유통과 가공을 반대했던 환경운동가가 이렇게 수 십 만 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해서 자기의 신념체계의 정당성에 대해서 정말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 진실만을 가지고 파악될 문제가 아니었다.

한동안 식량 수출국이기도 했던 잠비아는 타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수입된 후 결국엔 자국의 토지에서 자국민들의 손에 의해 재배될 것이고, 그 이후 자국의 비GMO옥수수와 교배종이 생기게 되면 GMO농산물의 수입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유럽에 자국의 옥수수 수출길이 막히는 걸 두려워했던 것이다.

물론 농산물 수출로 이득을 보는 잠비아 토착지주 계급의 이해를 대변한 결과이겠지만 그 선택의 배경에는 비 과학의 무지몽매함 보다는 사회정치적 배경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경우의 정치적 변절은 도덕기준과 개인 출세욕과의 충돌 지점에서 발생하곤 하는데, 이 사건은 과학과 비 과학의 충돌이라는 외피를 쓰고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 문제가 안고 있는 가공할만한 파급력은 그의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치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 엄청난 양의 식량을 수입해서 먹고 있는 최근 우리나라 또한 유전자 조작(GM) 농산물에 대한 찬반양론이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마당이라 그 실체적 진실과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는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현명한 토론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커밍아웃 하듯이 나타나서 선언한 “GMO의 찬성은 과학이요, 반대는 비과학적 무지의 소산”이라는 오만함이 문제다. 그는 과학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정치적 변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생물다양성이 무시되는 GMO가 판치는 지구 생태계의 후과는 이러한 국제 정치 파워게임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다. 과연 그가 무슨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