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도 서로서로 나눠먹는 것입니다.’

▲ 정왕룡 기자 / 전 김포시의원

대학시절 농활을 하던 중 식사 때마다 함께 불렀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20여 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의 흐름 속에 ‘밥이 하늘’이라고 외치던 그때에 비해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두 달 전 식량닷컴 학교급식 분야 전문기자직을 제안 받았을 때 많이 당황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감히 학교급식 분야를 전문영역으로 취재하고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제가 처한 개인적 상황의 복잡함은 둘째 치더라도 급식분야 관련 전문성과 커리어 면에서 저는 왕초보인데 ‘감히 전문기자라니…말도 안 돼!’ 더구나 수년 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이 분야에서 거친 토양을 일구어 온 기라성 같은 일꾼들이 전국에 즐비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제안을 받자마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항변하였지만, 마음 한켠은 25년 전 충주 농활현장으로 달려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대학 총학생회 농민분과장 제안을 받았을 때 ‘농사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농학연대를 담당하는 농민분과장을 맡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돼…’라며 버티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맡아야 할 일이고 그리고 당시 제가 비교적 한가한 때라는 이유로 떠밀리다시피 맡았던 농활담당 일이 그 후 여러 해 계속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번에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고민하다가 배워보겠다는 자세로 일을 저질러 놓은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제가 처한 현실적인 여건 탓에 현장으로 뛰어다니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이것을 보완하자고 자료조사를 토대로 가능한 한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여 심층적인 면을 보완하자는 취재원칙을 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두 달 사이 전화상으로 제주에서 서울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 겸 대화를 나눈 것 같습니다. 교육청 담당자, 학교급식 담당자, 농협직원, 지방의원, 시민단체 관계자, 경찰서 형사, 광역시·도 담당자등 여러 사람과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러면서 기사에 채 담아내지 못한 이면의 이야기와 소감들을 풀어놓고 함께 공유할 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명서나 기사, 혹은 시론의 딱딱함이 아닌 그야말로 밥상에 올려놓고 정감어린 대화의 소재가 될 그러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것이 ‘밥상편지’의 탄생배경입니다.

25년 전 농활현장에서 ‘밥이 하늘이다’고 노래 불렀지만 여전히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밥상편지’는 생활인들의 노랫말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그러면서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저의 이름을 그 앞에 붙여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정왕룡의 밥상편지’라는 대문명패를 걸어놓았습니다.

자기이름을 내건다는 것은 자칫 무모하고 건방지게 보일수도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학교급식이라는 화두가 시대적, 사회적 민감한 사안으로 여전히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밥상편지가 감상적인 넋두리로 비쳐지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 페이스북 '정왕룡의 밥상편지'(https://www.facebook.com/bapsangi) 캡쳐

하지만 학교급식의 가장 주요한 당사자인 아이들의 언어와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 어른들의 주관적이고 시혜적인 몸짓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를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밥상편지가 학생들로 와글와글 거리는 수다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정치·사회적 현실이 만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숟가락을 들고 ‘밥은 하늘이다’고 우렁차게 외쳤던 25년 전의 기백을 떠올립니다. 그때에는 못 미치더라도 그 기억을 되살려내고 잊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또다시 나타나서 ‘역시 밥은 하늘이다’라고 외칠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밥상편지’는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한 자그마한 징검다리라도 된다면 그 의미를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장마철 비가 그치질 않는 아침입니다. 25년 전 농활 때도 그랬습니다. 내리던 빗물을 밥에 말아먹으며 즐거이 외치던 그때의 노랫말을 다시 조용히 되뇌어봅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도 서로서로 나눠먹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