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권 식량닷컴 이사 / 이야기농업연구소 소장

강의시간에 요점 정리한 것, 영농일기, 군대일기, 쇼핑몰 상품설명 및 농장 소개글, 메모, 독후감, 영화감상문, 대자보, 군대에서 엄마에게 보낸 편지, 연인과 주고받은 편지, 회사사장님에게 올린 보고서나 기획안, 업무지시사항, 앨범사진에 달린 멘트, 책을 사서 첫 장에 써놓은 글귀, 블로그 포스팅, 트위터….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기록들이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자신이 직접 쓴 글' 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我)이기도 하고 청년시절의 나(我)이기도 하고 머리 희끗거리는 중년의 나(我)든 분명히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내 생각으로 쓴 표현들이다.

이 기가 막힌 친구들은 내가 살아온 공간에서 자유자재로 춤을 춘다. 때로는 아주 멀리 수십 년 전, 가깝게는 어제 밤까지 다양하게 시공을 초월하여 내게 다가서는 또 다른 나, 내 삶의 흔적들이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해도 그 기록들을 펼치면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당시로 내가 돌아가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 안에서 나는 무한한 글쓰기의 소재를 얻고 아이디어를 건져 올리곤 한다. 더욱 즐거운 일은 그 기록을 펼쳐보는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못살았건 잘살았건, 어리석고 못난 장면이든, 현명하고 지혜로운 장면이든 모두가 나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 만들어진 내 작품이니까 버릴게 하나 없다.

나는 기록으로 말하고 싶다. 기록으로 내 생각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살아온 편이다.

해서 중간중간 끊김이 있긴 했지만 40년간 일기를 써왔다. 심지어는 강제징집 당하여 군대생활을 할 때에도 아주 두꺼운 노트 세권 분량에 내 기록을 남겼다. 농산업비지니스를 시작하면서는 현장방문 출장보고서를 이미지가 포함된 기행문형식으로 작성했고, 부하직원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접목하고 나서는 15년째 창업일기를 비롯 블로그포스팅, 키워드가이드 등 다양한 경로로 내 일상과 내 일에 관하여 열린 글쓰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농촌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야기농업’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농촌스토리텔링 마케팅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이야기를 생산하고 이야기를 소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확언을 한다. 현장에서 농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스토리가 지닌 가능성들을 맛보면서 그 예측은 현실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라는 우리가 가야 할 여정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라 붙는 존재가 있다.

바로 ‘기록으로 말하는 것’
나는 그것을 ‘레코드텔링(Recordtelling)’이라고 이름 짓는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로서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스토리텔링마케팅은 상품자체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에 담겨있는 의미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몰입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지향적인 마케팅활동이다. 소비자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상품이 아닌 그 상품에 담긴 이야기를 즐기고, 그 문화와 감성을 소비한다.

스토리텔링이 가진 무한한 가치와 비전에 동의하면서 나는 또 다른 가치 ‘기록으로 말하기’ 즉 레코드텔링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중이다. ‘기록(Record)+말하기(telling)’를 의미한다. 기록을 하거나 기록으로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알려나가는 활동을 말한다. 생생하게 자기의 주의주장이나 일상의 장면 장면을 공개된 공간에 기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일관성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활동이라고 보면 되겠다.

누구에게나 설득력이 강한 이야기를 만들거나, 구상하기는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 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준비하고 견문을 넓히고 마음을 닦아야 가능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농민 여러분에게 만만한 일이 한 가지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수십 년 간의 농촌현장에서 이야기농업학교 수강생들과의 만남에서도 확인했고, 이야기농업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아주 분명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과감히 이야기 하는 것이다.

농촌의 생활은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풍부하다. 절기절기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뭇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 맺는 섭리와 함께하는 일이니 얼마나 복 받은 살림터인가?

그 속에서 세상을 들여다 보고 기록(글쓰기)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인터넷이라는 개명천지의 공간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으니 그 한 켠에 내 기록장(블로그, 까페, 개인홈페이지, 농장쇼핑몰, 페이스북)을 만들고 그저 부지런히 소처럼 걸어가며 기록을 하는 일이다. 짧아도 좋고 길어도 좋고…. 사진으로도 좋고 하루하루 쫄깃쫄깃 자기의 느낌과 판단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 둘일 때에는 자신이 잘 드러나지 않으나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남겨진 기록물이 쌓여갈 무렵이면 글쓴이의 면모가 자연스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의 세상을 들여다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아주 낯설었던 그 사람을 오래 만난 사이처럼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때 남겨진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일까요?

‘남겨진 기록’ 일까요?
오! No!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다. 그전에는 안 하던 글쓰기가 몸에 붙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평생 동안 기록을 할 것이니 그 이상 가는 자산이 또 어디 있으랴!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얻기는 어렵지만 버리기는 더 어려운 법인데, 기록하는 좋은 습관을 얻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이런 모습이 다 기록으로 알리고자 하는 바를 알리는 것, 즉 레코드마케팅이다. 이 흐름이 쌓이고 쌓이면 저절로 스토리가 나오고, 콘티를 짤 수 있고, 새로운 발상들을 끄집어내게 된다.

기록이 없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하기(creative)’에 어려운 일이지만, 기록이 풍성한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selection)’만 하면 된다. 선택해서 적절하게 꿰매기만 하면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분명 원인과 결과가 있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쌓아가는 삶의 내력으로 완결성을 가진다. 내가 준비한 삶의 기록만큼, 딱 그만큼만 동서고금을 읽을 수 있고 세상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한 정보전달(공유)의 경지를 넘어서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가 열리고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스마트TV등등 매체들로 인해 우리가 꿈으로만 만나던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고, 그 현실은 오늘 내일을 달리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니 세상은 점점 더 여러분의 이야기를 원하는 쪽으로 열려가고 있다. 여러분이 동의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앞으로는 딱 두 가지 부류의 농민들이 존재할 성 싶다.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양자 간의 차이는 예전 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보다 소통의 시대, 이야기의 시대에서 더 큰 구분가늠자의 의미로 다가설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싶으세요?
스토리텔링을 잘하고 싶으세요?

기록하세요.
레코드텔링으로 차근차근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세요. 기록이야 말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가꾸고 보듬는 일이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말씀에 빗대어 한 번 더 강조한다.

나무의 꽃을 보려는 사람은
나무 심을 때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는 기록으로 자신을 쌓아 가는 일, 바로 ‘레코드텔링’이다.

그러면 나무에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이 피게 된다.
기록이 무르익어 이야기가 되는 경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