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학기부터 서울시 학교급식 공급체계가 유통업체 중심에서 생산자 중심으로 개편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친환경유통센터(이하 유통센터)는 지난 7월 23일 새로운 서울시 학교급식 공급체계를 확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1년 9개월 만에 서울시 학교급식이 전국 9개 도 주산지를 대상으로 재편되면서 WTO, FTA 시대의 새로운 농업정책 모델로 주목 받고 있다.

2년여에 걸쳐 진행되어 온 서울시의 학교급식 개편 과정을 스케치 했다.

2011년 10월 27일 박원순 시장은 첫 업무로 오세훈 전 시장이 미뤄 온 초등학교 5~6학년 무상급식예산 185억 원을 서울시교육청에 지원하도록 결재하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이날 박 시장의 무상급식 결재는 서울시 학교급식사업의 전면 수정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제스처로 시민들에게 인식됐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2년 3월 27일, 새로 취임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이병호 사장은 공사 내부에 5명으로 구성된 ‘급식기획단’을 출범시켰다. 급식기획단은 학교급식을 담당하고 있는 유통센터가 단순 물류센터 기능에 그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 향후 ‘서울형 공공급식 모델’을 만들어 내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어 ‘서울시학교급식자문위원회’를 구성, 유통센터의 운영방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급식 관련 단체와 생산자, 전문 학자와 서울시청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2012년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동안 무려 11차례의 회의와 워크숍 등의 강행군을 하면서 7월 30일 ‘서울친환경유통센터 학교급식사업 개선방향’이라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유통센터는 기존 유통업체 중심의 학교급식 공급체계를 생산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자문위원도 10명에서 11명으로 늘리고 학교와 교육청 관계자를 자문위원단에 합류시킨 뒤 구체적인 작업에 돌입, 총 15회의 회의를 개최했다.

새로운 공급체계는 계약재배를 통한 광역단위 급식전용 생산단지 조성을 목표로 산지 공급업체를 기존 4개 업체에서 9개 업체로 확대 하고, 학교 및 산지공급업체와의 계약 주체도 배송협력업체에서 유통센터로 조정했다.

2013년 1월, 본격적인 공급체계 전환 작업이 시작됐다. 유통센터가 전국 9개 도에 “서울 학교급식 광역단위 산지공급업체를 추천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전국의 친환경농민들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생산 농민들에게 유통센터가 마련한 기준은 너무 가혹했다. 결국 경험이 없는 친환경농민단체들이 대거 탈락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주, 전남, 경기 등 3개 도의 친환경농민단체만이 관문을 통과했다.

공모에 참여한 6개 도 친환경농민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면서 유통센터와 자문위원들 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유통센터와 기존 학교급식 업체들이 새로운 공급체계를 무산시키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이미 1학기 학교급식 납품은 물 건너갔다. 곧 내려온다던 2차 모집 공고는 내려오지 않고, 서울급식을 기다려 온 친환경농민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자문위원들은 연일 현장 농민들의 항의에 시달리고 유통센터 직원들은 자문위원들에게 시달렸다.

5월 14일, 공사는 격론 끝에 보다 완화된 기준을 마련, 2차 모집 공고를 6개 도에 발송됐다.

이런 와중에 직영급식과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토론회를 열면서 그동안 가슴 졸여 온 친환경농민들을 더욱 더 불안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5월 23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전면 무상급식 평가와 학교급식 개선 세미나’가 열렸다. 이들은 “무리한 직영급식 전환과 무상급식으로 인해 저질급식, 예산 증가로 공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직영이든, 위탁이든 학부모 선택권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또 시간은 흐르고, 7월로 접어들었는데도 결과 발표가 없자 친환경농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1차에 선정된 업체들의 불안감도 높아만 갔다. 선정은 됐지만 품목이 배정 되지 않아 농사 특성상 2학기 급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7월 23일 드디어 모든 과정이 종료됐다. 유통센터가 선정심의위원회를 열고 나머지 6개 업체를 선정하면서 목표했던 9개 업체 선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 그러나 당장 2학기부터 새로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통센터 관계자는 “당장 9월부터 전면적인 공급체계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새로 선정된 업체들이 어떤 품목들을 준비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서울급식에 대한 수습기간도 필요하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11월 쯤 부터는 물량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 내년부터는 새로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을까. 친환경농민들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으면 내년에 가서도 보장 받을 수 없다며 긴장하고 있다. 지난 과정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학교급식 관련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그 원인을 농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투쟁으로 알려내지 못한 것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경기 친농연 회원들이 경기도의회 투쟁을 통해 경기도 친환경예산을 확대한 일을 상기시키며 “당시 서울에서 전국농민대회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현장 농민들의 절절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해 학교급식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면서 일정이 늦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동안 유통센터가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한 원인이 기존 유통업체들의 압력이나 로비 때문인지, 자체 업무 특성 때문인지도 규명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7월 24일 서울시가 서울시의회 최명복 교육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통센터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면서 조만간 원인 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 의원은 지난 6월 28일 제247회 서울특별시의회 정례회에서 “자문위원회가 유통센터에 대해 통제기관 역할을 하면서 권한 범위를 벗어난 파행운영을 불러왔다”며 박 시장에게 감사 의향을 물은 바 있다.

서울시의 유통센터 감사와 관련 이병호 사장은 “서울학교급식 공급체계를 생산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자문위원회에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했고, 이로 인해 공사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지만 자문위원들은 최선을 다 했고 모든 결정은 공사가 해 왔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시의 감사를 불러 온 유통공사 자체감사와 관련해서는 “자문위원들은 자꾸만 지체되는 속도를 지적하고, 센터 직원들은 절차를 무시할 경우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일이 감사실에 문의 하면서 일처리 하는 것을 확인, 자체 업무점검을 지시해 직원들의 불만을 들었는데 이것이 마치 자체 감사를 통해 무슨 큰 비리라도 저지른 것처럼 와전돼 서울시에 감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통공사에 대한 서울시 감사를 끝으로 박원순 시장은 전국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서울학교급식 재편작업을 모두 마무리 하게 된다.

이번 서울시의 감사는 외부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시민감사옴부즈만’에 의해 진행된다. 시민의 눈으로 그동안 서울학교급식의 새로운 체계를 진행해 온 서울친환경유통센터와 자문위원들의 노고가 평가되고 학교급식의 취지가 한 단계 성숙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번 서울시의 학교급식 체계 개편이 단순한 공급 주체의 변경 차원을 넘어 그동안 WTO와 함께 실종된 농업정책을 회생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 모델로, 농민들에게 가능성과 희망을 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기를 기대한다.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