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자 홍대텃밭다리 멘토

상상이 즐거운 현실로

난생 처음 텃밭에 씨를 뿌리고 ‘과연, 싹이 틀까?’ 조마조마했던 마음. 정말로 싹이 터 고개를 내밀었을 때의 그 감동이란. 그 때의 감동이 지금까지도 텃밭농사를 짓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텃밭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농사를 통해 어떤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 흙이 주는 생명의 힘이고 농사의 매력이다. 도시농업은 개인적인 감동으로 시작해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소통의 현장이고,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꼭 필요한 대안활동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농사를 한 해, 두 해 지으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기후변화’다. 봄이 점점 늦어지고 한 달 내내 비가 계속되는 날이 생겨나고 어떤 계절은 가뭄으로 고생하기도 하고, 기후변화를 해마다 심각하게 몸으로 느끼고 있다.

텃밭, 기후변화, 먹을거리, 로컬푸드는 당연한 연결고리다.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든 생각은 조금 더 많은 분들과 이런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고, 그것을 요리사분들과도 연계해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상상들은 지금 자연스럽게 ‘카페납품’과 도시농부 시장 ‘마르쉐@’ 등으로 현실이 됐다. 막상 판매를 시작해보니 사람들은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곳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텃밭농사 그 다양한 가능성

홍대텃밭다리와 텃밭대륙은 건물옥상에서 농사를 짓는 공동체다. 나는 그곳에서 멘토로 텃밭 회원들의 원활하면서도 즐거운 농사활동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도시전업농의 가능성에 대한 프로젝트에도 도전하고 있다. 도전의 한 방법으로 홍대인근 카페에 직접 재배한 채소를 납품하고 도시농부 장터 마르쉐@혜화에도 상품을 개발해서 지속적으로 출점하고 있다.

올 봄에는 ‘채소납품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지역농산물을 카페 메뉴로 활용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와 또 시설재배가 아닌 텃밭에서 과연 지속적인 공급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카페 대표, 요리사분들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올 1년의 농사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카페 측과 협의하여 계약재배를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좌충우돌 ‘텃밭작물을 카페로’ 프로젝트

올해 카페납품을 계획하면서 작물을 얼마나 수확 할 수 있고 어느 기간 동안 납품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았다. 카페 측에서 필요로 하는 채소종류를 먼저 알아야했고, 우리가 재배가능하고 지속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 품목을 정하는 것도 필요했다.

지역 농산물에 관심을 보인 두 군데 카페에 납품을 먼저 시작했다. 막상 카페 측에서는 몇 가지 작물로만 한정된 납품을 원해서 처음에는 잎채소 수확량을 조절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어떤 작물은 유난히 벌레피해가 많고 어떤 작물은 수확량이 너무 많이 나와서 넘쳐나기도 했다. 물론 남는 수확물은 인근 다른 카페에 홍보 겸 맛보기로 나눠 드리기도 했다.

납품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은 ‘가격’과 ‘영수증처리’ 문제였다. 가격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설재배를 하는 곳이나 대규모 농사를 짓는 곳과는 사실 가격 경쟁이 되지 않고, 일단은 생협 판매가격을 원칙으로 나름의 기준을 마련했다.

그런데 허브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가로 무조건 싸게만 팔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업체의 가격을 조사하고 홍대텃밭다리 멘토팀에서 만든 기준안을 가지고 카페 측과 협의를 하고 가격을 절충했다. 또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허브류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판로를 확보했다.

낭패를 보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고수’가 많이 이용될 거라는 정보를 얻고 고수 씨앗을 넉넉히 뿌려두었는데, 시장에서는 워낙 싸게 팔리고 있어서 고수는 전혀 납품을 할 수 없었다. 고수는 밭에서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는데 정작 팔지를 못하니 이래서 농부님들이 밭을 엎나보다 싶었다.

요즘 비가 계속 되는 장마철을 보내면서는 결국 납품에 위기를 맞고 있다. 비를 덜 맞게 하는 방법으로 비가림 비닐을 덮어 봤지만, 작물이 마음처럼 제대로 자라주질 않는다. 이런 날씨 속에서 억지로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도시농부도 수확을 제대로 하려면 비닐하우스를 세워야 하나 싶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장마철이다.

가치를 갖지 않는 수익은 의미가 없다

어떤 분이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온전히 수익을 올리는 데에만 목적을 두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왜 더 적극적으로 수익활동을 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비난이 섞인 질문이었다.

‘두 가지를 다 얻을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지만, 둘 중에 하나를 굳이 골라야 된다면 두말없이 ‘가치’를 우선에 둔다. 가치를 가지지 않은 수익성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게 내 답이었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시골농부와 다르게 도시농부들만이 가지는 특징과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지속적인 농업을 꿈꾸는 농부들의 가능성과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앞으로도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고 또 그것을 도시농부들과 함께 나눌 생각이다.

작물과 음식이야기가 같이 녹아나는 ‘텃밭 밥상’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텃밭에서 수확한 제철 작물을 이용해 건강하고 즐겁게 먹는 밥상이다. 도시농부로서 내가 키운 작물이 요리사들의 손길에 의해 어떤 음식으로 만들어질지 기대가 높고, 또 그 요리의 재료가 어디로부터 시작되어 식탁에 오르는지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하반기에도 열심히 농사를 지을 것이다. 카페납품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지속적으로 해볼 계획이다. 상반기보다는 판매량이 좀 더 늘었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앞으로 도시농부들의 다양한 도전들이 더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 그래서 도시에서 농사짓기는 더 즐거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