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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사회의 공기(公器)다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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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2  13: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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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탁 소설가
복숭아 수확을 막 시작했다.

이미 봄부터 반 가까운 나무들이 동해를 입어 말라죽은 터라 수확이 보잘 것 없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겨우 살아남아 열매를 맺은 것들도 예년보다 씨알이 훨씬 작다. 전국적으로 동해가 심하다고 난리를 친 깐으로는 가격도 별반 시원찮다.

무슨 큰 보상이나 해줄 것처럼 공무원들이 와서 피해 조사를 하고 간지가 벌써 두어 달이나 지났는데도 꿩 구워먹은 소식으로 아무 연락이 없다. 기껏해야 죽은 나무를 대신하여 심을 묘목 값 정도를 보상비로 준다는 소문이다. 주위에서 피해를 본 과수원 주인들은 안줘도 그만인 피해보상비를 다만 몇 십만 원이라도 주면 고마운 거 아니냐며 심드렁하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사실 농민들은 피해보상을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

농민들이 수확한 농작물은 시장가로 결정되어 소비자에게로 간다. 그렇게 얻은 농가소득이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소득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시장은 농민들의 삶을 구조적으로 옥죄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시장가격은 정부가 수입으로 조절을 하므로 정부 역시 농민의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농민은 언제나 시장과 정부에 대해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라고 요구할 명백한 권리를 갖는 것이다. 나아가 설사 농산물을 전혀 생산하지 않더라도 소득을 요구할 수 있다. 사회적 잉여에 기여하는 몫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생산물이거나 노동일 필요는 없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자본과 기술이 막대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다면 그것에 대한 지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농 19년째에 접어든 내가 요즘 한창 고민하고 생각하는 주제이다. 사회도 그렇고 농업도 그렇고 더 이상 이런 식의 소수 독점 구조로는 희망이 없다는 게 확실하다.

며칠 전, 다섯 명의 남자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50대 전후의 남자들은 모두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었다.그 중 한 사람이 나의 오랜 친구이고 그런 인연으로 우리 집으로 일종의 사전 견학차 온 것이었다. 마침 복숭아를 따던 날이었고 얼추 작업도 끝난 시간이었기에 시장에 가지 못한 흠집 난 복숭아를 한 바구니 씻어와 원두막에 둘러앉았다. 학교선생을 하다가 일찌감치 퇴직한 이도 있고 도저히 무슨 일을 하며 평생 살았는지 요령부득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농사일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라 그런지 복숭아를 먹으면서 연신 농사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가만히 들어보니 영 초짜들은 아니었다. 토양이니, 미생물이니, 효소제재니 하는 전문(?) 농업용어들을 스스럼없이 구사하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은 나도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적 있는 ‘도시농업’을 하는 이들이었다.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에 살면서 베란다가 됐든 마당이 됐든 소규모나마 농사를 짓는 것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도시 근교의 꽤 널찍한 땅에서 몇 년째 농사를 지어오고 있었다. 물론 제일 많은 사람이 이백 평 정도이고 대개 사, 오십 평인 장난 수준이지만 농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보였다.

하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새겨듣자니, 귀농을 하고자 하는 이유도 모두 같진 않았다. 어떤 이는 텃밭 정도 가꾸며 은퇴 후의 생활을 즐기려는, 그러니까 귀농이라기보다 귀촌을 원했고 어떤 이는 진짜 농사를 지어 경제생활을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특히 그가 우리 과수원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면적은 얼마며 인건비와 농약 값, 수입 등에 대해 꼼꼼하게 내게 물어왔다. 농사짓는 일에 무슨 영업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지난 19년 동안의 과수원 연혁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겨울에 말라죽은 복숭아나무들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귀농을 권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과수원은 권하고 싶지 않았다. 서른한 살 때 부모님과 함께 귀농하면서 나는 처음부터 과수원을 할 생각이었고 배나무와 포도나무를 심었다. 소위 밀식재배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과수를 심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그게 나무와 토양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듯이 나무에 강전정을 하고 비료와 농약을 쏟아 붓듯 주어야 했다. 포도나무는 뿌리에 병이 생겨 몇 년 만에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배는 가격이 폭락하여 그야말로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웠다. 다시 복숭아와 사과로 품목을 바꾸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거듭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과수원은 진정한 의미에서 농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남의 논을 얻어 양식거리를 하고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먹는 것으로 대개 자급자족을 했지만, 철저하게 시장에서 결정되고 그 시장에 목을 매는,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1차 생산물도 아닌 사과와 복숭아 농사는 내가 농군이 아닌 일종의 장사꾼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20년을 고스란히 과수원에 바치고 말았다. 오십대 말의 한창이었던 아버지는 여든이 멀지 않다. 이제 후회해도 늦었고 몸도 많이 약해져서 다른 농사를 새삼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우리 과수원에 관심을 가졌던 이는 과수원에 일 년 동안 들어가는 온갖 노고와 괴로움 따위를 듣고 나서 얼마간 질리는 모양이었다. 의욕이 앞서는 이들이 대개 그렇듯 도무지 과수원을 해낼 성 싶지 않기도 했다. 오십이 넘도록 도시에서 설렁설렁 살았으면 그냥 그대로 살기를 바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귀농을 했다가 후회하지 않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고 대개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다만 진정으로 귀농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생각으로 농사를 짓기를 권하고 싶다. 농사가 식량 위기 시대에 가장 절실한 사회적 공기(公器)라는 인식과 더불어 당당하게 농민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본 소득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펼쳐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필자 소개 | 소설가 최용탁은 1965년 충북 중원군에서 태어났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뒤로하고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다가 1995년 귀국해 충주시 산척면에 정착했다.
농사와 작품 활동을 병행, 2006년 단편소설 「단풍 열 끗」으로 제15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펴낸 작품으로는 소설집「미궁의 눈」(2007), 평전「역사를 딛고 선 고무신-계훈제」, 동화집「이상한 동화」(2008), 장편소설 「즐거운 읍내」(2010), 산문집 「사시사철」(2012) 등이 있다.
현재 충주에서 과수원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문학단체‘리얼리스트100’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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