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지역은 농민운동, 시민사회진영의 정치세력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선도적인 지역이다. 이미 1995년 나주농민회에서 도의원(무소속)을 배출했고, 2002년,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아성인 호남에서 신정훈 씨를 나주시장(무소속)으로 당선시킨 저력이 있는 지역이다.

이곳 나주에서 지난 5월부터 ‘자치와 협동 아카데미’가 열리고 있다. 지역 활동가들은 격주마다 진행되는 대중강좌(매달 셋째 주 수요일)와 지역 자체토론(매달 첫째 주 수요일)을 통해 지역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고민과 대안 등을 소통해 나가고 있다. 아카데미는 (재)지역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진행한 나주 자치와 협동 아카데미의 운영진과의 좌담회<사진> 내용을 소개한다. 좌담회를 통해 아카데미의 기획배경과 중간평가,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 들어봤다. 좌담회에는 박정연 참교육학부모회 전남지부 부지부장(통합진보당 나주시위원회 부위원장), 박철수 나주사랑시민회 공동대표, 정영석 나주농민회 봉황면지회 사무장(가나다 순)이 참석했다.

<이호중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 (재)지역재단 대외협력팀장>

지역으로부터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카데미 기획배경)

그동안 진보운동 진영은 국가보안법철폐, 한칠레·한미 FTA 반대 등 많은 전국적 현안을 갖고 열심히 싸워왔다. 하지만 쟁점을 이슈화 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국민의 힘을 조직하지 못해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국적 의제, 중앙 집중 위주의 사업은 지역역량을 쌓기보다 소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근 10년 간 조직은 노쇠화 됐고, 남는 게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본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의 운동에 대한 반성 속에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됐고 ‘지역으로부터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운동의 전략을 고민하게 됐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장, 지역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국민의 힘을 조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국적 사안을 실제로 쟁취하기 위해서도 지역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주 민주주의의 퇴행에서 얻은 교훈.

2010년 지자체 선거에서 신정훈 전 시장이 낙마한 이후 민주주의 퇴행이 심각해졌다. 신정훈 전 시장 재임시절 활성화되었던 주민참여제도는 형식화되어 버렸다. 각종 위원회를 통한 시민참여와 정책반영은 시장이 바뀌고 나서 유명무실해졌다. 나주의 자랑이었던 주민참여예산제를 보면 신 시장 시절 읍·면·동별 위원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고, 다른 지역에 있는 ‘자기사람’을 심는 경우도 생겨났다.

또한 시민단체가 우려할 정도로 정치보복도 정도가 매우 심해졌다. 비서실장 등 전임시장 시절 인사들을 대기발령 시키고, 보조금을 받았던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감사가 진행됐다. 공무원 인사와 관련해서도 ‘줄 세우기’, ‘ 편 가르기’가 심해져 시민단체에서 지자체 인사와 관련한 성명을 서너 번이나 발표할 정도 불공정·불합리가 도를 넘어섰었다.

나주 미래산업단지 조성과정에서의 각종 편법과 특혜로 인해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 수십 명이 기소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자체의 권한이 사익을 위해 쓰여지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지역 내에서 “이건 너무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가 되면서 시민사회활동가들의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학습없이 혁신없다. 혁신없이 미래없다.

나주는 지방자치를 선도해왔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농민회와 시민사회의 조직적 참여 속에 2차례나 시장선거에서 승리한 신정훈 시장을 통해 지방자치의 모범사례를 만들어온 지역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방자치 운동에 대한 평가는 한 번도 없었다. 당선만 시켜놨지 ‘지역을 어떻게 바꿀 것 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여전히 시민사회 내에서는 정치에 대한 일종의 혐오감이 존재했다. 그래서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남아야 하느냐, 아니면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하느냐는 논쟁도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나주 민주주의의 퇴행을 보면서 시민사회 내부적으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지역의 학습조직을 만들고 지역운동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이후 전망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건물을 부술 때는 큰 지식이 없어도 되지만, 건물을 세울 때는 실력이 필요하듯이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전 선배들이 나주지역을 이만큼 이루어 왔다면 이제는 2세대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지역운영의 비전을 세우고 능력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봤다. 또한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 활동가들의 인식을 통일해나갈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아카데미라는 방식을 생각하게 됐다. 한 달에 한 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문가를 모시고 강의를 듣고, 또 한 번은 지역자체토론을 진행하면서 실력도 쌓고 활동가들내 의견도 모아나가는 과정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지속적인 연대를 위한 공감대 형성. (추진 과정)

2014년 지방선거와 2015년 전국농협조합장 동시선거라는 지역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지난 대선 이후 지역과 운동에 대한 고민을 몇몇이 자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실제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6~7명이 모여 준비모임을 시작했다. 농민회, 시민회, 자치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5월까지 5차례 정도 모임을 진행했다. 준비과정 5차례 모임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됐다. 나주에는 과거부터 선거 시기나 주요현안이 발생했을 때 단체 간의 연대활동이 있어왔지만 지속적인 연대는 되지 못했었다.

이렇게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지역을 고민하고 논의해 본적이 처음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참여로 진행 ‘10년 내다보는 사업’. (조직화 과정)

5월 14일 열린 첫 번째 강좌에는 90여 명이 참석했고 이후 강좌에는 60여 명, 자체토론에는 40여 명이 참석하고 있다. 조직화에 전력을 다하거나 동원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있다.

강좌에 대해 안내만 하고 철저히 개인의 자발적 참여 속에 진행하고 있다. 10년을 내다보고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선거를 위한 모임이라면 조직별로 인원도 배정하고 하겠지만 그렇게는 하고 있지 않다.

정치참여 필요성 인식·지역문제 토론 시작 ‘고무적’ (중간 평가)

5월부터 7월까지 세 번의 대중강좌가 진행됐고, 1번의 자체토론이 있었다. 매 강연이후 운영진 차원에서도 평가를 하고 있는데 대체로 ‘목표했던 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치의 중요성, 참여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있고 자체토론을 통해 지역 내 중요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첫 발을 뗐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다만 지역 활동가들이 조금 더 논의에 동참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길은 걷는 자의 것’. (참여확대방안 등 앞으로의 계획)

‘길은 걷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방자치 시대다. 1990년대 지자체선거 부활이후 지방자치는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성숙에 큰 기여를 했다. 우리는 그 길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년 지방선거에서 얼마큼 성과를 낼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다. 자치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1년을 걸어가다 보면, 나주 지방자치는 우리가 걸어온 만큼 성숙 해질 것이고 시스템으로 정착될 것이다.

그래서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는 단체나 활동가들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마 미온적인 분들도 내년 지방선거를 거치고 나면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고 함께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을 내다보고 하는 사업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해나갈 것이다.

희망의 시작은 꿈꾸는 것에서부터. (다른 지역 활동가들에게)

아직 우리 지역도 잘 안 되고 있는데 해드리고 싶은 말이 많지는 않다.

우선 지역의 희망을 꿈꿔봤으면 좋겠다. 모든 지역에는 그 지역 나름의 소중한 자산이 있을 것이다. 성숙한 지방자치를 만들기 위해 지역 내 여러 조직이 연대하는 희망 있는 마을, 도시, 지역을 꿈꿔봤으면 좋겠다. 희망의 시작은 꿈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함께 했으면 한다.
나주는 지방자치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지만 고립이라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신정훈 전임시장 시절 지역과 자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만한 지역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나주와 같이 고민하는 여러 지역이 생겨서 함께 고민해나갔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주만 하면 고립될 수 있고 의미가 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교류도 하고 중앙정부에 대응할 때는 공동대응도 해나가면 좋겠다. 저희도 도울 게 있다면 적극 돕겠다.

▲ 박정연 참교육학부모회 전남지부 부지부장

▲ 박철수 나주사랑시민회 공동대표

▲ 정영석 나주시농민회 봉황면지회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