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호 페이스북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방장

장마철에 접어들면 산과 들에서 꽃 보기가 참 어려워진다.

한마디로 꽃궁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비가 오래 지속되기라도 하면 대부분의 식물은 꽃이 떨어지거나 녹아내리기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한낮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식물들은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그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낸다. 이 시절 야생화(野生花)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방바닥을 두드리며 장마가 어서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름 꽃은 더운 계절과 어울리게 키도 크고 꽃도 크다. 봄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 생김새로 인해 사람들의 눈에 쉽게 들어온다. 장마가 시작될 쯤 대표적인 여름 꽃인 물레나물도 만발의 준비를 하고 꽃대를 드러낸다.

7월 중순 2주간의 기나긴 비가 그치고 햇볕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난 7월초 강원도 대암산에서 물레나물을 본 이후, 모처럼 들판의 물레나물을 보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가 많이 와서 꽃이 다 시들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일찍 핀 꽃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다른 개체는 용케도 꽃망울을 다시 터뜨렸다.

▲ 물레나물꽃

물레나물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자생(自生)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숲 가장자리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키는 1m 정도로 자라는데, 큰 것은 2m 이상으로 웬만한 성인보다 더 크다. 끝이 뾰족한 피침 형태로 생긴 잎은 마주나며 네모진 줄기를 감싸고 있다.

물레나물의 특징은 단연 꽃이다. 6∼8월경에 줄기 끝부분에 붉은 기운이 도는 노란 꽃들이 몇 개씩 뭉쳐난다. 유난히 긴 수술들은 윤기가 나고 그 사이로 작은 암술대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화려한 꽃 색을 가진 다른 식물과 달리 물레나물은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향기로 벌과 나비들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인다. 꽃이 지고 나면 녹색 열매가 영글기 시작한다. 계란 모양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으면 위쪽 부분이 벌어지면서 자잘한 씨앗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가을에 씨앗이 떨어져 나간 열매의 잔해를 보면 그 분위기가 스산하기까지 하다.

물레나물은 이름 그대로 꽃모양을 보고 명명한 식물이다. 5장의 휘어진 노란 꽃잎이 우리 선조들이 실을 잣던 물레 모양을 닮았다. 가끔씩 현장 교육에서 아이들에게 이 꽃이 뭐냐고 물어보면 ‘스크류바꽃’ 이나 ‘바람개비꽃’이라고 대답한다. 꽃의 모양이 마치 아이스크림 및 바람개비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기성세대는 물레나물이라 하면 ‘아’ 하고 무릎을 탁 치지만 어린 세대의 경우 물레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여긴다.

이 작은 식물을 공부하면서도 세대의 단절, 전통의 단절을 접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스펙에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을 제대로 가르치면 세대 간 소통이 조금이라도 원활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주변에서 물레나물은 식용, 관상용, 조경용, 약용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최근에는 물레나물이 천연우울증 치료제로 관심을 받고 있다. 서양에서 성요한 풀 또는 세인트 존스 워트(St. John’s Wort)로 불리는 서양고추나물은 수백 년 동안 정신질환 및 여러 질병 등을 치료하기 위해 약초로 쓰인 식물이다. 서양고추나물과 비슷한 성분을 가진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물레나물과 고추나물이 있다.

이 식물들은 연구에 의해 유럽에서 개발된 히페리시초와 동일한 성분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물레나물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경증 우울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레나물 잎 앞면에는 검거나 투명한 점이 있고 꽃잎에도 갈색점이 흩어져 있는데, 이 점에 히페리신(hypericin)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이 천연항생제 역할을 하여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구충·부스럼·연주창 등의 약재로 쓰기도 한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식물 이름에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당연히 이 식물도 식용이 가능하다. 봄에 어린 순과 잎이 올라오면 그것을 채취해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먹는다. 쓴맛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물레나물 순을 뜯어 먹는 이들은 아직 보지 못했다.

▲ 물레나물꽃 피는 과정(1)

▲ 물레나물꽃 피는 과정(2)

▲ 물레나물꽃 피는 과정(3)

▲ 물레나물꽃 피는 과정(4)

▲ 물레나물꽃 피는 과정(5)

▲ 물레나물꽃 피는 과정(6)

물레나물은 꽃이 크고 오랫동안 피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적극 권장하고 싶은 식물이다.

해가 있어야 꽃이 피는 양지성 식물로 배수성이 좋은 사질 양토에서 재배한다.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는 식물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척박지에서 기르기도 한다. 번식 방법은 종자번식, 포기나누기, 꺽꽂이 등이 가능하다. 물레나물은 무리를 지어 군락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가을에 종자를 채취하여 묘를 생산하고 그것을 이식하는 것이 좋다. 종자의 발아율은 거의 90%에 가깝기 때문에 1년만 잘 기르면 이듬해 아름다운 꽃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한 여름의 꽃들이 각지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들을 찾는 여행에서 공원, 도로 주변에 이름 모를 외국식물들이 조경용 식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쉽사리 목격할 수 있다. 국적 불명의 외국식물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친숙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식물 대신 이 땅에서 자라나는 자생식물들을 활용하면 우리의 식물도 소개하고 나라의 돈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공무원들의 의식도 많이 변화되어 각 지자체에서도 자생식물을 활용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 땅에는 역시 우리의 것이 더 잘 맞는 법이다. 물레나물이 가득한 길을 걷는 그 날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