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문턱없는 밥집」은 그간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2007년에 변산공동체 설립자인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가 시작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 일정 수입 이하를 버는 도시 서민들에게 밥값을 절반만 받는 독일의 ‘경계없는 식당’이 그 모델이었다.

이 식당의 점심 메뉴는 딱 한 가지, 유기농 비빔밥이다. 자율 배식대에서 원하는 만큼 밥과 반찬을 덜어 먹고, 밥값은 ‘형편껏’ 내면 된다.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도시 서민들, 혹시 있을지 모를 복지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지킨다는 운영 철학에 따른 것이다.

원래 8천 원인 밥값을 자율적으로 내는 대신, 먹는 사람은 쌀 한 톨, 고춧가루 하나 남김없이 먹는 ‘빈 그릇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식재료는 전부 자본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국내산 친환경 유기농만을 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단지는 곧 땅을 살리는 생명의 터전이고, 그것이 지켜져야 우리도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 문턱없는 밥집에서 운영하는 점심 자율배식 및 빈 그릇 운동.(사진=문턱없는 밥집)

이러한 취지 때문에 이 식당은 사회적기업의 모범 사례로 큰 주목을 받았다. 작년 10월 한때 폐점 위기에 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턱없는 밥집」은 보건복지부 산하 학술재단인 민족의학연구원의 한 부서로 운영되어 왔는데, 연구원 측의 행정 착오로 사업 승인 없이 이윤 사업을 한 것으로 처리돼 1억6천만 원의 세금을 부과 받게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후원기관의 도움으로 세금은 처리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연구원의 사업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냈고, 누적된 적자 문제까지 겹치면서 폐점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후 밥집 직원들은 구청에 노조 설립 신고까지 하며 밥집 살리기에 나섰다. 이어 밥집의 철학에 공감하는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뜻있는 시민들이 모여 ‘문턱없는 밥집 살리기 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민족의학연구원과 수차례 협상 끝에 밥집 운영권을 넘겨받았고, 지난 2월 사회적협동조합 ‘문턱없는 세상’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10명의 이사와 100여 명의 초대 조합원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기업으로 선정되어 1억 원의 운영비도 지원받았다.

지난 5월 11일 「문턱없는 밥집」재개점을 축하하는 창립 잔치에는 윤구병 대표를 비롯해 마포구청장과 시·구의원, 지역 단체 인사들이 참석해 밥집의 새출발과 성공을 기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위기를 넘겼을 뿐, 적자 누적 구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점심 메뉴 운영에서 꾸준히 손실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형편껏’ 내라는 것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도시 빈민의 생존권을 지켜주자는 뜻인데, ‘형편이 되는’ 사람들도 무조건 적게 내거나 아예 밥값을 안 내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점심에서 제공하는 비빔밥은 순 재료값만 4, 5천원에 달한다. 나물이나 채소뿐만 아니라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등 양념까지 모두 국산 친환경 재료를 쓰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운영하는 제도, 땀 흘려 마련한 밥상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 의식은 아직 기대하기 힘든 걸까.

“지금도 매달 200만 원 정도 적자가 나요. 지출에서 인건비가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에 직원 고용도 최소한으로만 하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정말 우리 밥집이 잘 돼야 된다는 생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일손이 부족하다니까 자발적으로 와서 서빙하고 설거지하는 자원봉사자들도 계시죠.”

고영란 대표 살림꾼은 “3만 원의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되거나 월 1만 원의 CMS 후원회원이 되는 방법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밥집에 가장 보탬이 되는 일은 손님으로서 이곳을 찾아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점심은 비빔밥 한 가지지만, 저녁에는 고품격 유기농 한식 상차림이 손님들을 맞는다. 8천 원대의 비빔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치전과 1만1천 원대의 청국장, 들깨순두부처럼 간단한 식사메뉴는 물론, 들기름에 살짝 구워서 효소 고추장에 찍어 먹는 효소 황태구이(1만 원), 홍성 유기농 영농조합에서 키운 무항생제 친환경 돼지고기로 만든 묵은지 김치찜(2만5천 원, 2인분) 같은 안주거리도 준비돼 있다. 김치는 변산공동체에서 직접 담가서 공급한다.

이밖에 4인용 메뉴인 푸짐한 잔치상(양념 두부, 유정란 계란찜, 삼합, 버섯전골/ 11만 원), 푸짐한 다정상(양념 두부, 유정란 계란찜, 족발 샐러드, 버섯전골/ 8만 원), 푸짐한 나눔상(양념 두부, 유정란 계란찜, 채소전, 벌교 꼬막/ 6만 원)도 친환경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안주거리라고 고 대표는 소개했다. 모든 식재료가 국내산 친환경 유기농인 이 음식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너무나 싼 가격이다. 채식 메뉴를 요청할 경우 손님이 원하는 대로 조리도 가능하다고.

고 대표는 “외부 후원이나 도움에만 기대지 않고 우리도 정말 열심히 자립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밥집을 믿고 지지해주신 조합원들, 멀리서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제일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말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릴 테니, 여러분은 좋은 모임과 만남을 여기서 많이 가져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임은경 기자>

「문턱없는 밥집」서울 마포구 서교동 481-2번지(T. 02-324-4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