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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키워드는 생명과 환경”인터뷰 <슬로푸드문화원> 김성훈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임은경 기자  |  atree12f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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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2  13: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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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부터 6일까지 남양주에서 제1회 슬로푸드 국제대회(2013 AsiO Gusto)가 열린다. 아시아·오세아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대회인 만큼 각종 행사와 풍성한 볼거리가 준비된다.

그중에서도 11개에 달하는 국제·국내 토론회는 슬로푸드의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주제별로 집중 조명함으로써, 슬로푸드 철학과 대회의 정신을 깊이 있게 담아낼 전망이다. 대회 둘째 날인 10월 2일에는 Roberto Burdese 슬로푸드 이탈리아(Slow Food Italy) 회장과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을 비롯해 한국, 인도, 우간다, 키르기스스탄, 인도네시아의 음식 운동가들이 모여 ‘밥과 정의, 평화(Food Justice and Food for Peace)’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현 시대는 먹을거리가 풍요로워 보이지만, 글로벌화 된 푸드시스템 속에서 취약 계층은 건강한 먹을거리로부터 오히려 소외되고 있다는 데서 토론회의 문제의식이 출발한다. 심화되는 빈부격차가 음식 분배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바로 이웃인 북한의 굶주림 문제 역시 외면할 수 없다.

이 토론회의 기조 발제자이자 슬로푸드문화원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성훈 전 장관(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을 만나 슬로푸드의 의미와 이번 대회가 담고 있는 정신과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임은경 기자>

   
▲ 김성훈 (사)슬로푸드문화원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슬로푸드 운동은 이태리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간 농업, 음식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뿌리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활동가들의 노력과 정부 및 지자체, 기관의 후원이 더해져 올해 아시오 구스토라는 국제 행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번 행사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태리에서 시작한 좁은 의미의 슬로푸드 운동은 역사가 짧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 한국 음식은 기본적으로 다 슬로푸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 막걸리, 식혜, 젓갈, 김치, 장아찌 등등 한국의 식문화는 곧 발효식품 문화인데 이게 다 슬로푸드죠.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 발효시키는 데 좋은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많아요. 지푸라기 문화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지푸라기가 미생물의 서식지니까요. 서양의 발효식품은 유제품과 포도로 담근 와인 정도가 있을 뿐이지 그밖에는 삶거나 찌고 굽는 요리법이 많습니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서 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생물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발효식품을 먹습니다. 생명을 살려가면서, 숨을 쉬게 하면서 조리하지요.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 GMO를 비롯한 프랑켄슈타인 식품은 기본적으로 우리 식문화에 없었습니다.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미국 문화가 도입되면서 그런 음식이 우리 식문화를 지배하게 된 것뿐이죠. 지금 한국에 도입되어 확산되는 좁은 의미의 슬로푸드 운동은 조상 대대로의 식문화로 복귀하자는 운동으로 나는 해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슬로푸드 운동이 지금처럼 금세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도 고유의 생명과 농업에 대한 철학적 뿌리가 있고 생협 운동 등 먹을거리 운동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외국의 것인 슬로푸드를 차용해 들여올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이 있고요, 또 슬로푸드라는 개념을 상업적으로, 혹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세대들은 그렇지 않지만, 전통 식문화에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슬로푸드 운동이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미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식문화가 바뀌어버렸잖아요.

제가 1995년에 캐나다에 교환 교수로 갔을 때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거기는 벌써 그때부터 학교에서 햄버거, 콜라 등을 팔지 못하도록 아예 금지하고 있었어요. 우리도 최근에서야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내 식음료와 패스트푸드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지요.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었는데, 역으로 우리는 건강한 전통 식습관을 버리고 무분별하게 서양식을 받아들였죠. 서양의 것이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뚱뚱하면 무조건 우량아로 착각하던 시대가 있었고요. 요즘은 그게 다 비만증 환자들이잖아요. 요즘 어린이들이 성인병, 당뇨병, 심장병 등이 걸리는 것은 모두 비만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나마 슬로푸드 운동이 점점 알려지면서 정크푸드의 문제점이 더욱 부각되고 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슬로푸드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밥과 정의, 평화’토론회에서 준비하신 주제 발표의 주요한 내용을 소개해주십시오.

내가 이번 토론 주제인 밥(식량, 食糧)과 평화(平和)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봤어요.

식(食)이라는 말은 사람 인(人)과 좋을 량(良)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말은 곧 좋은 사람(양인, 良人)이 되려면 매일 일정한 양의 음식(糧)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평화 또는 화평(和平)에서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가 합쳐진 말이니까, 곧 평화란 음식(禾)이 많은 사람들(口)에게 공정하게(平) 나누어지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고요.

세종대왕께서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식(食)은 백성의 하늘이므로, 국가는 농업과 식량에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이것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고 봐요. 남북 간의 평화도 우선 식량과 농업으로 풀어야 합니다.

올해 국제기구 통계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27.9%가 기아로 허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아시오 구스토는 산업화된 음식, GMO, 정크푸드에 대항해 아시아·오세아니아의 전통 식문화를 지키고 식량주권의 붕괴를 막아내자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슬로푸드 운동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오래 지속되기 위해, 앞으로 한국의 슬로푸드 운동이 가야할 길은 어떤 것일까요?

슬로푸드 운동은 반드시 친환경 유기농 운동, 로컬푸드 운동과 함께 가야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지구 환경이 함께 살아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세계에서 농약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에요. 소위 녹색혁명이라 불리는 과거 고투입 농법,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증산 효과는 인정해줄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바람에 우리 국토가 다 산성화되어 못쓰게 되어버렸죠. 이제 돌아보면 그게 녹색혁명이 아니라 흑색혁명이었던 거죠.

이제 그때의 사명은 끝났습니다. 유기농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요? 우리나라 유기농 역사가 20년이에요. 그동안 기술이 많이 발전했어요. 팔당, 제주, 전남의 유기농가들 생산성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학비료와 농약을 남용하면 땅의 지력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죠.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배우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농법으로, 지력을 높이고 환경과 건강,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농사지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농업과 음식 환경이 나아지고,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생명하고 환경이지요. 이게 말로만 해서는 몰라요. 집안 구석이나 옥상에서 뭐라도 심고 길러보세요.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외경이 생깁니다. 기후 온난화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되지요. 이 나라의 소위 진보 개혁 세력의 가장 맹점이 녹색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에요. 정치만 최고인 줄 알고, 생명이나 환경 문제는 부수적인 것으로 착각을 하지요.

정치의 기본은 생활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민생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디까지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환경, 생태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해요.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면 사회가 자연히 농업 공동체로 가게 되어 있어요.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요.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세상을 나누는 시각은 이전 시대를 담는 그릇이었죠.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고 그랬죠? 정치인들이 못 벗어나는 과거 이데올로기의 구태가 바로 오늘날의 껍데기에요. 지금은 오히려 시민운동가들이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슬로푸드 운동이죠.

이제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생태주의, 공동체주의를 바라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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