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호 페이스북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방장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몰려오면 여름 꽃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민다. 여름 꽃을 제대로 보려면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올라야 그 참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고산을 오를 때는 고되고 힘든 여정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의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야생화 탐화(探花) 장소로 경기도의 제일봉인 화악산(1,424m)을 선택했다. 화악산은 산 중턱까지 임도가 잘 닦여있어 차편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봄여름가을 꽃들이 만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산행에는 ‘금강초롱을 찾아서’라는 테마를 달았다. 금강초롱은 한국을 대표하는 꽃이기도 하고, 화악산의 금강초롱은 특히 꽃색이 곱기로 정평이 나있다. 혹자는 “금강초롱을 보면 야생화를 다 본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고귀하고 기품이 있기에 이런 찬사의 말을 건넸을 것이다.

지난 8월 24일 아침 9시경 900m 지점에 위치한 화악산 헬기장 주차장은 빼곡히 들어찬 차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산기슭 한 켠에 간신히 차를 주차하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인근에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곳곳에 출입통제 간판이 보였다.

등산로 주변에는 흰진범, 각시취, 마타리, 뚝갈, 오리방풀, 닻꽃, 송이풀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가득했다. 30분을 걸었을까 멀리서도 금강초롱꽃의 보랏빛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작년만 해도 무더기로 보이던 금강초롱이 올해는 홀로 핀 개체들만이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다. 금강초롱과의 해후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금강초롱을 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를 절로 연발한다.

▲ 금강초롱꽃

금강초롱은 중부 및 강원도 이북 지역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강원도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과, 경기도의 화악산, 명지산, 북한의 금강산을 거쳐 함경남도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다음백과사전 참조). 키는 20cm에서 50cm 정도까지 자라며 식물 전체에 털이 없고 매끈하다. 살짝 광택이 나는 잎은 줄기에 서로 어긋나게 달리며, 잎 가장자리에 톱니모양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다. 꽃은 8∼9월에 보라색의 꽃이 1송이 또는 여러 송이가 꽃을 피운다.

▲ 금강초롱 전초

꽃이 지고 나면 10월경에 열매 안쪽의 많은 씨앗들이 익어간다. 운이 좋다면 흰색으로 피는 금강초롱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특산인 금강초롱속에는 전세계적으로 2종이 있는데 금강초롱 말고도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에만 자라는 검산초롱꽃이 있다.

금강초롱은 1902년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됐고, 꽃모양이 불을 밝히는 초롱 모양을 닮아 이름 붙여진 식물이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길이 5∼7cm, 지름 2∼3cm 정도의 원통형 꽃 안쪽에 암술대와 5개의 수술이 자리 잡고 있다. 3갈래로 갈라진 암술대는 약간 뒤로 말려 수정을 쉽게 하려는 자신만의 전략도 가지고 있다. 암술대는 수줍은 여인인 양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꽃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금강초롱은 다른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식용, 관상용,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이다. 봄철에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으며, 꽃은 관상용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천식, 편도선염 등의 약재로 사용한다.

금강초롱의 번식은 씨앗과 포기나누기를 병행하고 있다. 봄에는 주로 포기나누기를 하거나 10월경에 씨앗을 채취해서 바로 뿌린다. 가을에 씨앗을 채취한 후 냉장 보관을 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아율이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금강초롱은 물이 잘 빠지는 반그늘 조건에서 잘 자라며, 더위에 약하고 서늘한 환경을 좋아하기에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다. 국내에서 금강초롱 재배기술이 하루빨리 확보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금강초롱 원예종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종을 다른 나라의 손에 또다시 빼앗기지는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금강초롱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접하게 된다. 초대 일본 공사를 지낸 하나부사 요시타다는 한일합방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는 조선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로 일본에서 한 학자를 초청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나카이 타케노신 박사다.

금강초롱의 명명자인 나카이 타케노신은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 촉탁연구원으로 조선 식물을 조사한 일본 식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나카이는 새로운 식물 금강초롱을 채집하고 자신에게 기회를 준 하나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금강초롱에 하나부사라는 속명을 붙였다.

우리나라의 고유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북한에서는 금강초롱의 학명에 치욕의 역사가 남아있다고 하여 북한 방식대로 금강사니아(Kumgangsania)라는 학명을 사용하고 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식물 이름 하나하나에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고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 소중한 자원이 남의 손에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금강초롱에게 우리 고유의 이름을 붙여주는 그 날을 손꼽아 소망해 본다.

▲ 금강초롱 전초

오늘도 필자는 이른 아침 야생화를 찾아 발걸음을 나섰다. 꽃들이 아침 이슬과 햇살을 머금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초롱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도 바로 아침햇살을 살짝 머금을 때이다. 어둠이 있는 숲속에서 실제로 불을 밝히는 청사초롱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지금 금강초롱은 지고 없지만, 2014년에는 금강초롱의 아름다운 자태를 꼭 확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