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혁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2013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아시오구스토)는 원래 방문객을 하루 5만 명씩 30만 명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53만3천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루에 거의 10만 명 가까운, 예상치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러한 결과만 놓고 보면 언론에서 평가하듯이 축제가 대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남양주시 역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수치에 크게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으로는 슬로푸드운동의 핵심 프로그램인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있는 전세계 음식들의 전시 및 소개, 그리고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등재된 8가지 음식을 소개한 컨퍼런스를 통해 국내에 슬로푸드운동의 핵심 가치인 농업생물다양성과 맛의 다양성 문제를 사회적으로 강력하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하나 있다. 예상치의 두 배에 가까운 방문객이 찾아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예측했던 수용가능한도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옴으로써 이들에게 쾌적한 관람환경을 조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점에서 방문객들의 불만을 살만한 요인들이 많이 보였다. 우선은 주차용량이었다. 필자의 지인 몇몇도 차를 끌고 행사장까지 왔다가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그냥 되돌아갔다는 후문이 들린다. 주차하는데 성공한 관람객들도 아마 엄청난 인파 때문에 제대로 구경하고 즐기기엔 힘들었을 것이다.

오감을 활용하는 미각체험을 통해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슬로푸드운동의 핵심이라면, 너무 많은 방문객들에게 이러한 체험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어쨌거나 과도한 방문객의 문제는 사전예약 프로그램을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방문객의 적정 숫자를 유지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많은 방문객을 원하는 지자체와 적정 방문객 수를 원했던 슬로푸드한국위원회 사이에서 풀기 어려운 딜레마였을 것이고, 앞으로의 대회에서도 계속 발목을 잡힐 수도 있는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안내시스템의 부재였다.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열리는 행사장을 찾는데 자원봉사자들의 미숙한 안내로 인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언성을 높이면서 자원봉사자들과 언쟁하던 방문객들이 우리 가족의 눈에 종종 띄었고, 우리 가족이 예약했던 맛 워크숍이 열리는 장소를 자원봉사자들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

파올로 디 크로체 슬로푸드 국제본부 사무총장의 지적처럼 영어 안내시스템은 더더욱 문제였다. 이 부분은 사전 교육과 현장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주최측의 경험 부족과 준비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내 부스 및 실외 부스에 입점한 입점자들이 판매하는 먹거리의 문제이다. 상당수는 다른 일반적인 먹거리축제나 지역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슬로푸드적 특색을 지닌 특산물이나 음식이었지만, 여전히 다른 축제들에서도 볼 수 있는 특색 없는 먹거리를 판매하는 경우도 다수 눈에 띄었다.

아마도 부스 전체를 채우기엔 역부족인 상황에서, 또 축제가 많은 기간이라 적절한 입점자가 어쩔 수 없이 참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주최측에서는 입점자의 기준을 낮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료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점이 될 수도 있다. 몇몇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해가 갈수록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슬로푸드한국위원회에서도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방문객의 수라는 양적인 측면을 좀 희생시키더라도 슬로푸드에 대한 이들의 실질적인 경험과 만족이라는 질적인 측면은 절대 희생되지 않도록 슬로푸드의 가치를 철저하게 견지하는 것만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아시오구스토가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10월 5일 열린 한국의 맛의 방주 컨퍼런스는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음식 시식 역시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5가지 한국 등재품목의 스토리와 효능을 소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각 품목들을 그간 땀과 눈물로 지켜오신 분들의 스토리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오전 오후로 나누든가, 아니면 효능 소개는 제외하고 그간의 보존 스토리에 시간을 충분히 더 할애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외국 참가자들에게도 영어동시통역으로 내용을 전달했어야 한다고 본다.